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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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 부나비 전락한 개인 방치하는 한국사회 영화

※ 본 포스팅은 ‘화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의사 문호(이선균 분)는 결혼을 코앞에 둔 연인 선영(김민희 분)의 갑작스런 실종에 아연실색해 전직 경찰인 사촌형 종근(조성하 분)에 도움을 청합니다. 종근은 선영이 사채 빚에 시달려 정체를 바꾸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변영주 감독이 영화화한 ‘화차’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빚더미에 몰려 인생 막장에 도달한 젊은 여성이 살인까지 자행하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는 과정과 이를 파헤치는 두 남자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된 1992년 작으로 시간 및 공간적 배경에서 2010년대의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각본까지 맡은 변영주 감독은 거액의 사채 빚에 몰린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조직폭력배가 동원되어 빚을 독촉하며 스토킹이 판을 치는 한국적 현실에 맞게 각색하는데 성공합니다. 일본 작가의 원작 소설이라는 점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한국화 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여류 소설가의 작품을 여성 감독이 각색했기에 감성적인 측면에서 영화화가 용이했을 수도 있지만 섹스와 폭력의 수위가 낮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성적 감수성을 강조하지 않아 인상적입니다. 스릴러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 감독에 어울리지 않는 장르라는 선입견도 없지 않지만 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비교적 매끄러운 스릴러로 완성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화차’의 주제는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개인을 구원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는 물론 타인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하는 개인의 익명성에 대한 공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포스터에서 암시하는 선영의 날개는 나비의 날개입니다. 극중에서 선영은 고치에서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쳐 환골탈태하는 공작나비를 키우며 빚더미에서 탈출해 새 삶을 살려는 자신의 처지를 대입합니다. 그녀가 살인을 범하고 허우적거린 핏속에서 공작나비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은 아무리 노력해도 빚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상징적 연출입니다. 선영이 초반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떨어뜨린 나비 모양의 머리핀은 상당히 노골적인 소품입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선영이 빚에서 벗어나 허물을 벗는 유일한 수단은 범죄뿐입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 선영(본명 차경선)이나 살해되는 피해자인 진짜 선영 모두 익명성의 희생양입니다.

제목 ‘화차(火車)’는 멈출 수 없이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경선의 운명을 암시하는데 본편에서는 제목과 관련된 언급이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선의 성이 ‘차(車)’이며 용산역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화차’라는 제목과의 연관성을 암시합니다. 제목 ‘화차’의 불과 경선을 상징하는 나비의 이미지를 조합하면 부나비를 연상할 수 있는데 파멸을 향해 망설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비는 경선 그 자체입니다. 결말에서 경선의 용산역 투신 장면에서 나비의 이미지가 삽입되어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몇몇 아쉬운 점도 엿보입니다. 우선 종근이 문호의 부탁을 받고 경선의 뒤를 캐는 동기가 다소 부족합니다. 경찰 복직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점에서 종근의 닳고 닳은 성격과 금전적 어려움을 감안해 문호가 종근에 돈을 전달하는 장면이 삽입되었다면 종근의 조사 동기가 보다 뚜렷해졌을 것입니다. ‘돈의 논리’에 좌우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 전반의 주제 의식과도 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호가 경선과 재회한 장면에서 두 사람의 포옹 장면이 지나치게 긴 것은 가장 아쉽습니다. 반대로 경선의 투신 이후 에필로그 없이 급작스레 엔드 크레딧을 올린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정리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따라서 문호와 경선의 포옹 장면을 짧게 편집하고 문호와 종근의 후일담이 엔드 크레딧 직전에 삽입되었다면 나았을 것입니다.

영화는 물론 CF에서조차 연기력이 의문시되었던 김민희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체성이 희미한 여성으로 분한데다 등장장면이 많지 않아 무난합니다. 실질적으로 ‘화차’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조성하가 분한 종근입니다. 조성하는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매우 현실적인 인물인 종근을 관객의 손에 잡히는 것처럼 구체화합니다.

‘체포왕’에서 경찰과 범인의 관계였던 이선균과 최덕문은 ‘화차’에서 역할을 바꾸어 이선균이 피해자로 최덕문이 경찰로 등장합니다. 극중에는 애견 호두의 이름을 딴 ‘호두 엄마’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선균과 최덕문의 소속사(호두 엔테터테인먼트)의 이름과 애견 호두의 이름이 동일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화차’ 변영주 감독, 배우 김민희 시네토크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SAGA 2012/03/11 21:26 #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왔는데 조금... 씁쓸하더군요. 거기다가 마지막에 급하게 엔딩크레딧을 올려버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디제 님이 말씀하신대로 문호와 종근의 후일담이 나왔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영화 제목인 '화차'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런 게 나오더군요.

    카샤(火車)-장례식장을 덮쳐서 관 뚜껑을 열고, 시체를 빼앗아가는 요괴의 일종. 정체는 늙은 고양이라고 한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에서는 인간 정도의 크기이며, 두 다리로 서있는 거대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나타날 때는 폭풍을 일으키고 검은 구름에 감싸여 있다고 하는데, 에도 시대 후기에 쓰여진 수필 『북월설보(北越雪譜)』에는 눈이 내리는데도 불덩이에 감싸여 관 위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불교에서 카샤라고 하면 죽은 자를 저승으로 옮기는 불꽃에 둘러싸인 마차를 얘기했는데, 이것이 변해서 고양이 모습의 요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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