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위 감독, 주성치 주연의 1995년 작 ‘서유기 월광보합’은 역시 같은 해 공개된 후속편 ‘서유기 선리기연’과 함께 중국 고전 ‘서유기’를 재해석한 2부작 중 첫 번째 영화입니다. 주성치의 주연 작품으로 여전히 컬트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극중에서 보제노조로 직접 출연한 감독 유진위가 ‘기안’이라는 가명으로 쓴 각본이 단연 돋보입니다.
‘서유기 월광보합’이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우선 주성치가 분한 지존보의 성기에 불이 붙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지존보와 백정정, 이당가(오맹달 분)와 춘삼십랑을 둘러싼 4각 관계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코미디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함과 기괴함으로 무장한 일반적인 주성치 주연 코미디와는 격을 달리하는 후반부의 복잡한 전개야말로 ‘서유기 월광보합’을 여전히 손꼽히는 작품으로 남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월광보합의 봉인을 해제한 지존보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이 손오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는데 반복을 통한 유머와 퍼즐과 같은 스릴러적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됩니다. 후반부의 이 같은 전개는 88분의 짧은 러닝 타임 전체를 관객으로 하여금 재구성하게 만들며 재관람의 여지까지 부여한다는 점에서 ‘서유기 월광보합’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영화는 각본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백 투 더 퓨처’와 같은 SF 영화의 요소인 타임머신을, 중국 고전을 재해석한 판타지 무협 영화에 접목시킨 시도가 적중한 것입니다.
극중에서 춘삼십랑은 거미 요괴로 변신하는데 요염한 여성이 거미로 변신하는 설정은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요수도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춘삼십랑에 반한 이당가의 대사 ‘사랑의 유효 기간을 만년으로 하겠다’는 ‘중경삼림’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며 지존보가 월광보합을 발견한 순간과 관세음보살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에서는 ‘동사서독’의 배경 음악이 활용되었습니다.
‘서유기 월광보합’에는 주성치가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2004년 작 ‘쿵푸 허슬’에 영향을 준 요소들이 엿보입니다. ‘쿵푸 허슬’에서 주성치가 분한 주인공 싱이 무협 고수인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과 능력을 종반에서야 발견한다는 전개나 조직폭력배가 도끼로 무장한 것이 그러합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