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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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 영화에 바치는 스콜세지의 자전적 헌사 영화

홀아버지(주드 로 분)를 여의고 삼촌을 대신해 파리의 기차역에서 시계지기로 일하는 소년 휴고(아사 버터필드 분)는 노인 조르주(벤 킹슬리 분)가 운영하는 작은 장난감 가게에서 태엽을 훔쳐 아버지의 유품인 자동인형을 복원하려 합니다. 휴고는 조르주 부부와 함께 사는 소녀 이사벨(클로에 모레츠 분)의 도움으로 복원에 성공해 자동인형의 그림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소설 ‘위고 카브레’를 영화화한 ‘휴고’는 기존의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와는 판이한 작품입니다. 암흑가 갱의 폭력이나 배신을 일삼는 인간의 심리 묘사에 집착한 하드보일드한 성인 영화였던 전작들과 달리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가 처음으로 연출하는 3D 영화이며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는 가족 영화입니다. 유일한 악인처럼 보이는 경비원(샤샤 바론 코헨 분)조차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며 결정적인 순간 휴고의 생명을 구합니다. 따라서 ‘휴고’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선한 셈입니다.

아버지 생전에 자신의 생일마다 영화를 함께 보던 휴고는 조르주와 이사벨과 조우하며 영화의 매력에 보다 깊숙이 빠져들게 됩니다. 천식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없어 부모와 함께 보러 다닌 영화의 세계에 심취하게 된 마틴 스콜세지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입니다.

타이틀 롤은 휴고이지만 조르주가 ‘달세계 여행’의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휴고’의 실질적 주인공은 휴고에서 조르주로 이행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된 조르주는 휴고 덕분에 영화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대중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회복합니다. 늙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조르주는 어느덧 70줄에 접어든 노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의 유년을 투영한 자아이며 조르주는 노년을 투영한 자아로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의 자전적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드문 마틴 스콜세지가, 찬란했던 조르주의 촬영장 세트 앞에서 조르주 부부의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사로 출연해 얼굴을 비추는 것은 마틴 스콜세지에 있어 ‘휴고’가 차지하는 의미를 짐작하게 합니다.

조르주 멜리에스와 그의 대표작 ‘달세계 여행’이 제시되는 만큼 고전 흑백 영화에 대한 ‘휴고’는 경의는 직접적입니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은 물론 채플린을 비롯해 다양한 고전 흑백 영화들이 인용됩니다. 휴고와 이사벨의 첫 데이트 장소도 영화관이며 그들이 함께 보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층 빌딩의 시계에 매달리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에서 경비원에 쫓기는 휴고가 기차역의 시계에 매달리는 장면으로 반복됩니다.

고전 흑백 영화에 대한 무한한 경의라는 주제는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경합을 벌인 ‘아티스트’와 일치합니다.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면 고전 영화에 대한 경의라는 주제 의식을 뻔한 사랑 영화의 서사로 당의정처럼 감추고 흑백 무성 영화 방식으로 연출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한 ‘아티스트’가 화려한 영상과 노골적인 주제 의식이 자연스럽게 융화되지 못한 ‘휴고’에 비해 매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100분의 러닝 타임 동안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는 듯한 ‘아티스트’와 달리 ‘휴고’의 128분의 러닝 타임 중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아티스트’가 없었다면 ‘휴고’가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와 비교해 ‘휴고’를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파리의 기차역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비주얼은 눈을 즐겁게 합니다. 세트에서 흑백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의 다채로운 색상은 강렬합니다. 무늬만 3D였던 대다수 최근작들과 달리 ‘휴고’의 3D는 상당한 입체감을 과시해 ‘아바타’에 버금가는 3D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수한 대형 시계와 자동인형으로 대변되는 톱니바퀴와 태엽 장치로 가득한 정교한 소품들로 인해 아날로그 시대를 향수하는 스팀 펑크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고전 흑백 영화가 절멸한 21세기이지만 영화의 마법만큼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라 마틴 스콜세지는 역설합니다. 복잡한 기계 장치가 파리 시가지로 변모하는 휴고의 상상에 기초한 오프닝은 ‘기계에는 버릴 것이 없으며 모든 부품들이 자신의 역할을 한다’는 휴고의 대사처럼 영화의 주제인 목적론적 세계관을 뒷받침합니다. 남모르는 음지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시계지기의 책무가 휴고에게 주어진 것 역시 동일한 맥락입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단순한 심심풀이 오락거리처럼 여겨지는 영화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영화감독인 자신을 비롯해 음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달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휴고’는 사랑 영화이기도 합니다. 고장 난 자동인형을 재가동시키는데 필요한 열쇠가 하트 모양이며 열쇠를 지닌 인물이 휴고와 교감하는 소녀 이사벨이라는 점은 상당히 노골적입니다. 갑자기 고아가 된 휴고가 그토록 갈망하는 사랑과 친구, 그리고 가족애를 제공하는 것이 이사벨이기에 ‘휴고’는 소년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휴고뿐만이 아닙니다. 경비원을 비롯한 기차역의 거의 모든 조연들은 사랑을 갈망하며 조르주는 영화감독으로서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되찾고자 합니다.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버림받아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면 존재 의의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이름값뿐만 아니라 벤 킹슬리, 크리스토퍼 리, 주드 로, 샤사 바론 코헨, 클로에 모레츠 등 캐스팅도 화려한 ‘휴고’는 국내에서 비수기에 일부 멀티플렉스에서 소규모로 개봉된 뒤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해 여론의 관심을 받으려 아카데미 이후 개봉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국내에서 아카데미의 파급력이 미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가족 영화인만큼 차차리 크리스마스에 개봉했으면 보다 많은 이들이 관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휴고’는 조용히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영화입니다.

택시 드라이버 - 뉴욕의 밑바닥 인생
좋은 친구들 - '대부'의 대척점에 위치한 갱 영화
케이프 피어 - 가학이 주는 쾌감
에비에이터 - 속내를 들킨 것 같은 작품
에비에이터 - 두 번째 감상
셔터 아일랜드 - 순전히 개인적인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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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시북군 2012/03/06 09:19 #

    개인적으로 블루레이 모으면서 3D타이틀은 굳이 필요를 못 느꼈었는데 휴고만큼은 오히려 3D가 아니면 의미가 없을거 같습니다. 나중에 이거때문에라도 디스플레이 바꿔야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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