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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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 배우 열연 아까운 설익은 계몽 영화 영화

옥탑방에 거주하는 독신 남성 슈지(니시지마 히데토시 분)는 고전 걸작 영화를 숭배해 정기적으로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어느 날 슈지는 야쿠자 수금원이었던 형이 자신의 영화 제작을 위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살해되었으며 빚을 갚지 않으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며 협박을 받습니다. 슈지는 야쿠자의 불법 도박장에서 매를 맞으며 돈을 벌어 빚을 갚아 나갑니다.

이란 출신의 아미르 나데리 감독이 일본에서 연출한 2011년 작 ‘컷’은 고전 걸작 영화만이 진정한 오락이자 예술이며 현대 영화는 상업주의에 물들어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과격한 신념을 지닌 주인공이 영화 제작을 위해 차용한 거액을 갚기 위해 구타당하며 갚는다는 독특한 설정을 앞세우는 부조리극입니다.

주인공 슈지는 마치 한국의 일부 기독교 신자들처럼 거리에서도 메가폰으로 고전 영화의 가치를 설파하며 ‘전도’ 행위를 일삼는 사회 부적응자이자 편집광입니다. 그의 옥탑방에는 고전 영화의 포스터와 스틸로 가득하며 구상 중인 각본 또한 펜으로 노트에 집필하는 아날로그적인 인물입니다. 디지털과는 담을 쌓은 만큼 컴퓨터는 물론이고 TV나 전자 렌지조차 보유하지 않은 폐쇄적인 인물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 어쩔 수 없이 살벌한 암흑가에 나와 야쿠자에 구타당하는 육체적 고통에 내몰리는 종교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살을 빼고 근육만 남은 앙상한 몸에서 연기에 대한 집착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열연은 엉성한 각본과 설익은 연출을 뒤덮지 못합니다. 그가 분한 슈지는 열흘 동안 매일같이 얻어맞으며 거액의 빚을 갚아나가는데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눈두덩이 찌부러지고 뺨이 퉁퉁 부어오르며 살이 찢어지고 얼굴 전체가 피 칠갑이 되지만 신기하게도 치아는 단 한 개도 부러지지 않아 멀쩡합니다. 얼굴을 구타당해 치아가 부러지는 것은 최근 영화에서는 클리셰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 ‘컷’의 슈지는 ‘핵 이빨’을 지녔나 봅니다.

‘매 값’으로 빚을 갚는다는 ‘컷’의 기본적인 발상은 나름대로 참신합니다.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실체가 불분명한 디지털 시대에 몸으로 맞서는 ‘육체성’을 강조한다는 점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120분 내내 시종일관 천편일률적으로 얻어맞는 장면만 반복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혹시나 결말에서 숨겨진 깜짝 반전이 제시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러닝 타임이 90분 정도로 압축되었다면 다소 볼만해졌을 지도 모릅니다.

구타 장면이 시작될 때에는 다소 자극적이지만 중후반에도 변화가 없는 연출로 인해 지루합니다. 롱 테이크, 점프 컷 등의 기교도 지루함을 상쇄시키지 못합니다. 마조히스트적인 주인공에 가해지는 폭력이 점차 강력해져 야구 방망이, 각목, 쇠파이프 등 다양한 도구를 앞세우는 점층법이 활용되었다면 그나마 덜 지루했겠지만 시종일관 주먹과 발로 구타하기에 지루합니다. 구타 장면을 뒷받침해야할 매 맞는 소리, 즉 효과음도 미약해 무참하게 맞고 있는 생생함을 객석에 제공하지 못합니다.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인 요코(토키와 다카코 분)도 뜬금없습니다. 야쿠자의 불법도박장에 딸린 바에서 일하며 유지를 심정적으로 동정하는데 중간 보스의 조카라 똘마니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지만 평범한 여성이 근무하기에는 너무나 거친 환경이라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토키와 다카코의 예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짧게 ‘컷’하고 후줄근한 옷을 입었지만 야쿠자의 불법도박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차라리 진한 화장에 노출 심한 복장을 입은 닳고 닳은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컷’의 가장 큰 문제는 설득력 없는 각본이나 부족한 연출력이 아니라 주제 의식이 지나치게 계몽적이라는 점입니다. 고전 걸작만이 의미 있고 현대 영화는 무의미하다는 슈지의 대사에는 각본, 편집까지 맡은 아미르 나데리 감독의 주제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슈지는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등 일본 영화의 거장들의 무덤을 경건히 참배하는데 흑백으로 처리된 이 장면에서 고전 영화에 대한 무한한 경의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아미르 나데리의 고전 영화에 대한 경의는 슈지가 남은 빚을 모두 갚기 위해 마지막 날 구타당하는 장면에 삽입된 100개의 걸작 영화를 나열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슈지가 얻어맞는 장면 중간에 자막을 통해 100편의 걸작 영화가 제시되는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같은 비교적 최근작도 있지만 대부분이 반세기 이전의 영화들입니다.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시민 케인’의 마지막 장면과 오즈 야스지로의 묘비에 새겨진 ‘무(無)’자가 오버랩되는 연출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남는 것은 영화밖에 없다고 웅변하는 듯합니다. 관객들에게 현대 영화보다는 고전 영화를 보라는 너무나 노골적인 계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2011년 작 ‘컷’은 고전 영화가 아니라 현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아미르 나데리 감독은 자신의 영화 ‘컷’이 현대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소수의 걸작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일찌감치 자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학과 학부생의 실습 작품처럼 설익은 계몽으로 점철된 ‘컷’은 상업주의에는 물들지 않았지만 걸작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해 보입니다. 1970년 이래 십 수 편을 연출한 국제적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엉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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