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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묵직한 아날로그 첩보 스릴러 영화

‘서커스’라는 애칭의 영국 정보부의 총책임자 컨트롤(존 허트 분)은 소련과 내통하는 내부의 첩자 ‘두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짐(마크 스트롱 분)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짐이 임무 중 사망하자 컨트롤은 책임을 지고 직속 부하 스마일리(게리 올드만 분)와 함께 퇴직합니다. 컨트롤의 사망 후 스마일리는 별도의 조사팀을 조직해 ‘서커스’의 외부에서 ‘두더지’를 색출합니다.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으며 그가 제작에도 참여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1970년대 냉전 시대에 영국 정보부 내부의 소련 스파이 색출 과정을 묘사합니다. 일반적으로 냉전 시대의 영국 첩보물이라면 ‘007’시리즈를 연상하기 쉽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007’ 시리즈의 정확히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첩보 영화입니다. 기상천외한 신무기, 황당무계한 액션, 멋들어진 턱시도를 빼입은 첩보원의 여유 만만한 성적 농담, 비키니를 자랑하는 육감적인 본드 걸 등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최근 스릴러 영화들이 디지털 기기를 소품으로 활용하며 화려한 CG,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 현란한 편집, 그리고 깜짝 반전을 앞세워 관객의 혼을 빼놓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부다페스트, 파리, 이스탄불을 오가지만 비주얼이 제공하는 시각적 쾌감에는 의존하지 않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강박적인 첩보전을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서커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레닌 가면을 쓴 산타클로스가 무대에 등장하며 요원들이 동반한 가족과 함께 러시아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은 ‘직업인’으로서의 정보 종사자의 삶이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강렬한 장면입니다. ‘적과 싸우며 적을 닮아간다’는 격언처럼 그들 중 소련 스파이, 즉 ‘두더지’가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첩보전은 문서와 육성 녹음을 확인하는 지루한 과정에 대부분을 할애합니다. 당시의 최첨단 기술은 기록 영화 필름을 반복 시청하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첨단 기기와 같은 소품보다는 배우의 연기에서 비롯된 심리 묘사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진정한 첩보전이란 과묵한 사나이들의 지루한 두뇌 싸움이며 외부의 적과 내부의 첩자는 물론 승진과 생존을 위해서도 한솥밥을 먹는 동료도 믿을 수 없다(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첫 번째 대사가 바로 ‘아무도 믿지 마라(Trust No One)’인 것은 의미심장합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는 사실적이며 묵직한 첩보 스릴러입니다.

영화 제목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컨트롤이 ‘두더지’를 추정하기 위해 ‘서커스’의 부하들의 사진을 체스 말에 붙여 놓고 영국의 전래 동요 가사와 같이 한 명 씩 ‘팅커’, ‘테일러’, ‘솔저’와 같은 식으로 붙여나간 것에서 유래합니다. 즉 첩보원이란 체스 말처럼 언제 체스판 위에서 조용히 사라져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될 줄 모르는, 조직의 소모품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더지’의 존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두더지’ 못지않은 비중을 부여받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공 스마일리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가출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평소 무표정하며 냉정을 잃지 않는 스마일리의 유일한 인간적인 약점입니다. 스마일리는 과거 소련 첩보원 칼라와도 친분을 유지했는데 극중에서 얼굴이 제대로 노출되지 않는 스마일리의 아내와 칼라가 결말에서 드러나는 ‘두더지’의 정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게리 올드만, 존 허트,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톰 하디, 그리고 드라마 ‘셜록’의 타이틀 롤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캐스팅이 인상적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묵직한 스릴러를 선호하는 소수에게는 강한 잔상을 남기는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매끈한 오락 영화를 기대하는 대다수 관객에게는 지루한 영화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이 오히려 기교가 부족해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며 우직함이 불친절함으로 수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말에서 ‘두더지’의 정체가 밝혀진 뒤 왜 그가 전향을 선택했는지, 즉 ‘범행동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도 아쉽습니다.

렛 미 인 - 외로운 소년 소녀의 붉은 핏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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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2/02/11 11:24 #

    파티 장면에는 원작자가 깜짝 출연했다는군요. 과연 어디에 나왔을까!
  • 腦香怪年 2012/02/13 16:20 #

    그 레닌 가면을 쓴 산타클로스가 카레 선생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 데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 Nine One 2012/02/11 15:05 #

    결국 이런 첩보물의 기본은 사람의 직감, 조그마한 단서, 발로 뛰는 부지런함이죠. 첨단장비에 의존하는 것보다 어쩌면 정통적인 첩보물이 이런 시대에 나오기는 힘들었을 듯 합니다.
  • 2012/02/11 15: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홍쎄 2012/02/11 19:12 #

    그래도 곰곰히 씹어볼 수 있는 영화라서 더 좋았던 거 같아요.
  • SAGA 2012/02/12 00:03 #

    첨단장비가 즐비하게 나오는 첩보영화에 좀 질리던 차였는데... 이거 한번 보면 좋겠군요.
  • 미사 2012/02/12 22:54 #

    영화 조면서 책 읽는 기분이었어요. 원작에서는 빌과 짐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좀더 세밀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빌헤이든의 모델이 킴 필비라는 실존했던 MI5 고위간부 이중스파이인지라, 캠브리지 스파이란 tbc 드라마도 보시면 즐길꺼리 폭이 좀 넓어질 거여요 ㅎㅎ
  • 미사 2012/02/12 22:54 #

    앗 조면서가 아니라 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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