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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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하이웨이 - 난 미쳤다, 당신 나름대로 해석하라 영화

클럽의 색소폰 연주자 프레드(빌 풀만 분)는 아내 르네(패트리샤 아퀘트 분)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두 사람의 침실을 누군가 엿본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된 뒤 프레드는 르네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프레드는 독방에서 자동차 정비공 피트(발타자르 게티 분)로 몸이 뒤바뀌어 석방됩니다.

폭력과 섹스, 관음증과 노출증에 대한 잠재된 욕망을 분출하는 인물들로 가득한 1997년 작 ‘로스트 하이웨이’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답게 섹시하고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호러 영화이자 스릴러이며 느와르입니다. 프레드가 피트로 뒤바뀐 뒤, 아내 르네 또한 금발 미녀 앨리스로 뒤바뀝니다. 두통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금발의 팜므 파탈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스릴러 ‘현기증’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전반에 수수께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는 여주인공의 또 다른 이름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스트 하이웨이’를 퍼즐에 비유하면 과연 조각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서너 개의 완성품의 조각이 사방에 뒤섞여 흐트러져 산만하기 짝이 없는 퍼즐과도 같습니다. 이를테면 딕 로렌트(로버트 로지아 분)의 부하로 프레드를 위협하던 의문의 사나이(로버트 블레이크 분)가 왜 결정적인 순간 프레드의 편에 섰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순환론적 세계관과 불교적 환생에 끼워 맞추면 앞뒤가 들어맞습니다. 이를테면 질주, 광기, 일탈, 도주, 정처 없음 등을 상징하는 오프닝의 고속도로 장면은 엔딩까지 다섯 번에 걸쳐 반복되는데 ‘딕 로렌트는 죽었다’는 대사처럼 처음과 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구조입니다. 고속도로가 등장하는 수미상관의 오프닝과 엔딩을 모두 장식하는 곡이 데이빗 보위의 ‘난 미쳤다(I'm Deranged)’인 것은 매우 노골적인 암시입니다. 프레드 - 피트 - 프레드, 르네 - 앨리스 - 르네로 이어지는 순환은 윤회이자 동시에 자아 분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목 ‘로스트 하이웨이’는 딕 로렌트가 앨리스와 섹스하며 이후 프레드가 딕 로렌트를 납치하는 기괴한 이름의 모텔인 ‘로스트 하이웨이 모텔(Lost Highway Motel)’에서 비롯되었지만 프레드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제대로 된 정신을 ‘상실(lost)’했다는 점과도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객 역시 ‘로스트 하이웨이’에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단순히 신경질적이며 잔혹한 B급 영화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줄을 상실한 상황에 도달하면 서사의 구멍에서 비롯된 의문도 나름대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전술한 의문의 사나이가 갑자기 프레드를 돕는 것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파우스트처럼 프레드가 의문의 사나이, 즉 악마에 영혼을 팔아넘겼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레드가 형사들에게 비디오카메라를 혐오한다며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객에게 ‘로스트 하이웨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데이빗 린치 감독이 조언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프레드와 피트는 각각 밤과 낮을 상징합니다. 밤을 상징하는 프레드는 야간에 클럽에서 일하는 색소폰 연주자입니다. 그가 일하는 클럽의 이름이 달을 의미하는 ‘Lunar’인 것도 밤과 연결됩니다. 프레드는 시종일관 진지해 결코 웃는 법이 없으며 소음을 혐오합니다. 의심하고 있는 아내를 제외하고 다른 여자에는 무관심하며 집과 클럽만을 오갈 뿐입니다. 그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소음을 강박적으로 혐오하는 정돈된 실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합니다.

반면 자동차 정비공 피트는 낮에 일합니다. 피트의 등장 이후에야 처음 등장하는 딕 로렌트는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피트를 감시하는 경찰들의 농담 또한 프레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앨리스의 등장으로 피트는 본연의 모습인 프레드가 속해있던 밤의 세계로 초대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라(나타샤 그렉슨 분)와의 치정 싸움은 물론 프레드가 저지르는 살인 역시 우스꽝스럽게 연출됩니다. 피트는 결코 집 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나돌며 두 여자를 탐합니다.

패트리샤 아퀘트는 뇌쇄적인 매력을 앞세워 1인 2역을 소화하며 영화 전반의 섹시한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그녀가 분한 금발의 앨리스가 샛노란 택시에서 내려 피트를 유혹하는 장면은 매우 강렬합니다. 원색에 인색해 피조차 빨간색이 아닌 진한 갈색으로 연출된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금발을 강조하기 위해 샛노란 택시가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사의 구멍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새하얀 얼굴의 의문의 사나이는 데이빗 린치의 대표작 ‘트윈 픽스’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입니다. 데이빗 린치가 ‘로스트 하이웨이’의 서사의 모티브로 설정한 것은 O.J. 심슨의 아내 살해 혐의로써 극중에서는 프레드가 아내 르네의 살해범으로 몰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르네를 살해한 것으로 추측되는 의문의 사나이로 분한 로버트 블레이크는 2002년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 공방에 시달린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로버트 블레이크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로스트 하이웨이’가 되었다는 점은 특이합니다.

개인적으로 ‘로스트 하이웨이’는 1997년 5월 22일 을지로 3가 명보프라자에서 무심코 관람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구입한 OST CD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해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 이후 국내에 제대로 된 dvd가 발매되지 않았으며 블루레이는 해외에서도 제대로 된 판본을 찾기 힘들어 언제나 재관람할 수 있을지 오매불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서울아트시네마의 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필름으로 재회한 ‘로스트 하이웨이’는 여전히 세련된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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