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산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 분)은 비리로 인해 해직의 위기에 처하자 필로폰을 빼돌려 조폭 최형배(하정우 분)의 도움으로 일본에 판매합니다. 이후 최익현은 다방면의 인맥을 구축해 최형배의 불법적 사업을 크게 확장시킵니다. 두 사람은 사업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조폭 김판호(조진웅 분)와 충돌합니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1980년대 초반부터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조폭을 대거 검거했던 1990년까지 1980년대 조폭의 성장과 몰락 과정을 다양한 시간대를 넘나드는 편집을 통해 묘사합니다.
조폭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서 한물 간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데 2000년대 초중반 조폭 영화가 범람했던 것은 의리와 배신이라는 극적인 반전이나 웃음과 동시에 액션을 관객에 제공할 수 있는 희화화의 대상으로서 조폭이라는 소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폭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치열하게 파고든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대통령의 명령 하에 정부가 행했던 범죄 소탕 작전을 제목으로 선택한 만큼 국가 권력과 한국 사회의 차원에서 조폭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파고듭니다. 오프닝에서 박정희 정권의 깡패 소탕 장면의 흑백 스틸 사진(1961년 자유당 정권의 정치 깡패 이정재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검거되어 사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사진입니다. 영화에서 얼굴과 이름이 모자이크 처리된 이정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부터 제시되고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의 대통령을 등장시켜 정치적, 현실적 맥락을 강조하며 ‘조폭 = 권력형 비리’라는 주제의식으로 무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부산의 조폭을 소재로 했기에 곽경택 감독의 2001년 작 ‘친구’를 연상할 수 있는데 톡톡 튀는 부산 사투리 대사는 물론이고 과거 한솥밥을 먹었으나 앙숙이 된 최형배와 김판호의 관계는 ‘친구’의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의 관계와 닮았습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조폭의 의리나 규칙은 실상 무의미하며 이익을 좇으며 배신이 횡행하는 것이 조폭 세계라는 관점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적 전개 역시 유사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맥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친구’와 달리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거시적 측면의 주제의식은 ‘범죄와의 전쟁’이 ‘친구’보다 우월합니다. 검찰과 안기부까지 가담한 권력형 비리를 파헤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죄와의 전쟁’은 과거의 조폭 영화들보다는 류승완 감독의 2010년 작 ‘부당거래’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최익현은 극중에서 검사 조범석(곽도원 분)이 규정했듯이 건달(조폭)도 민간인도 아닌 절반쯤 건달인 ‘반달’에 가깝습니다. 그가 조폭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조폭이 애용하는 폭력과 협박이 아니라 머리를 쓰며 혈연, 지연에 의존하는 것인데 따라서 조폭보다 더욱 강한 정치권력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범석의 ‘반달’ 언급에 맞서 최익현은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 규정하는데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농담과 같은 이 대사에는 강력한 풍자가 숨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 후보 노태우가 사용한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 및 학살의 책임으로부터 면피하기 위해 ‘보통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것입니다. 즉 학살자 노태우와 사기꾼 최익현은 매한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노태우가 군인으로 시작해 쿠데타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과 최익현이 세관 공무원으로 출발해 조폭과 손잡고 거물 로비스트로 거듭났다는 전개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노태우가 전임자 전두환과 같은 강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노력하며 대통령에 오른 것이나 최익현이 폭력이 횡행하는 조폭 세계에서 폭력에 기대지 않고 거물로 성장했다는 점 역시 비슷합니다.
최익현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 사람의 표본이자 동시에 성공한 가부장입니다. 더러운 돈을 벌면서도 틈나는 대로 외아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최익현의 노력은 아들의 검사 임용을 통해 결실을 맺습니다. 최익현이 ‘개같이 번 돈’이 ‘정승같이 쓰이’게 된 셈입니다. 조폭 로비스트 아들의 검사 임용은 부패한 부와 권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대물림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최익현이 아들에게 외형적으로는 정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대물림한 결말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계승되던 군사정권 세력이 현재까지도 정당의 이름만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바꿔치기한 채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하는 듯합니다.
결국 ‘범죄와의 전쟁’은 ‘깡패 위의 진짜 깡패’인 군사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영화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범죄와의 전쟁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극중에서 범죄와의 전쟁 이후 검사 조범석과 손잡은 최익현이 부를 누리고 살았다는 결말은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이 ‘먹을 것 없는 소문 난 잔치’였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강력한 조연인 최형배 역의 하정우와 최형배의 직속 부하로 등장해 독특한 머리 모양을 자랑하는 김성균을 비롯한 생생한 캐릭터와 쓸데없는 반전에 기대지 않아 우직한 서사의 힘이 돋보이는 ‘범죄와의 전쟁’은 기존의 조폭 영화들과 달리 단지(斷指)와 같은 고어 장면이나 욕설 및 말장난 유머, 일대 다수의 싸움과 같은 비현실적 액션 등의 전형적 요소는 배제했다는 점에서도 돋보입니다. 최근 개봉된 ‘퍼펙트 게임’이 동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증에 무신경했던 것에 반해 ‘범죄와의 전쟁’의 1980년대 고증은 완벽하지는 않으나 상당한 수준입니다. ‘퍼펙트 게임’에서 상당한 비중의 조연이었던 조진웅과 마동석이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 또한 이채롭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면 최형배가 검거된 이후 최익현의 후일담의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것입니다. 133분의 러닝 타임이 긴 만큼 압축 편집했다면 화룡점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1980년대 초반부터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조폭을 대거 검거했던 1990년까지 1980년대 조폭의 성장과 몰락 과정을 다양한 시간대를 넘나드는 편집을 통해 묘사합니다.
조폭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서 한물 간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데 2000년대 초중반 조폭 영화가 범람했던 것은 의리와 배신이라는 극적인 반전이나 웃음과 동시에 액션을 관객에 제공할 수 있는 희화화의 대상으로서 조폭이라는 소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폭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치열하게 파고든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대통령의 명령 하에 정부가 행했던 범죄 소탕 작전을 제목으로 선택한 만큼 국가 권력과 한국 사회의 차원에서 조폭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파고듭니다. 오프닝에서 박정희 정권의 깡패 소탕 장면의 흑백 스틸 사진(1961년 자유당 정권의 정치 깡패 이정재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검거되어 사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사진입니다. 영화에서 얼굴과 이름이 모자이크 처리된 이정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부터 제시되고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의 대통령을 등장시켜 정치적, 현실적 맥락을 강조하며 ‘조폭 = 권력형 비리’라는 주제의식으로 무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부산의 조폭을 소재로 했기에 곽경택 감독의 2001년 작 ‘친구’를 연상할 수 있는데 톡톡 튀는 부산 사투리 대사는 물론이고 과거 한솥밥을 먹었으나 앙숙이 된 최형배와 김판호의 관계는 ‘친구’의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의 관계와 닮았습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조폭의 의리나 규칙은 실상 무의미하며 이익을 좇으며 배신이 횡행하는 것이 조폭 세계라는 관점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적 전개 역시 유사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맥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친구’와 달리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거시적 측면의 주제의식은 ‘범죄와의 전쟁’이 ‘친구’보다 우월합니다. 검찰과 안기부까지 가담한 권력형 비리를 파헤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죄와의 전쟁’은 과거의 조폭 영화들보다는 류승완 감독의 2010년 작 ‘부당거래’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최익현은 극중에서 검사 조범석(곽도원 분)이 규정했듯이 건달(조폭)도 민간인도 아닌 절반쯤 건달인 ‘반달’에 가깝습니다. 그가 조폭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조폭이 애용하는 폭력과 협박이 아니라 머리를 쓰며 혈연, 지연에 의존하는 것인데 따라서 조폭보다 더욱 강한 정치권력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범석의 ‘반달’ 언급에 맞서 최익현은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 규정하는데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농담과 같은 이 대사에는 강력한 풍자가 숨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 후보 노태우가 사용한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 및 학살의 책임으로부터 면피하기 위해 ‘보통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것입니다. 즉 학살자 노태우와 사기꾼 최익현은 매한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노태우가 군인으로 시작해 쿠데타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과 최익현이 세관 공무원으로 출발해 조폭과 손잡고 거물 로비스트로 거듭났다는 전개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노태우가 전임자 전두환과 같은 강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노력하며 대통령에 오른 것이나 최익현이 폭력이 횡행하는 조폭 세계에서 폭력에 기대지 않고 거물로 성장했다는 점 역시 비슷합니다.
최익현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 사람의 표본이자 동시에 성공한 가부장입니다. 더러운 돈을 벌면서도 틈나는 대로 외아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최익현의 노력은 아들의 검사 임용을 통해 결실을 맺습니다. 최익현이 ‘개같이 번 돈’이 ‘정승같이 쓰이’게 된 셈입니다. 조폭 로비스트 아들의 검사 임용은 부패한 부와 권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대물림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최익현이 아들에게 외형적으로는 정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대물림한 결말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계승되던 군사정권 세력이 현재까지도 정당의 이름만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바꿔치기한 채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하는 듯합니다.
결국 ‘범죄와의 전쟁’은 ‘깡패 위의 진짜 깡패’인 군사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영화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범죄와의 전쟁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극중에서 범죄와의 전쟁 이후 검사 조범석과 손잡은 최익현이 부를 누리고 살았다는 결말은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이 ‘먹을 것 없는 소문 난 잔치’였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강력한 조연인 최형배 역의 하정우와 최형배의 직속 부하로 등장해 독특한 머리 모양을 자랑하는 김성균을 비롯한 생생한 캐릭터와 쓸데없는 반전에 기대지 않아 우직한 서사의 힘이 돋보이는 ‘범죄와의 전쟁’은 기존의 조폭 영화들과 달리 단지(斷指)와 같은 고어 장면이나 욕설 및 말장난 유머, 일대 다수의 싸움과 같은 비현실적 액션 등의 전형적 요소는 배제했다는 점에서도 돋보입니다. 최근 개봉된 ‘퍼펙트 게임’이 동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증에 무신경했던 것에 반해 ‘범죄와의 전쟁’의 1980년대 고증은 완벽하지는 않으나 상당한 수준입니다. ‘퍼펙트 게임’에서 상당한 비중의 조연이었던 조진웅과 마동석이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 또한 이채롭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면 최형배가 검거된 이후 최익현의 후일담의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것입니다. 133분의 러닝 타임이 긴 만큼 압축 편집했다면 화룡점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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