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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 희생 통해 전근대 구원하는 근대 영화

※ 본 포스팅은 ‘무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17년 중국의 변방 집성촌에 2인조 강도가 푸줏간을 털려하자 제지공 진시(견자단 분)가 격투를 벌인 끝에 강도들을 처치합니다. 의학에 밝은 수사관 바이쥬(금성무 분)는 진시가 우연히 강도들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무협의 고수라 판단하고 과거의 행적을 캡니다.

명장’ 이후 4년 만의 신작인 진가신 감독의 ‘무협’은 장르 자체를 의미하는 대담한 제목의 영화답게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충돌 속에서 전근대적인 무협이 사라져가는 20세기 초반을 묘사합니다. 중화권의 무협 영화들이 상당수 시공을 알 수 없는 배경을 설정했다면 ‘무협’은 오프닝에서 ‘1917년 운남성’이라고 시공간을 규정합니다. 1917년이면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했지만 운남성은 중국의 서쪽 변방이기에 근대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곳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당시 변방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의상, 가옥, 성인식과 같은 풍습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전근대와 근대가 혼재된 것은 시공간적 배경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무협 고수 진시는 전근대적인 인물로 사교 집단과 연루된 과거를 숨긴 전근대적 인물인 반면, 진시의 뒤를 캐는 바이쥬는 안경과 중절모가 상징하듯 한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근대적 인물입니다. 과거를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숨바꼭질을 통해 무협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 묻는 것이 ‘무협’의 주제 의식입니다. 따라서 무협 액션 영화와 스릴러의 성격을 동시에 갖췄습니다. 가족이 없는 바이쥬의 희생을 통해 진시가 봉건적 부권으로 상징되는 전근대와 결별하고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근대성의 희생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진시와 2인조 강도의 대결 장면이 처음 제시될 때와 바이쥬의 재해석에 의해 제시될 때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는 것은 ‘라쇼몽’을 연상시킵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교주 역의 왕우는 그의 대표작 ‘외팔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14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68세의 왕우는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의 예리한 마스크는 사라지고 살이 많이 쪘지만 선한 주인공을 연기하던 젊은 시절에도 왠지 악역의 이미지가 묻어났기에 ‘무협’에서의 악역은 매우 잘 어울리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습니다. 주인공 진시가 스스로 팔을 끊고 외팔이가 되며 어린 시절에는 왕우가 분한 아버지이자 교주와 빼닮았다는 대사는 너무나 선명한 ‘외팔이’의 오마쥬입니다. 하지만 교주와 진시의 결투 장면에서 진시의 칼이 날아간 이후 편집이 잠시 어색합니다.

세 남자 배우의 비중은 상당하지만 아쉽게도 탕웨이의 비중은 미미합니다. 연기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각본이 부여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얼굴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어두운 과거와 정체를 숨긴 은둔 고수라는 설정은 오우삼의 최근작 ‘검우강호’를 비롯해 흔한 것이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은 ‘무협’이 낫습니다. 중화권 무협 영화들이 허황된 CG나 대규모 군중 동원 장면에 경도된 것에 비하면 ‘무협’은 상당히 소박한 작품입니다. 최근 중국 제작사가 참여한 중화권 영화들이 은연중에 공산당과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미화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협’은 이 같은 경향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진가신의 전작 ‘명장’이 의외로 강렬한 작품이었는데 ‘무협’ 역시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개봉 1주일 만에 서울 시내 개봉관이 씨가 마르다시피 할 만큼 천대받을 영화는 아니기에 안타깝습니다.

명장 - 대의와 형제애 사이에서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동사서독 2011/11/25 10:53 #

    첨밀밀부터 시작해서 장철의 자마를 리메이크한 (투)명장까지 진가신의 작품은 쟝르를 초월해서 믿음이 간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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