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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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너스 - 사랑의 시작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암으로 아버지(크리스토퍼 플러머 분)를 여읜 일러스트레이터 올리버(이완 맥그리거 분)는 먼저 사망한 어머니(메리 페이지 켈러 분)와 많은 시간을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프랑스인 여성 애나(멜라니 로랑 분)와 올리버는 사랑에 빠지지만 불안에 휘말립니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2010년 작 ‘비기너스’는 결말에 이르러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사랑 영화입니다. 사랑을 소재로 유머 감각도 갖췄기에 로맨틱 코미디라고 손쉽게 규정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비기너스’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우선 매우 사색적입니다. 점프 컷과 같은 빠른 장면 전환에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삽입되는 것은 최근 할리우드 영화보다 반세기 전 누벨바그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입니다. 금발의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이 주연이라는 사실을 넘어 그녀가 누벨바그의 대표작 ‘쥴 앤 짐’에서처럼 남장을 한 채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채롭습니다. 올리버의 압축적인 일러스트와 유머러스한 문구는 진지하게 사색을 자극하며 애나의 필담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범상치 않은 것은 편집입니다. ‘비기너스’는 시작과 함께 주인공 올리버의 부모가 모두 사망했을 알리며 시작하지만 오히려 이들이 생존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 절반 가까운 러닝 타임을 할애합니다. 소년 시절 함께 했던 어머니와 애나를 만나기 직전 암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 대한 회상 장면이 올리버가 애나와 사귀는 현재의 장면과 겹쳐 편집되어 기묘한 감상을 자아냅니다. 부모의 부부 관계가 소원했기에 외동인 올리버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며 심하게 외로움을 탔던 것입니다. 먼 과거와 최근, 그리고 현재를 넘나드는 현란한 편집을 통해 죽은 이들의 생전의 모습을 제시하며 과거의 성장 과정이 인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삶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웁니다.

여주인공 애나보다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올리버의 아버지 할입니다. 게이로서 평생을 보낸 뒤 아내의 죽음 뒤에 커밍아웃한 할은 죽음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이 열정적인 삶을 살며 사랑에 빠집니다. 아버지와 그의 젊은 남자 친구 앤디(고란 비스닉 분)의 사랑을 지켜보며 외로움이 심화된 올리버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후 생전에 아버지를 독점했다고 질투했던 앤디와도 화해하며 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부자 관계를 조명했으며 역시 이완 맥그리거 주연이었던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보다 ‘비기너스’의 부자 관계가 더욱 인상적입니다.

‘비기너스’의 또 다른 매력은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입니다. 할과 앤디 커플 외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유태인인 어머니 조지아는 올리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올리버가 유태인 여배우 애나와 사랑에 빠진 것은 어머니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니지만 잭 러셀 테리어의 견공 아서(코스모 분)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생생한 조연들로 인해 주인공 커플이 묻힐 정도입니다. 복잡 미묘한 표정 연기에 능한 이완 맥그리거도 노련하며 안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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