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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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 - 삶과 죽음, 그 고통스런 퍼즐 영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이길래?’하는 심정으로 기다려왔던 ‘21그램’을 보고 난 지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많은 찬사가 결코 과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으로 세 가정과 남녀가 얽혀드는 이야기를 그린 ‘21그램’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신파 주말 드라마 수준으로 격하될 내용을 절묘한 편집과 카메라 워킹으로 극복합니다.

초반부에는 시간 순서를 마구 흐트러 놓은 편집에 적응되지 않아 다소 힘들었습니다만 결말부를 진작부터 제시하고 이를 꿰어 맞추는 퍼즐과 같은 영화라는 것에 적응되고 나니 중반부 이후부터는 즐기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끝나기 30분을 앞두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세 명이나 있더군요. 하긴 ‘21그램’과 같은 영화는 취향이 아닌 사람에게는 쥐약일 겁니다. 군복무 시절 제가 상황병으로 당직 근무하던 일요일에 내무반에서 ‘중경삼림’의 비디오를 틀었다가 다들 졸아버려서 중간에 꺼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일병 휴가 나가서 극장에서만 두 번 본 나는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으니 영화는 순전히 취향에 맞게 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 순간에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 것일까, 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원인을 하나하나 퍼즐처럼 짜맞추기 시작하면 분명히 여러 가지 원인과 전조와 암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21그램’이 바로 그런 방식을 선택합니다. 인간은 결코 결과만으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과정의 원인과 전조와 암시들을 꿰어 맞추고 회상하며 더욱 불행해지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면 그 사실만으로 불행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나를 만나고 있었던 동안 보여주었던 의심스러웠던 행동들이 하나하나 꿰어 맞춰지며 불행과 고통은 증폭되기 마련인데 ‘21그램’이 그런 고통들에 대해 진지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더군요. 그런데 그런 원인과 전조와 암시는 회상 속에서 앞뒤가 마구 뒤바뀐 채 뒤섞이게 되는데 '21그램'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 바로 불분명하며 불연속적이고 앞뒤가 뒤바뀐 우리의 기억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어렸다면 아마도 ‘21그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다지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21그램’과 같은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군요.

독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연상케하는 거친 화질과 끊임없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 카메라는 등장 인물들의 고통과 불행, 갈등을 표현합니다. 어쩐지 이런 방식을 이전에도 채택했던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이나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연상케하더군요.

딱히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배우들인 숀 펜과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베니치오 델 토로를 보면서 가끔 살이 찐 브래드 피트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21그램’에서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만큼 비슷하더군요. 나오미 왓츠가 출연한 영화는 이번에 처음 본 것인데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백지 같은 외모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1968년생)에 좀 놀랐는데 내년 연말에 개봉될 ‘킹콩’에 에이드리언 브로디(‘빌리지’)와 함께 출연한다니 기대됩니다.

‘21그램’의 주제 의식은 매우 직접적입니다. 같은 대사가 무려 3번이나 등장하지요. 바로 ‘삶은 계속된다.’입니다.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에 불과하다면 삶의 무게에 짓눌릴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적당한 게 좋겠지요.

덧글

  • anakin 2004/10/25 01:57 #

    정말로 멋진 편집이죠. 처음에는 시간과 공간을 마구 섞어놓은 구성이 좀 이해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오히려 그것이 영화의 주제를 더 효율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되죠.. 주제 의식에 대한 말씀도 많이 공감이 가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mesh 2004/10/25 09:51 #

    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중간 중간 다르게 나타나는 색감이라던가 미묘한 노이즈, 미표하게 흔들리는 핸드핼드 영상, 그리고 각 구성의 연결은 만들어 내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그러한 구성을 영화를 보는 관객이 캐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나리오의 탄탄한 구성력이나 편집의 묘미를 생각하는 것도 영화 자체의 재미 외에 2차적으로 오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네요.

    베네치오 델 토로, 정말 좀 살찐 브래드 피트 같더라구요~
    저두 보는 내내 놀랐습니다. :-)
  • 디제 2004/10/25 13:30 #

    anakin님/ 촬영과 편집의 미학 때문에 dvd로 나오면 반복 감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mesh님/ 사실 베네치오 델 토로도 잘 생겼죠. ^^
  • dana 2004/10/25 13:34 #

    저는 시사회에서 봤는데 영화 보는 도중에 나가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어요...확실히 취향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질법한 영화죠...영화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
  • 디제 2004/10/25 16:25 #

    dana님/ dana님 블로그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dana님께서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 flowith 2004/10/25 19:24 #

    어서 봐야할텐데요. 이 영화가 마음에 드셨다면 같은 감독의 <아모레스 페로스>도 한 번 보세요. <나쁜 교육>에서 동생(이름을 잊어버렸네요 그 새)으로 나왔던 배우가 나오는데, 21그램과 비슷하면서도 주제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군요.
    아직 영화를 안 봤지만 <미스틱 리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고 있는데(숀펜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미스틱 리버>는 보셨는지요?
  • 디제 2004/10/25 23:11 #

    flowith님/ '나쁜 교육'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이군요. 좋은 작품들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보겠습니다. ^^
  • xmaskid 2004/10/26 07:55 #

    미스틱리버와는 스타일 면에서는 다르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한 사건이 현재의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볼수 있겠네요. 저는 21그램과 미스틱리버 모두 즐겁게 보았습니다.
  • 마르스 2004/10/26 09:32 #

    아무리 그래도 살찐 브래드피트는 너무하시네요.
  • 디제 2004/10/26 15:07 #

    xmaskid님/ 그러니시까 '미스틱 리버'를 더욱 보고 싶어지는 걸요.
    마르스님/ 베네치오 델 토로에 대한 모욕인가요? 그래도 저도 베네치오 델 토로 참 좋아하는 걸요. 이름도 한번 들으면 절대 안잊게 되고요.
  • paper 2004/11/25 14:10 #

    베네치오 델 토로....너무 멋져요.
    브래드 피트 좀 닮았죠...ㅋㅋ
    체게바라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던데
    체게바라하고도 정말 똑 닮았더군요.

    21그램은 올해 본 영화중 가장 좋은 영화였네요.
    조제와 더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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