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식민지 치하 베트남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프랑스인 15세 소녀(제인 마치 분)는 우연히 만난 32세의 중국인 남자(양가휘 분)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소녀의 가족들은 부자인 남자의 돈을 노골적으로 탐냅니다.중국인 남성과 프랑스인 소녀의 사랑을 묘사한 1992년 작 ‘연인’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을 장 자크 아노가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인종, 국적, 나이, 빈부의 격차를 넘어선 두 주인공의 사랑은 소녀가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가 집안 사이에 약속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뻔히 끝이 보입니다. 1년 뒤 이별이 예정되었기에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섹스에 열중하며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자신들의 사랑이 돈을 매개로 한 것이라 애써 자위합니다.
‘연인’은 헤어 누드와 강도 높은 섹스 장면을 불사한 두 주연 배우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기 직전 소녀의 다리 사이로 남자의 고급차가 잡히는 미장센은 두 사람의 끈적끈적한 섹스를 암시합니다.
제인 마치는 미성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으로 분해 (‘연인’의 개봉 당시 제인 마치는 19세였습니다.) 남성용 모자를 쓴 보이시한 매력과 더불어 글래머로서의 섹시함이 돋보입니다. 전형적인 미인상과는 거리가 있으나 개성이 강한 제인 마치가 ‘연인’과 ‘컬러 오브 나이트’ 이후 두드러진 필모그래피를 남기지 못한 채 과작에 그쳤다는 사실은 안타깝습니다.
보이시한 여주인공과 달리 양가휘가 분한 상대역인 중국인 남자는 두 주인공의 첫 번째 스킨십에서 강조되는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처럼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파리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이면서도 전적으로 아버지의 재산에 의존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속자입니다. 소녀와의 첫 만남에서 담배를 권하며 손을 떠는 것은 남자가 무수한 여자관계에도 불구하고 소녀에게 한눈에 반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소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비치는 새장은 운명에 갇힌 처지를 상징합니다. 시장 한복판의 별실 ‘독신자의 방’에서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딱히 낙도 없는 허무한 인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연인’의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허무감과 나른함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편 중독자인 소녀의 오빠의 빚과 프랑스까지의 여비를 해결해줄 정도로 배려심이 깊습니다.
아쉬운 것은 소녀가 탄 배를 떠나보내는 남자의 차가 등장한 것만으로 결말이 충분했을 텐데 후일담을 통해 남자가 소녀에게 연락해왔다는 사족이 더해졌다는 점입니다.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아닌 지나치게 친절하며 직접적인 결말이 된 것입니다. 오프닝과 엔딩을 비롯한 내레이션은 대배우 잔느 모로가 맡았습니다.
장미의 이름 - 중세의 종말을 암시하는 추리극
http://twitter.com/tominodijeh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