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전국시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십여 개의 나라들과 별처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인간의 영토욕, 권력욕, 전쟁욕, 재물욕, 성욕 등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책머리에’에서 김구용은 춘추전국시대를 ‘약육강식, 대자병소(大者倂小)’로 압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간의 여론에 신경 쓰는 권력자들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실리만 좇지 않고 명분을 축적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포악한 독재자의 상징인 진왕 정조차도 노애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유폐를 풀고 효자라는 평판을 듣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자백가가 등장해 동양 사상의 근간이 확립된 시기로도 유명한 이 시대를 살았던 공자, 손자, 한비자 등의 묘사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고지식하기만 한 유가 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공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병법가로서의 일면을 제시합니다. 손자는 1980년대 국내 출판 시장을 풍미했던 정비석의 베스트셀러 ‘손자병법’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무욕의 병법가로 묘사됩니다. 당대의 인재 한비자의 어이없는 최후는 난세에 얼마나 사람 목숨이 쉽게 사라질 수 있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과거제가 아직 등장하지 않아 혈연과 인맥, 추천 등을 통해 문무 관리를 임명해 능력 있는 인물과 무능한 인물이 혼재되어 등용되었으나 난세였던 만큼 인물의 능력은 금세 검증됩니다. 뇌물이나 변설을 통해 한 자리 얻은 인물이 나라를 망치는 전개는 진부할 정도로 정석적입니다. 하지만 유능하며 청렴한 인물이 참소로 인해 권력에서 밀려나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전개 역시 정석적이기에 인간사의 무상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 역사소설의 대표작인 ‘삼국지’와 ‘동주 열국지’를 비교하면 ‘동주 열국지’가 보다 장구한 세월을 비슷한 분량으로 압축했기에 전개가 훨씬 빠르고 간결합니다. 개별 등장인물들에 대해 섬세한 묘사를 곁들이며 작자가 감정을 이입하는 ‘삼국지’에 비하면 ‘동주 열국지’는 불친절할 정도로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적고 냉정하리만치 감정 이입을 자제합니다. 하지만 고전을 읽으며 세부 묘사가 부족한 부분에 상상을 대입하는 것 또한 매력적입니다. 사건과 인물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요약한 시가 중간 중간 삽입되어 이해를 돕습니다.
당시의 복잡한 정세와 등장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부록도 훌륭합니다. 각 왕실의 계보도와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그리고 연보 등은 본문과는 별도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동주 열국지’가 역사 소설인 만큼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부록에서는 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사의 기록조차도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아울러 현재까지 널리 쓰이는 사자성어의 유래가 된 고사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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