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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방향 - 우연에 의존한 일상성의 고찰 영화

※ 본 포스팅은 ‘북촌 방향’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 영화감독이었으나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하지 않는 성준(유준상 분)은 서울에 올라와 영화평론가 영호(김상중 분)와 만나 시간을 보냅니다. 영호의 단골 술집에서 여후배 보람(송선미 분)과 함께 술을 마시던 성준은 술집 주인 예전(김보경 분)에게 반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12번째 영화 ‘북촌 방향’은 전직 영화감독이자 현직 지방대 교수인 사내가 서울에서 술집을 전전하며 여자와 동침하기 위해 들이댄다는 전형적인 홍상수표 코미디입니다. 패션 감각과는 거리가 먼 후줄근한 옷차림과 콧수염을 통해 성준이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임을 알 수 있는데 ‘극장전’의 주인공 동수 역의 김상경과 ‘옥희의 영화’의 주인공 진구 역의 이선균의 파카 및 치노 바지 차림과도 빼닮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영화 평론가, 교수 등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소위 ‘먹물’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술주정으로 늘어놓으며 여자와 동침하기 위해 추파를 던지는 데만 열중합니다. 대사는 영화적으로 정제된 것이 아니라 주술 및 호응 관계가 무시되어 구어적이며 생생합니다. 성준은 옛 여자 경진을 잊지 못해 하룻밤을 보낸 후 배를 채운 짐승마냥 냉정하게 굴지만 새로 들이대는 여자 예전은 경진과 닮았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독특한 전작 제목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새롭게 반한 여자의 이름이 ‘예전’으로 역설적인 작명이며 경진과 예전을 김보경이 모두 연기했다는 점도 이채롭습니다.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4박 5일처럼 보이면서도 하루하루가 분절적이기에 그보다 긴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무의미한 굴레이자 영원한 반복처럼 보입니다. 예전이 운영하는 술집 ‘소설’에 반복적으로 들러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지만 주인공 성준이 새롭게 열중하는 여자 예전이 옛 여자 경진과 닮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타입의 이성은 한정적이어서 비슷한 타입과 반복해서 만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과 캐스팅으로 보입니다. 성준이 세 명의 영화과 학생들과의 두 번 조우하는 것처럼 우연에 의존한 일상성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야말로 ‘북촌 방향’의 주제 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준은 예전에 푹 빠졌으면서도 영호가 아끼는 보람에 미묘한 감정을 품으며 보람 역시 영호의 사랑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성준에 추파를 던집니다. 일편단심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좌충우돌 연애 기질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준이 예전과 동침한 밤, 영호가 보람과 동침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북촌 방향’은 성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지만 그의 미묘한 심리는 내레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세련된 연출 방식을 선택합니다. 네 편이나 영화를 연출한 성준이 왜 더 이상 영화감독을 하지 않고 지방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돌아온 배우 중원(김의성 분)의 대사와 후반에 등장하는 카메오 백종학의 냉랭한 반응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원이 성준의 연출 데뷔작의 주연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성준은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이며 김의성이 홍상수 감독의 찬란한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고 1993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한 바 있으며 베트남에서 실제로 영상 사업에 종사했음을 감안하면 현실을 영화에 투영한 의도적인 설정입니다. 백종학은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강원도의 힘’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으니 ‘북촌 방향’에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의 주연이 모두 출연한 셈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에 이름이 등장해 과연 어떤 장면에 등장할 것인지 관심을 집중시키는 고현정은 마지막 장면을 장식합니다. 고현정의 등장으로 왜 영화 제목이 ‘북촌 방향’인지 명확히 제시되며 동시에 유준상의 멍한 표정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며 강렬한 잔상을 남깁니다.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촬영되었으며 대부분의 장면을 롱 테이크로 처리하고 갑작스럽게 줌을 활용하는 카메라 워킹은 고풍스런 프랑스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오프닝 타이틀의 흘려 쓴 손 글씨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 ‘옥희의 영화’와 닮았습니다. 노출 장면이나 노골적인 베드신도 없으며 대사가 직설적으로 섹스를 말하는 것인 것도 아닌데 ‘북촌 방향’이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아쉽습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어도 무리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남자라는 이름의 수컷
극장전 - 영화를 위한 영화
옥희의 영화 - 독특한 형식미, 홍상수의 변주곡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BlackGear 2011/09/11 13:55 #

    아마 이해하기 힘들것이라고 청소년 관람불가평을 내리진 않았을까요. 간혹 그런 등급설도 나돌기에...
  • 영화사사 2011/09/13 12:14 # 삭제

    저기요..똑같은 내용포스팅 네이버블로그에도 잇는데..
    블로그두개 운영하시나요?
  • 디제 2011/09/13 12:18 #

    예스24에 분점을 운영중이어서 영화, 도서 포스팅은 분점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tomino&artSeqNo=5118415

    위 블로그는 제 분점입니다.

    혹시 예스24가 아닌 네이버 블로그에 제 블로그 글이 그대로 있다면 무단 도용입니다만...

    제가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예스24의 제 분점만 나오고 네이버 블로그는 안나오던데

    혹시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간 곳이 있다면 비밀 글로 살짝 알려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

  • 2011/09/13 12:34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디제 2011/09/13 13:49 #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폭탄 2011/09/13 13:51 # 삭제

    9월30일까지 블로그페쇄 조치합니다.

    이유는: 카테고리 : 일상의 단상
    영화 펌질 블로그,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기억이 날거야.....

    거짓말인지 두고보면 알거야...
  • 킥소식 2011/09/13 14:06 #

    9월30일까지 블로그페쇄 조치합니다.

    이유는: 카테고리 : 일상의 단상
    영화 펌질 블로그,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기억이 날거야.....

    거짓말인지 두고보면 알거야...
  • 메이 2011/10/02 13:39 #

    예전에 어떤 기자분이 왜 청소년 관람불가로 자체 신청(?) 했냐구 물어본 적있어요
    그 때 홍감독님께서
    " 그 친구들 이 영화봐서 뭐 합니까? " 라고 하셨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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