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 히어로 만화 원작에서 출발해 당연히 만화적인 요소들이 상당하지만 ‘배트맨 2’는 그에 못지않게 팀 버튼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납니다. 동화와 판타지, 호러를 결합한 팀 버튼의 ‘배트맨 2’는 2000년대 들어 ‘배트맨’ 시리즈를 부활시킨 크리스토퍼 놀란의 사실주의적 성향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영화가 상영된 200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해 현대적인 분위기라면, 1992년 작 ‘배트맨 2’의 고담 시는 제작 당시인 1990년대가 아니라 그로부터 반세기 전인 20세기 초중반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해 고전적인 갱스터 느와르의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펭귄의 일당은 20세기 초중반 미국을 풍미했던 갱단에 서커스단의 요소를 결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제작 당시 첨단이라 할 수 있는 차량용 모니터나 CD, 전기 충격기, 대형 TV 등이 등장하지만 ‘배트맨 2’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고전적인 의상과 세트가 말해주듯 복고에 가깝습니다.
‘배트맨 2’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로운 시리즈의 또 다른 차이점은 주인공 브루스 웨인, 즉 배트맨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나이입니다. ‘배트맨 2’ 개봉 당시 주연 마이클 키튼은 41세였으며 그의 노안과 외로움에 지친 브루스라는 캐릭터로 인해 40대 중후반 이상은 넉넉히 되어 보입니다. 상대역 펭귄과 캣우먼을 각각 맡은 대니 드비토와 미셸 파이퍼 역시 40대 전후로 보입니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이 40대 전후이며 연출 또한 그들을 굳이 젊게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적대시하는 세 명의 캐릭터는 서로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성격과 심리 면에서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가면무도회에 평소 가면을 착용해 정체를 숨기는 브루스와 셀리나만이 가면을 쓰지 않고 참석하며 가면무도회장에 난입하는 펭귄 역시 가면을 쓰지 않고 나타나 세 캐릭터의 동질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배트맨 2’의 액션을 비롯한 작품의 분위기는 복고적인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다소 늘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로운 시리즈에서 브루스 역의 크리스찬 베일은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며 상대역들 역시 비슷한 또래로 보입니다. 전반적인 분위기의 활력과 액션의 파괴력에 있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리즈가 오락성과 작품성 양면에서 압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배트맨 2’의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냉소적이며 기괴한 팀 버튼의 요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디즈니의 상징이자 선하고 밝은 캐릭터로 전 세계 어린이의 동심을 사로잡고 있는 미키 마우스를 연상시키는 쥐 캐릭터가 불길한 냉소를 지으며 고담 시를 곳곳에서 굽어보는데 펭귄과 맥스의 여론 조작에 쉽게 호도되는 고담 시의 우매한 대중들을 향한 냉소로 보이기도 하며 '쥐가 내려다보는 도시에서 고양이(캣우먼)가 날뛴다'는 역설적인 의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펭귄의 플라스틱 오리 보트는 서구에서는 유명한 고무 오리 장난감과 닮았는데 펭귄의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정신 연령과 미운 오리 새끼 신세를 중의적으로 비유합니다. 펭귄이 고담 시의 어린이들을 납치하려하는 것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내’를 연상시키며, 어린이 납치에 동원된 펭귄 일당의 열차를 박쥐 모양 그림자부터 드러낸 배트맨이 저지하는 장면은 19세기 영국 여왕이 탑승한 열차를 탈선 사고 직전에 나방이 전조등에 붙어 미연에 방지했다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양이 목숨은 9개’라는 서양의 속설에 빗댄 전개도 흥미로우며 북극곰의 거대한 조각을 전면에 앞세운 동물원의 ‘Acrtic World’(북극 세계)가 남극의 상징 펭귄의 거처가 된 것 또한 팀 버튼의 장난기가 엿보입니다.
‘배트맨 2’의 블루레이는 dvd보다는 개선되었으나 칼 같은 화질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팀 버튼의 암울한 세계관에는 칼 같은 화질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니 ‘배트맨 2’의 블루레이는 무난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배트맨 2 - 진짜 주인공은 주체적인 그녀, 캣우먼’에서 예상했듯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 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지즈’에는 셀리나/캣우먼이 등장하게 되었고 앤 해서웨이가 캐스팅되었습니다.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과 앤 해서웨이가 합작하는 캣우먼은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지 벌써부터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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