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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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어벤져 - 애국심 강조하는 미국의 약물 영웅 영화

뉴욕 출신의 청년 스티브(크리스 에반스 분)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군 입대를 자원하지만 왜소한 체구로 인해 번번이 거부당합니다. 스티브의 사명감을 높이 산 독일 출신의 에스카인 박사(스탠리 투치 분)는 스티브를 발탁해 슈퍼 솔져로 재탄생시킵니다.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나치의 특수 조직 히드라의 음모에 맞섭니다.

마블의 만화 ‘캡틴 아메리카’를 영화화한 ‘퍼스트 어벤져’는 도입부와 결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면을 1940년대에 할애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슈퍼 히어로를 묘사합니다. 본명 ‘스티브’보다 미국을 상징하는 이름 ‘캡틴 아메리카’로 익히 알려진 타이틀 롤로 발탁된 것은 크리스 에반스입니다. 그가 이미 두 편이나 제작된 슈퍼 히어로 영화 ‘판타스틱 4’에 자니 스톰으로 출연했다는 점에서, 게다가 ‘캡틴 아메리카’ 역시 ‘판타스틱 4’와 마찬가지로 마블의 만화임을 감안하면, ‘퍼스트 어벤져’의 타이틀 롤 캐스팅은 의외였습니다.

‘판타스틱 4’의 자니 스톰은 가벼운 성격의 바람둥이지만 ‘퍼스트 어벤저’의 스티브 로저스는 시종일관 진지한 성격이며 책임감이 강해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크리스 에반스의 연기 변신은 무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크리스 에반스의 굵고 차분한 목소리는 연기 변신을 뒷받침합니다. 184cm의 작지 않은 신장과 근육질의 크리스 에반스를 왜소한 체구의 스티브로 탈바꿈 시켜준 CG 효과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퍼스트 어벤져’의 타이틀 롤 캡틴 아메리카의 존재 의의인 육체적 능력이 철저히 약물에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철두철미한 애국심으로 무장했으며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정신력을 지닌 미국의 영웅이 실은 약물의 소산이라는 설정은 헛웃음을 자아냅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를 ‘악’으로 규정한 뒤 침략을 비롯한 부정한 수단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오늘날 미국의 뻔뻔스러운 행태를 70년 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가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입니다.

1985년 작 ‘록키 4’에서 미국의 실질적인 슈퍼 히어로 록키가 자연 친화적인 훈련에 매진했던 것과 달리 소련의 인민 영웅 이반은 약물에 의존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소련 = 약물’이라는 손쉬운 공식으로 치환했던 것을 회상하면 사반세기 만에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약물, 즉 부정한 수단에 대한 죄의식이 엷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스카인 박사가 만든 약물은 ‘선인은 선한 면을 증폭시키며 악인은 악한 면을 증폭시킨다’는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대를 절대악으로, 자신을 절대선으로 규정하는 방식 또한 힘으로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흑백 논리에 기초한 양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미군 징병 포스터를 애니메이션화한 엔드 크레딧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애국주의와 영웅주의가 한국 관객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한 국내 수입사가 원제 ‘캡틴 아메리카’ 대신, 내년 개봉을 앞둔 ‘어벤져스’를 홍보하는 부제 ‘퍼스트 어벤져’로 개봉명을 확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초중반의 뮤지컬 장면입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강인한 신체적 능력을 활용해 최전선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애국 채권 판매 홍보에 동원되는데 DC의 슈퍼 히로인 원더 우먼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무희들 속에서 ‘히틀러 때려잡는’ 캡틴 아메리카와 그에게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은 ‘퍼스트 어벤져’가 강조하는 미국의 애국주의 딱 그 수준입니다.

‘퍼스트 어벤져’의 주제 의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으나 시간 죽이기 오락 영화로는 무난합니다. 올해 개봉된 슈퍼 히어로 영화 ‘그린 호넷’, ‘토르 : 천둥의 신’, ‘그린 랜턴’에 비해서는 재미 면에서는 다소 낫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형성하는 중반까지의 전개에 비해 후반부가 늘어지는 것이 약점이며 시대 수준을 넘어선 오버 테크놀로지라는 점이 어색하지만 SF와 밀리터리의 결합은 여타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차별화된 장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전용 무기 방패가 5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스티브가 뉴욕 브룩클린 뒷골목에서 얻어맞을 때는 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사용하더니, 약물 주입 후 히드라 요원과 추격전을 벌이며 택시의 출입문을 방패로 활용하며, 이후 애국 채권 판매를 위한 홍보용으로 중세 기사를 연상시키는 방패를 사용합니다. 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실전에 정식으로 투입되자 도색이 되지 않은 원형 방패가 등장하고 최종적으로는 성조기에 착안한 캡틴 아메리카의 코스튬에 부합하는, 별이 강조되는 도색된 원형 방패가 등장합니다. 방패와 더불어 캡틴 아메리카의 코스튬도 홍보용에서 전투용으로 변화하며 코스튬에 군복을 덧입는 레이어드 룩으로 멋을 부립니다.

토르 : 천둥의 신’과 마찬가지로 ‘퍼스트 어벤져’ 역시 내년 5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로 향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든든한 지원자 하워드 스타크(도미닉 쿠퍼 분)는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이며, 종반에는 닉 퓨리(새뮤얼 잭슨 분)도 등장합니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는 ‘토르 : 천둥의 신’과 마찬가지로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명시하며, 엔드 크레딧 이후 추가 장면과 함께 ‘어벤져스’의 짧은 예고편이 제시됩니다. ‘어벤져스’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인연을 맺은 70년 전 인물들의 후일담이 삽입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Dead_Man 2011/08/03 13:11 #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만세 영웅이 아닌데요; 포인트를 잘못 이해하신듯;
  • 풍신 2011/08/03 15:21 #

    몇가지 지적하자면, 약물을 이야기하시면서 록키(1985)와 비교해서 사반세기라고 하셨는데, 캡틴 아메리카 코믹은 록키와 비교해서 거의 반세기 전에 나왔으니...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수퍼 솔져 혈청은 그 시절의 코믹 설정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고 말이죠. (뭐 그 오리진 부분의 약물은 요즘 세상에 안 어울리니 바꿨어야 했다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쁘게 말하면 약물이지만, 좋게 말하면, 힘은 약물 따위로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은 그게 불가능하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고 말이죠.

    뭐 하긴 그 시절의 마블 코믹 자체가 은근히 미국 광고로 캡틴이 나치 박살내고 아이언맨이 중국, 소련 적대 하는 내용이었으니...태생의 한계라고 할 수 있고 말이죠. 물론 그걸 마블은 미국인에게서도 버려져가는 미국의 이상이나 민주주의의 심볼로서 캡틴을 포장하기 시작해서 요즘은 그런 쪽이 부각되는 캐릭이 되었지만...
  • 오히려 2011/08/03 17:32 # 삭제

    딱 미국식 영웅이죠. 그러니 민주주의에서는 진짜 영웅이 없어지는것이겠고...

    그래서 다시 영웅을 바라는데, 미국식 그대로면 채권 판매나 하는 영웅일수밖에...
  • 오히려 2011/08/03 17:34 # 삭제

    대량의 물량앞에 진짜 영웅이 있어봤자 뭘 하겠냐만은...
  • 잠본이 2011/08/03 21:45 #

    그래서 극중에서도 원래는 토미리존스가 연기한 대령이 '난 부대 하나를 주문했는데 완성된건 얘 하나뿐이라고?'라며 스티브의 전투참가를 봉쇄해버리고 할일이 없어진 스티브는 모 의원의 권유로 채권팔이소년 노릇을 하게 되죠.

    ...그러나 슈퍼솔저 약물은 그의 숨은 반항심까지 강화하고야 말았으니(이하생략)
  • 바르도나 2011/08/03 18:32 #

    한국만 제목 바뀐 건 아닙니다.
    수입사에서 타이틀 바꾼게 아니라 제작사 측에서 일부 국가 한정으로 퍼스트 어벤저라는 타이틀로 걸어달라고 한 걸로 압니다만.
  • ChristopherK 2011/08/03 20:12 #

    Winners don't use drugs..응?
  • 잠본이 2011/08/03 21:46 #

    방패의 5단계 진화과정이 흥미롭군요. 택시 문짝은 깜빡 잊고 있었는데 좋은 지적이신 듯.
  • 한국 짱 2011/08/03 23:32 #

    1. 우리나라만 캡틴 아메리카의 제목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2. 뉴벨에 글 올리시는 분도 '분명 캡틴 아메리카를 미국식 애국주의, 패권주의라는 사람들이 나올 거다'라는 식의 논조로 이야기했었는데 미국의 마블 코믹스에서 정말로 미국의 패권주의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아이언맨이라고. 오히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현실적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그와는 반대로 도리어 '미국이 정말로 가져야 하는 선의-혹은 이상론-'를 지향하는 쪽입니다. 만화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말도 좌파쪽 인사가 남긴 말이라고 하는 걸 보면 님께서 본 쪽과는 다릅니다.

    3. 실제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식 애국주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단순하게 '정부의 개'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경우 서슴없이 정부와 반대되는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그의 패배는 미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기믹이라고까지 합니다. 강한 애국심에 더해 극히 선하고 순수한 도덕심까지 합해진 캐릭터가 바로 캡틴 아메리카라고 하니 단순하게 생각을 해도 무조건 '애국심'만 부르짖는 캐릭터가 수십년간 인기를 끌 이유가 없죠
  • ChristopherK 2011/08/04 10:51 #

    생각해보니 시빌 워에서 반대파의 중심이 캡틴 아메리카였네요.
  • 불타지않는뿔 2011/08/04 00:53 #

    위에분들이 얘기를 다 해주셨지만 부연 하자면 캡틴 아메리카의 초판은 1941년에 발매 되었습니다.
    즉 1985년에 개봉한 록키에 비하면 44년이나 전에 발매된 것이지요.
    캡틴 아메리카는 엄밀히 말해 애국자 맞습니다. 단지 캡틴 아메리카가 생각하는 의미의 애국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나라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 검은장미 2011/08/04 02:21 #

    그나저나 영화보다 보면 뭐든 좋으니 착한편우리편 되며 응원하게 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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