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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길어올리기 - 영원 향한 도전, 찰나의 허무한 사랑 영화

전주시청 공무원 필용(박중훈 분)은 새로 배속된 한지 담당 부서의 ‘조선왕조실록’ 복본 사업에 의욕적으로 매진하며 한지의 매력을 깨닫게 됩니다. 필용은 뇌경색으로 재활 중인 아내 효경(예지원 분)과 한지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지원(강수연 분)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는 1,000년 세월을 이겨내는 한지를 중심으로 사랑과 갈등, 고뇌를 묘사합니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인, 극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1,000년’이라는 단어는 100번째 연출작이었던 전작 ‘천년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목 ‘달빛 길어올리기’는 효경이 좋아하는 이규보의 시 ‘영정중월’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지원이 제작하는 한지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필용을 둘러싼 두 여자가 극적이면서도 우연한 공통점을 지닌 셈입니다. 강수연이 분한 배역의 이름이 상대역인 예지원의 이름과 동일한 ‘지원’임을 감안하면, 세 명의 주연배우를 제치고 포스터 오른쪽 상단을 차지할 정도의 엄청난 비중을 지닌 노거장의 느긋한 장난기 같은 것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1,000년 가는 종이를 제작하는 와중에 효경이 지원에게 읊어주는 ‘영정중월’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달빛을 담기위해 물을 길어 올리면, 물을 비우는 순간 달빛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1,000년의 세월은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해도 영원에 도전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달빛을 길어 올리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사랑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필용과 효경이 학창시절 수학여행에서 ‘영정중월’을 매개로 사랑에 빠졌으나 그로부터 10년여의 힘든 시간을 보내며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찰나에 불과한 허무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달빛 길어올리기’의 주제의식은 불교적입니다. 필용이 한지 장인 덕순(안병경 분)을 통해 도암 스님(장항선 분)과 만나는 것 역시 불교적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 임권택 감독의 전작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00년 가는 한지 제작에 대한 열망을 허무하기만 한 도전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 효경의 잃어버린 고향과 그녀의 한지 공예에 무심했던 필용은 한지 담당 부서에 배속된 후 한지에 대해 배우며 효경과의 간극을 좁히고 효경은 잃어버린 고향과 뿌리를 찾고 뇌경색도 치유되어 갑니다. 한지가 화해와 치유의 매개물이 된 것입니다.

은유적인 제목과는 달리 공식 홈페이지 URL이 ‘http://hanji2011.co.kr/’로 노골적인 것처럼 실화에 기초한 ‘달빛 길어올리기’는 매우 선명한 방식으로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임권택 감독의 전작들이 한국적인 소재에 근거한 작품이 많았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하급 공무원의 노력, 서울과 전주를 각각 상징하는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를 묘사하는 삼각관계는 곁다리에 불과합니다. 전개가 빠르고 풍성해 일견 산만해 보이는 서사는 한지 제작 도전으로 깔끔히 집약되어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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