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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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인간관계, 그 어긋남의 고찰 영화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들의 인간관계와 파국으로 인한 죽음을 묘사합니다. 흡연과 폭력이 일상화된 탈선 고교생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등을 연상시키지만 ‘파수꾼’은 학원 폭력을 미화하여 눈요깃감으로 활용하지도, 사회적 관점에서 고발하지도 않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자극적 영상에의 유혹을 뿌리친 것입니다.

‘파수꾼’의 지향점은 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미성년자이지만 인격이 완성 단계에 도달해 성인과 다를 바 없는 10대 후반의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인간관계의 어긋남을 진지하게 통찰합니다. 우정과 배신, 배려와 이간질, 애정 결핍과 왕따 문제 등은 10대들의 인간관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에 ‘파수꾼’의 세계관은 성인 세계의 압축판입니다. 소년들이 성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독립적인 인격임을 강조하기 위해 학교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는 교사가 없으며 아버지(조성하 분)는 아들 기태(이제훈 분)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조차 제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기력한 성인들이 개입하지 못하며 미성년자들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10대들만의 세계는 지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험천만한 철길 위에서 야구를 즐기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10대가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의지할 곳 없는 처지임을 상징합니다.

기태의 사인을 규명하려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현재와 소년들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허물어뜨리는 과거의 서사가 교차하며 종반에는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어 진실에 접근하기에 전술한 한국의 학원폭력 영화보다는 오히려 ‘시민 케인’, ‘라쇼몽’과 같은 고전 걸작의 서사구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태의 진정한 사인은 물론, 표면적 사인도 종반까지 숨겨둔다는 점에서 ‘파수꾼’의 서사는 20대 신인 감독이 각본까지 담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노련해 재관람의 여지도 충분합니다. 각본이 허술한 영화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파수꾼’의 힘은 각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건을 통해 관계가 누적되어 빛을 발하는 중반 이후의 서사는 긴장감과 폭발력이 두드러집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인위적인 조명과 분장을 자제해 다큐멘터리와 같은 분위기의 영상에 녹아든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실제 고등학생들을 그대로 캐스팅한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이제훈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는 강렬한 반전을 뒷받침하는, 신경질적이며 폭력적이지만 내면은 심약한 입체적 인물 기태를 훌륭히 소화합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10대들의 심리를 대변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습관적이며 과도한 핸드 헬드는 미드가 유행하는 시류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합니다. 변죽을 울리며 겉도는 실제 10대들의 대화를 충실히 재현한 대사는 영화적으로 보다 압축하고 다소 지루한 초반부를 포함해 러닝 타임을 줄이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많은 양의 대사와 핸드 헬드는 점프 컷으로 대체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목 ‘파수꾼’도 흥미롭습니다. 극중에서 ‘파수꾼’이라는 단어는 대사 속에 등장하지 않으며 왜 ‘파수꾼’인지 암시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영문 제목 ‘Bleak Night’(직역하면 ‘음산한 밤’) 또한 ‘파수꾼’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셀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 ‘파수꾼’과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반항적인 10대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철길을 지키며 논다는 의미에서 ‘파수꾼’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덧글

  • 바보베짱이 2011/05/15 22:05 # 삭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마지막 말처럼, 이런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이런 뜻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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