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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죄의식 느낀 느긋한 재관람 영화

‘블랙 스완’을 두 번째 관람했습니다. 국내 개봉 초기에는 다소 미지근한 반응이었으나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입소문 덕분에 비수기 극장가에서 의외로 롱런해 극장을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 없이 여유 있게 재관람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블랙 스완’은 긴장감 넘치며 고통스러운 작품입니다.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적으로는 자해를, 정신적으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예술가를 느긋하게 다시 지켜보며 관조자로서 안도감을 느끼며 즐긴 것에 죄의식마저 느꼈습니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사를 좇느라 정신없는 첫 번째 관람과 달리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의 휴대 전화 벨 소리가 처음부터 ‘백조의 호수’의 테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비교적 평범한 벨 소리에서 중반부에 째지는 단음이 강조되는 신경질적인 ‘백조의 호수’로 바뀌지만 극중에서 니나가 벨 소리를 바꾸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강박으로 인해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니나의 병적인 정신 상태를 상징합니다.

전화 벨 소리 못지않게 도드라진 소품은 거울입니다. 백조와 흑조를 연기하며 분열되는 니나의 자아를 곳곳에서 반복 등장하는 거울이 고스란히 투영합니다. 거울을 바라보며 연습을 하고, 자해의 결과물인 등의 상처를 거울로 확인하고, 또 다른 자신이 거울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환각에 시달리던 니나는 결국 거울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니나는 만족하기도 하고 불만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하지 않아도 자신이 드러나기에 마치 거울이 자신만 감시하는 듯한 환각에 시달립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 만든 감시 체계에 갇혀 자신을 감시하고 감시당하며 고통 받습니다. 거울의 다층적 의미를 뚜렷이 부각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니나가 무대에 오르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면들은 현실과 환각, 그 어느 쪽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환각에 시달리는 니나의 모습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무용수들의 몸과 근육, 그리고 혹독한 연습을 감내해야만 완성되는 우아한 동작을 통해 발레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에 ‘블랙 스완’은 역설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발레 연습과 공연을 위해 뒷머리를 틀어 올린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에서 ‘레옹’의 아역 시절은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오드리 헵번의 고전적이며 기품 있는 마스크가 연상됩니다. 언쟁 중에 ‘전하(Your Highness)’라고 니나를 비꼬는 릴리의 대사는 나탈리 포트만이 파드메 여왕으로 분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중에서 비중 있는 유일한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뱅상 카젤을 지켜보는 심경은 복잡했습니다.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니나를 괴롭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으로서 관심을 보이는 단장 토마는 선역과 악역,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성격의 등장인물입니다. 발레단 단장이라는 전문적인 직업과 알쏭달쏭한 개성을 지닌 조연을 맡아 주연을 뒷받침하는 것은 결코 손쉬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뱅상 카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190cm에 육박하는 훤칠한 장신과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호남형 마스크는 뱅상 카젤만의 강렬한 개성인데, 만일 프랑스 영화가 번성했던 20세기 중반에 태어나 뛰어난 프랑스인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며 훌륭한 시나리오를 등에 업었다면 배우로서 지금보다 더욱 높은 평가를 세계적으로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뱅상 카젤에게 ‘라 파르망’의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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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압도적 연출, 혼신의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