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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동’과 민용근 감독, 배우 유다인 시네마톡 영화

동물병원에서 애견 미용을 하며 철거촌에서 유기견을 거둬 키우는 혜화(유다인 분)의 앞에 옛 남자 친구 한수(유연석 분)가 나타납니다. 한수는 5년 전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며 혜화에게 접근합니다.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은 23세의 여주인공이 불쑥 재회한 옛 연인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과거를 돌이키며 현재와 직면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10대 후반의 커플이 사생아를 임신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하기에 ‘주노’와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혜화, 동’은 묵직한 작품입니다.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인 짐들로 인해 혜화의 삶의 무게는 육중하며 딱히 고민을 털어놓을 가족이 없습니다. 20대 초반의 여성이라면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있기 마련인데, 고교를 중퇴했기 때문인지 친구조차 없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혜화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킬 뿐입니다. 유기견만이 남은 황폐한 철거촌은 혜화의 스산한 심경과도 같습니다.

혜화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부성의 부재에 힘겨워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혜화는 어머니조차 생모가 아닙니다. 혜화에게는 세 명의 오빠가 있지만 등장하는 것은 큰오빠뿐입니다. 한수의 아버지도 공백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결여된 혜화와 한수가 만나 가진 아이도 아버지 한수에 의해 버림받습니다. 혜화가 키우는 개 혜수 또한 아버지를 모르는 강아지들을 임신하고 출산합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아버지, 즉 가장의 부재는 대물림되어 혜화를 비롯한 여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한 것이 남성 감독임을 감안하면 부성의 부재 속에서 소외된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혜화’는 이례적입니다.

그러나 힘든 사연을 지닌 여주인공을 묘사한다고 해서 ‘혜화, 동’은 신파로 흐르는 우를 범하지 않기에 매력적입니다. 혜화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강한 여성입니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에도 불구하고 혜화 역의 유다인은 미묘한 표정 변화를 적절히 연기합니다. 상처받은 여성의 미묘한 심경 변화를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는 것은 ‘여자, 정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 카메라는 감정을 절제하는 혜화를 비롯한 영화 전반의 간결한 정서를 뒷받침합니다.

정서적으로는 묵직하고 간결하지만 ‘혜화, 동’의 서사는 의외로 촘촘하게 얽힌 퍼즐처럼 복잡합니다. 근본적으로 ‘혜화, 동’은 멜로 영화이지만 혜화가 출산한 아이의 생사와 정체를 비롯한 반전이 준비되어 있어 스릴러 혹은 미스터리의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민용근 감독은 부모 세대도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했다고 밝혔으나 플래시백까지 겹쳐져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이를테면 한수의 행위의 의도와 내면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아 감정 이입이 쉽지 않기에 보는 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혜화, 동’의 서사와 혜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다채로운 종류가 등장하는 개들입니다. 혜화와 한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개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개들이 출연합니다. 혜화가 개장수와 갈등을 벌이며 어떻게든 구하려는 개는 유일하게 입양되지 않은 혜수의 딸입니다. 혜화가 혜수의 딸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복원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영화 중반과 엔드 크레딧에 삽입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과거를 복원하는 것에 대해 내적 갈등을 벌이는 혜화의 심리를 반영한 곡입니다. 내적 갈등 끝에 혜화가 선택하는 결말은 추창민 감독의 2006년 작 ‘사랑을 놓치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사진 : 2월 16일 CGV 대학로의 '혜화, 동'의 상영 후의 시네마톡. 왼쪽부터 김영진 평론가, 민용근 감독, 배우 유다인, 씨네21 김용언 기자)


2월 16일 CGV 대학로에서는 ‘혜화, 동’의 상영 후 씨네21 김용언 기자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민용근 감독과 주연 유다인, 김영진 평론가를 초대 손님으로 시네마톡이 있었습니다. 김용언 기자는 가급적 말을 아끼며 초대 손님과 관객들에게 많은 발언 및 질문 기회를 할애했습니다. 김영진 평론가는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유다인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부담스럽지는 않았고 연기에 몰입하면 스태프와 카메라를 잊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부족했다고 판단한 일부 장면에서의 연기는 편집과 조명 덕분에 매끄럽게 보일 수 있었다며 겸손해했습니다.

관객들의 질문은 대부분 민용근 감독에 집중되었습니다. 민용근 감독은 다큐멘터리 조연출 시절 유기견을 구하는 여성을 취재하며 ‘혜화, 동’에 착안하게 되었으며 제목의 ‘동’은 ‘어린아이[童]’, ‘겨울[冬]’, ‘움직이다[動]’의 중의적 의미라고 밝혔습니다. 극중에서 혜화가 5년 동안 손톱을 수집한 행위는 세월의 흐름이 아쉬웠던 민용근 감독의 20대 시절부터의 버릇이라고 고백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극중의 반전을 비롯한 스릴러와 같은 장르적 성격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식하고 각본을 집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혜화, 동' 민용근 감독, 주연 유다인 사인 포스터


덧글

  • 이닥 2011/02/27 15:08 # 삭제

    아, 손톱 장면에 그런 사연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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