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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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 - 힘 있는 서사, 현란한 영상의 불륜극 영화

※ 본 포스팅은 ‘아이 엠 러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직물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레키 가문의 며느리 엠마(틸다 스윈튼 분)는 장남 에도아르드(플라비우 파렌티 분)의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 분)와 갑자기 격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의 2009년 작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는 물질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년 여성이 별안간 불륜에 빠져들다 파국에 도달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에도아르도는 어머니 엠마와는 근친상간과 유사한 성적 긴장감을, 안토니오와는 친구 이상의 동성애와 같은 감정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엠마와 안토니오의 관계를 자각한 순간, 에도아르도가 격노한 것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윤리적인 이유보다는 사랑했던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배신당했다는 상실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근친상간의 긴장감과 그로 인한 파멸은 줄스 다신의 ‘페드라’와 루이 말의 ‘데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계급과 연령을 감안하면 사랑에 빠지는 엠마와 안토니오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만, 두 사람은 레키 가문에서 국외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엠마는 러시아로부터 이탈리아에 시집 온 외국인이며, 안토니오는 부르주아 가문에 고용된 요리사, 즉 블루 컬러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레키 가문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데, 마지막까지 엠마를 이해하는 사람이 하녀, 즉 블루 컬러 이다(마리아 파이아토 분)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르주아 가문의 귀부인이 블루 컬러 남성과 섹스에 빠지는 것은 ‘차타레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안토니오가 레키 가문에 접근해 엠마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매개물은 요리입니다. 안토니오가 엠마와 처음 만났을 때 케이크가 매개물이 되며, 두 사람은 첫 섹스를 나눈 후 함께 음식을 만듭니다. 식욕과 성욕을 동일선상에 두고 요리사를 섹스의 화신으로 설정한 것은 다수의 영화에서 익숙한 설정입니다. 파멸 역시 요리가 원인이라는 설정 또한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엠 러브’는 매우 독특한 영화입니다. 서사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영화답게 대가족의 만찬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에서 엠마의 갑작스런 키스 장면에 도달하기까지 50여 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아이 엠 러브’가 묘사하고자 하는 서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확립된 뒤에는 사회적 지탄이나 윤리적 속박은 완전히 무시한 엠마처럼 영화는 열정에 몸을 맡긴 채 우직하게 돌진합니다. 불륜을 묘사한 대부분의 영화가 파국에 도달한 뒤 후회하는 주인공으로 결말짓기 마련이지만 엠마에게는 그 어떤 망설임이나 후회도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아들의 죽음에도 죄의식이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이 엠 러브’는 힘이 넘칩니다.

반면 직선적인 서사에 비해 촬영과 편집 등 기교는 화려합니다. 정적인 편집이 대세를 이루는 보편적인 멜로 영화와는 달리 엄청난 숫자의 컷으로 분할 편집했으며 카메라 워킹 또한 참신하면서도 역동적입니다. 엠마와 안토니오가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고 극히 짧은 시간만 할애한 후 편집되며, 레키 가문의 저택 계단을 따라 주방으로 이어졌다 다시 계단으로 올라오는 카메라 워킹은 놀랍습니다. 엠마가 사랑에 눈이 멀어 안토니오와 숲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장면에 사용된 긴박한 배경 음악은 그녀의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 색 의상처럼 강렬합니다.

첫 섹스에서 자연을 포착한 다양한 장면이 삽입된 것은 엠마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본능의 산물임을 상징하며, 안토니오와 함께 동굴에서 머무는 엔드 크레딧의 장면은 엠마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귀의했음을 암시합니다. 엠마의 신발을 중심으로 심리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숲 속 오두막에서 안토니오가 엠마의 플립플롭을 벗기는 장면은 일체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하며, 교회에서 남편 탄크레디(피포 델보노 분)가 엠마에게 구두를 신기는 행위는 속박으로의 복귀를 상징합니다. 엠마의 해방을 상징하는 신발은 플립플롭이고 속박을 상징하는 것은 구두인 것도 의도적인 소품 활용으로 보입니다. 물론 엠마는 검정 구두와 상복을 벗어던지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으며 부르주아 가문과 윤리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합니다. 교회 장면에서, 탄크레디가 속박(가문)으로의 복귀를 권유하며 구두와 자신의 재킷을 착용시킬 때는 비가 내리다 이를 엠마가 거부하자 햇살이 내리쬐는 것으로 날씨가 일신한 것 또한 사랑을 선택한 엠마의 마음과 영화가 그녀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비유합니다.

가족 중에 엠마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딸 베타로 분한 알바 로르워쳐가 ‘사랑하고 싶은 시간’에서 불륜녀로 출연하게 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한 베타가 연인과 질척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뒤 이은 엠마와 안토니오의 격정적인 섹스 장면을 예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