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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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 68혁명 실패의 짙은 허무감 영화

※ 본 포스팅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내 로자(베로니카 라자르)의 자살에 상심한 중년 남성 폴(말론 브란도 분)은 빈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젊은 여성 잔(마리아 슈나이더 분)과 격정적인 섹스를 나눕니다. 폴은 잔에게 서로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털어놓지 말자며 섹스에만 탐닉합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72년 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68혁명 실패의 허무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에도 참여했던 미국인 폴은 파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아내와 만나 결혼했지만, 아내의 자살로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을 상실했습니다. 아내의 이름 로자가 독일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폴은 잔에게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피델로 짓겠다고 공언하는데,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덧붙이며 좌파적 의식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등장인물의 의도적인 작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잔이 어린 시절 사랑했던 사촌 오빠의 이름도 폴입니다. 하지만 끝내 서로 통성명하지 않았기에 중년의 폴은 이 같은 사실을 끝내 모른 채 최후를 맞게 됩니다.)

폴은 현실을 개혁할 힘도 의욕도 없습니다. 단지 젊은 잔과의 변태적인 섹스에만 열중할 뿐입니다. 잔의 엉덩이에 버터를 바르고 섹스하거나 (다분히 항문 섹스를 연상시킵니다.) 잔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항문에 넣게 해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폴이 얼마나 보편과 격식을 혐오하는 무정부주의자임을 드러냅니다. 섹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빈집으로 설정된 것은 폴의 마음이 얼마나 정처 없이 공허한 것인지 대변합니다. 여주인공의 음모 노출에 그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섹스 장면이 현 시점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주류 영화의 수준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노출과 섹스 장면 연출이었습니다.

기존의 모든 가치에 반기를 드는 폴은 변태적인 취향의 섹스를 즐기는 것은 물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탱고 대회장에서조차 술에 만취된 채 엉망으로 춤을 춥니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미국인이 주인공이고 대사도 프랑스어와 영어가 혼재되며 감독은 이탈리아인 것까지 감안하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무국적, 무정부주의적 성향은 예정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폴뿐만 아니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잔은 현실에는 무관심한 권태로운 젊은 여성으로 묘사되며, 로자의 어머니(지트 마그리니 분)는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사위 폴을 유혹하려 합니다. 잔의 남자친구 톰(장 피에르 레오 분)은 잔보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더 지극한 철부지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스태프를 동원해 잔을 촬영하며 영화의 미학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풋내기 톰의 모습은 누벨바그에 대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조롱처럼 보입니다.

폴이 아내의 불륜 파트너였던 마르셀(마시모 지로티 분)과 똑같은 디자인의 파자마를 입은 채 그것을 선물해 준 아내를 회상하며 술을 마시고 서로를 위무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감싸는 가토 바르비에리의 흐느적거리는 색소폰 선율과 함께 매우 따스합니다. 폴이 아내 로자의 시체 앞에서 그녀를 저주하며 흐느끼는 장면은 한편으로는 기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론 브란도의 압도적인 연기 덕분에 아내에 대한 복잡한 애증이 끓어 넘치는 폴의 외로움이 스크린 너머로 절절히 전해집니다. 이 같은 과정들은 폴에게 있어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폴은 잔과의 변태적인 섹스를 통해서도 치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엇갈립니다. 잔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폴은 거부하며,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폴이 잔에게 평범한 남녀 관계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고백했을 때, 잔은 이미 톰과 결혼을 약속한 뒤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파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섹스의 규칙을 사랑의 규칙으로 재편하려 했던 폴은 자신이 만든 규칙을 깨뜨린 죄로 잔에게 살해당합니다. 아버지가 알제리 전쟁에 참전해 사용했던 권총으로 잔이 폴을 살해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좌파였던 폴이 제국주의(우파)의 무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결말 역시 68혁명의 실패를 연상시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일환으로 상영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화면 전체가 붉은 톤으로 잠식되는 등 아쉽게도 필름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폐관된 을지로 국도극장에서 1996년 연말 뒤늦게 정식 개봉되었을 때 오리지널 포스터를 받기 위해 개봉 이틀째 조조로 관람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시 삭제 장면은 없었지만 음모 노출은 모자이크 처리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극중에 등장한 비라켕 다리가 작년에 개봉된 ‘인셉션’에도 등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서울아트시네마의 붉은 화면의 아쉬움은 곧 발매될 블루레이로 달래야 할 듯합니다.

몽상가들 - 박제된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