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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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 - 독특한 형식미, 홍상수의 변주곡 영화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는 영화과 교수와 남녀 학생의 삼각관계를 묘사합니다. 진구(이선균 분)는 동기생 옥희에 집요하게 구애하지만 정작 옥희는 유부남인 송 교수(문성근 분)에게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오! 수정’에서 처녀성이 비싼 값에 거래되듯이, ‘옥희의 영화’에서 젊은 남자는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 ‘처음’이라는 믿을 수 없는 달콤한 말을 앞세우는데, 여자는 젊은 남자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속아주는 척하며 양다리를 걸칩니다. (‘오! 수정’에 이어 ‘옥희의 영화’에서도 문성근은 여자를 놓고 ‘젊은 남자’와 경쟁하는 ‘늙은 남자’로 등장합니다.) 사랑은 섹스에 다름이 아니며, 섹스는 송 교수의 대사처럼 누구도 참을 수 없는 성욕의 부산물이라고 규정하기에, ‘옥희의 영화’는 어떻게든 여자와 동침하기 위해 입 발린 말과 과감한 대시를 서슴지 않는 남자와 못 이기는 척 타협하는 여자의 야합과 공범 의식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목할 것은 독특한 형식입니다. ‘옥희의 영화’는 총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주문을 외울 날’, ‘키스 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키스 왕’과 ‘폭설 후’가 극중 현실을 포착한 것이라면 ‘주문을 외울 날’은 진구가 연출한 단편 영화이며, ‘옥희의 영화’는 제목 그대로 옥희가 연출한 단편 영화입니다. 각 장의 시점, 즉 내레이터도 다른데, ‘주문을 외울 날’은 독립 영화감독이자 교수를 꿈꾸는 가상의 진구가 내레이터이며, ‘키스 왕’은 현실의 대학생 진구가, ‘폭설 후’와 ‘옥희의 영화’는 각각 송 교수와 옥희가 내레이터입니다.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두 개의 허구도 차별화됩니다. ‘주문을 외울 날’이 진구의 상상의 부산물이라면 ‘옥희의 영화’는 경험에 기반한 회고담입니다. 중간에 배치된 두 개의 극중 현실(즉, 허구)을 사이에 두고 처음과 끝을 허구 속 허구가 감싸는 액자 구성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며, 허구에 허구를 켜켜이 배치함으로서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다양한 각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형식은 파격적이지만 영상은 복고적입니다. 네 번이나 등장하는 조악한 손 글씨의 오프닝 크레딧, 줌 인과 줌 아웃이 갑자기 이루어지는 카메라 워킹, 등장인물들의 추레한 옷차림, 그리고 두 주인공의 극중 이름과 주연 배우 정유미의 마스크까지 197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은 것은 사랑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는 최루성 신파 멜로 영화였는데, 비슷한 분위기의 화면으로 사랑을 대하는 시대적 분위기의 변화와 차이를 대조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의 주제를 압축한 것은 ‘폭설 후’의 세 주인공의 대화입니다. 철저히 구어체에 기초한 전체 대사 중에서도 속전속결 식으로 주고받는 강의실의 세 사람의 대화는 인간과 사랑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주제 의식을 압축합니다. 롱 테이크로 촬영되어 세 사람의 입과 얼굴을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도 인상적입니다.

‘옥희의 영화’는 상당히 직설적인 작품이지만, 독특한 은유도 삽입됩니다. ‘폭설 후’에는 앞의 두 단편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객체에 불과했던 송 교수가 주인공이 되어 속내를 털어 놓습니다. 송 교수는 진구에게 상을 주겠다고 다른 학생들에게 공표했다 철회하는 홍상수 감독 영화 특유의 ‘먹물의 찌질함’을 발휘합니다. 술자리에서 송 교수는 애제자 진구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옥희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입장이 되었기에 교수로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폭설 후’의 엔딩에서 송 교수가 토해내는 꿈틀거리는 산 낙지는, 삼킬 수도 없으며 뱉어내기도 곤란한, 송 교수에 있어 제자이자 동시에 연적인 진구를, 더 나아가 진구가 노리는 옥희와의 불륜을 상징합니다.

영화가 편집의 예술임을 입증하는 마지막 장 ‘옥희의 영화’의 교차 편집은 압권입니다. 2년 전 12월 31일 송 교수를 만난 날과 그로부터 366일 뒤인 1월 1일 진구를 만나 함께 했던 아차산 등산을 옥희가 회고합니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행위를 하며 상대 남성만 바뀐 여심의 변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되었는데, 막판에는 반전도 등장하여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사랑을 지키는 이와 배신하는 이가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국내외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반면 일반 관객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대부분 ‘먹물’이지만 영화 자체는 결코 현학적이거나 난해한 것은 아니기에 상업적으로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의 작품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충족하고자 하는 환상을 여지없이 짓밟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를 지닌 것으로, 섹스는 사랑의 완성이거나 혹은 에로티시즘과 관음증을 유발하는 볼거리로 윤색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사랑은 섹스와 동의어이며, 섹스는 찌질한 본능의 발산에 불과합니다. 섹스가 이루어지는 공간도 관객이 성적 판타지를 개입시킬 수 없는 허름한 여인숙이거나 때 묻은 담요로 뒤덮인 자취방입니다. 섹스가 끝난 후 남자는 여자를 가졌다며 허기를 채운 뒤 배를 두드리는 수컷의 본심을 노출합니다. 여자와 동침한 후 득의만면한 남자를 배경으로 깔리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블랙 유머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홍상수의 블랙 유머에 마음 편히 웃기는 쉽지 않습니다. 찌질함은 관객 자신의 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극장에서 관람료를 부담하며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영화를 보기를 대다수의 관객은 원치 않습니다.

아울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스펙터클이나 아름다운 영상미를 찾을 수는 없지만 서사를 비튼다든가 몇 개의 장으로 구별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특유의 형식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영화는 비슷한 주제를 연주할 때마다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변주곡이라 할 수 있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저 동어반복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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