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던 CG 기술을 활용해 화제가 되었던 1982년 작 ‘트론’의 28년 만의 후속편 ‘트론 : 새로운 시작’(이하 ‘새로운 시작’)은 전편의 두 주인공이 조연으로 재등장하며 디지털이 일반화된 신세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아바타’ 이후 대세가 된 3D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공간적 배경인 가상세계에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작’이 3D를취한 것은 탁월하면서도 당연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프닝으로부터 25분 후에 등장하는 그리드의 3D는 ‘아바타’와 같은 공간 감각을 창조하는데 실패합니다. 명암조차 희미한 온통 시커먼 화면에 몇 개의 형광색 피사체로 공간 감각을 부여한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레지던트 이블 4’의 밋밋한 3D와의 차별화에 실패합니다.
어차피 최근 영화들이 엇비슷한 수준의 CG를 활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시작’은 영화의 기본이자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서사에 승부를 걸어야 했는데, 단조롭기 짝이 없습니다. 전반적인 서사와 막판 반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러닝 타임이 125분이나 되지만 서사는 너무나 허전합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리드로 들어가기 위해 샘이 어떻게 패스워드를 풀었는지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변형된 아버지’가 적의 우두머리라는 설정은 ‘스타워즈’를 연상시킵니다. 기본적인 등장인물 간의 관계는 ‘매트릭스’ 3부작과 닮았습니다. 현실과 가상으로 이원화된 세계, 가상세계가 현실에 미치는 강력한 파급력, 세계를 구원하는 주인공(샘 - 네오),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돕는 여성 캐릭터(쿠오라 - 트리니티), 의존할 수 있는 부성(케빈 - 모피어스), 복제된 악역(클루 - 스미스), 그리고 타락한 클럽 주인(주스 - 메로빈지언)까지 상당히 비슷합니다. 애당초 ‘매트릭스’가 다양한 SF 영화들의 오마쥬로 가득한 작품으로 ‘트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지만, ‘새로운 시작’이 ‘트론’의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서자’ ‘매트릭스’를 빼닮은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 ‘트론’을 상징했던 바이크 액션은 ‘새로운 시작’에서 ‘스피드 레이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새로운 시작’은 워쇼스키 형제 영화의 아류작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시작’이 ‘트론’의 오랜 팬들에게는 값진 선물임에는 분명하나, 획기적 시도가 빛났던 ‘트론’과 달리 ‘새로운 시작’에서 독창성이나 새로운 시도를 찾아볼 수 없다는 한계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시커먼 배경 일색의 밋밋한 3D와 판에 박힌 서사, 독창성이 결여된 설정으로 인해 졸음을 부채질하는 ‘새로운 시작’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다프트펑크의 테크노 음악입니다. 다프트펑크는 클럽 장면에 직접 출연해 ‘트론’이 개봉된 1980년대 초반을 연상시키는 복고적이면서도 몽환적이며 경쾌한 음악으로 지루한 영상을 그나마 상쇄시킵니다. OST 앨범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저니의 ‘Separate Ways’와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가 오락실 장면에 삽입되어 ‘트론’이 개봉되었던 1980년대 초반의 향수에 젖게 합니다.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