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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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프로야구 필자, 전 스포츠조선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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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 1980년대 상징하는 SF 동심 판타지 영화

식물 조사를 위해 지구를 방문했지만 홀로 남겨져 위기에 처한 외계인이 소년 엘리엇(헨리 토마스 분)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엘리엇은 형 마이클(로버트 맥노튼 분)과 여동생 거티(드류 배리모어 분)와 함께 외계인을 보호하며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1982년 작 ‘E.T.’는 한 마디로 시대를 대표하는 SF 판타지입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the Extra-Terrestrial’, 즉 외계인은 헐리우드에서 언제나 잔혹한 침략자였습니다. ‘우주전쟁’부터 ‘에이리언’에 이르기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은 허접한 특수 효과 속에서도 지구를 침략해 인류를 말살하거나 우주에서 인류를 공격하는 적대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침략자와 공산주의자, 혹은 제3세계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인을 모두 외계인으로 은유하여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E.T.’는 ‘외계인 = 침략자’ 공식을 과감히 탈피합니다. 어린 아이만한 키에 팔다리가 짧고 배가 나왔으며 큼지막한 눈망울이 주는 인상이 너무 나약해 E.T.는 외려 보호본능을 자극합니다. 무기 따위는 소지하지 않으며 공격성도 지니지 않았고 식물을 사랑합니다. 그가 피우는 말썽이라고는 술주정이 고작입니다.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외계인이 닳고 닳은 지구의 성인들에게 수용될 수는 없습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남성들은 E.T.를 생포하기 위해 여념이 없고 (후반부 엘리엇의 집으로 들이닥치는 국가 기관 소속 남성들의 모습은 장중함을 과시하는 마이클 베이의 연출 기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모성을 상징하는 엘리엇의 어머니(디 월리스 분)는 코앞에서도 E.T.를 알아보지 못하는 잔소리꾼에 불과합니다. 거티에게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 속의 주인공 피터 팬과 마찬가지로 E.T.는 어린이만이 알아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단 한 장면이자 영화사에 남은 명장면인 하늘을 나는 자전거의 환상적인 비주얼은 그야말로 ‘E.T.’가 충실한 동심 판타지임을 입증합니다. 존 윌리엄스의 배경 음악은 미지의 외계 생명체와의 교감이 주는 신비스런 환희를 배가시킵니다.

하필이면 E.T.가 수용된 곳이 부성이 결여된 한 부모 가정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바람나 집을 떠난 아버지가 있었다면 E.T.를 믿어줄 것이라 아쉬워 하지만 변변한 친구조차 없는 엘리엇의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E.T.는 외로운 엘리엇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른들 중에서 유일하게 E.T.의 존재를 인정하고 10세 때부터 기다려왔다는 ‘열쇠 남자’(피터 코요테 분)는 엘리엇의 미래를 암시하며, 어쩌면 E.T.가 떠난 후 엘리엇의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배우 출신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헐리우드에서도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등 근육질 스타들의 액션 영화가 대세였던 1980년대에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해 연약하고 우호적인 외계인이 소년과 우정을 쌓는 ‘E.T.’가 전 세계적인 흥행작이 된 것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아마도 미국인들은 ‘E.T.’를 통해 냉전에 대한 염증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투영했는지도 모릅니다.

‘E.T.’가 비판의 여지조차 없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눈높이가 낮은 신파 가족 영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0대들끼리 모여 놀면서도 마약을 하지 않으며 스쿨버스 안에서 음주나 흡연은커녕 고작 종이 뭉치를 던지고 논다는 점에서 1980년대가 순진한 시대가 아니었나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마이클과 엘리엇 형제의 끈끈한 우애도 교과서적입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 교내 총기 난사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을 듯 ‘E.T.’의 미국은 안온합니다. 금세 영어를 익히는 외계인의 모습은 아동 SF 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E.T.’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국적이며 낙천적인 주제 의식으로 무장한 세계적인 흥행 감독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것을 감안하면 ‘E.T.’의 성과를 폄하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1984년 LA 올림픽 폐막식에 우호적인 UFO와 외계인이 등장해 메시지를 남길 정도로 ‘E.T.’의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E.T.’의 숨겨진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구형의 우주선과 독특한 체형의 외계인, 그리고 우호적인 외계인에 이끌리는 어린이 등의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작 ‘미지와의 조우’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잠망경을 연상시키는 긴 목과 큰 눈, 가녀린 팔 등은 ‘조니5 파괴 작전’과 ‘월E’의 타이틀 롤 로봇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 E.T.의 큰 눈과 거북이 껍질 같은 피부, 그리고 짧은 다리는 일본 특촬물의 대표작 ‘고지라’ 시리즈의 고지라의 자식 미니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UFO와 교신하며 E.T.의 붉게 빛나는 심장은 예수의 붉은 심장을 강조한 성화를 연상시킵니다. 죽음을 맞았다 심장이 붉게 빛나며 부활한 E.T.의 모습에서 부활한 예수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든 꽃을 되살리는 E.T.의 기적 역시 예수에 비견할 만합니다. 포스터는 손가락을 마주치는 E.T.와 엘리엇의 교감을 상징하는데, 이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아담이 손가락을 마주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E.T.를 신에 비유했다는 신성모독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함인지 단지 좌우 위치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스타워즈’와의 연관성도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엘리엇은 ‘스타워즈’의 보바 펫, 랜도 캘리지언과 같은 캐릭터 피겨를 벗 삼아 놀며, E.T.는 할로윈 데이에 요다 복장을 한 사람을 반가워합니다. 이는 E.T.가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농담 같은 암시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친구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ILM에 ‘E.T.’의 특수 효과를 일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도 엿볼 수 있습니다. E.T.와 엘리엇은 ‘M & M’ 초콜렛을 매개로 가까워지며, 둘은 교감이 지나쳐 E.T.가 쿠어스 맥주를 마시자 엘리엇도 취해버립니다. 미국의 아동용 TV 프로그램 ‘세사미 스트리트’와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도 삽입되며 만화 ‘버크 로저스’는 E.T.의 귀환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미국보다 늦게 개봉되었기에 국내에서는 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개봉 전에 접했고 저작권을 무시한 상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만화 잡지는 개봉 전에 한국 만화가가 그린 ‘E.T.’를 연재했고, 어린이용 책가방에서 식품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종류의 관련 상품이 홍수를 이루며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2002년 개봉된 20주년 기념작은 E.T.의 표정 변화를 풍부하게 하고 E.T.를 추격하는 경찰의 권총을 삭제하는 등 CG를 활용해 변화를 주었지만 원본을 훼손하고 아날로그의 풋풋한 매력을 반감시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치 ‘카사블랑카’의 컬러판을 보는 듯 어색합니다. ‘E.T.’의 출연진 중 훗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드류 배리모어의 깜찍한 어린 시절을 확인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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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0/12/26 12:45 #

    나중에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1에서 공화국 의회에 ET 동족들을 살짝 집어넣었죠. (친구끼리 잘 노는듯 =)
  • 암벨람바 2010/12/29 14:51 # 삭제

    늦은 덧글 죄송합니다. 영화에 실리지 못하고 편집된 장면에서는 무려 해리슨 포드가 교장으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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