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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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비슷한 소재 ‘베리드’만 못하다 영화

※ 본 포스팅은 ‘127시간’과 ‘베리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산을 광적으로 즐기는 아론(제임스 프랑코 분)은 그랜드 캐년에서 홀로 협곡을 지나다 낙석에 오른팔이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인적도 끊기고 외부와의 연락 수단도 전무한 상황에서 물까지 바닥나 생명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대니 보일의 신작 ‘127시간’은 제2의 고향으로 자부할 정도로 친숙한 그랜드 캐년에 갇혔지만 극적으로 생환한 사나이의 2003년 실화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감금된 상황에 내동댕이쳐져 죽음의 위기에 놓인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의 영화라는 점에서 ‘127’시간은 최근 개봉된 ‘베리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두 영화는 실화와 허구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127시간’은 실화이며 ‘베리드’는 허구입니다. ‘127시간’이 비극 즉, 주인공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면 영화화되기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예정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베리드’는 극중 유일한 환상인 탈출 장면이 제시되는 종반까지 비극적 결말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동일한 장면이 두 번 사용되는 것을 영화에서 금기시한다는 점에서 햇빛을 보는 환상 장면이 삽입되었을 때 폴의 비극적 최후는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폴이 빛을 다시 보는 ‘베리드’의 환상 장면은 아론이 폭우 덕분에 탈출하는 ‘127시간’의 환상 장면과 놀랄 만치 닮았습니다.)

‘127시간’과 ‘베리드’의 근본적인 차이는 우직함에 있습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영상을 자랑하는 대니 보일의 ‘127시간’은 환상과 회상에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 홀로 갇힌 사내를 묘사하며 환상과 회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 90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미 ‘베리드’가 환상과 회상 장면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95분의 러닝 타임을 채운 바 있기에 ‘127시간’이 허전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베리드’에는 동영상 촬영, 재생 및 외부 연락이 가능한 휴대 전화가 있기에 환상과 회상 장면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라 반박할 수 있지만, ‘127시간’ 역시 동영상 활용이 가능한 캠코더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환상과 회상 장면으로 점철된 탓에 실화인 ‘127시간’은 판타지에 가까워졌고, 그렇지 않았던 허구 ‘베리드’는 실화에 가까워졌습니다.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면 비슷한 조건에서 더욱 우직하게 서사를 밀어붙인 ‘베리드’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따라서 외국과 동시에 개봉되는 일반적인 외화들과 달리, 흥행에 실패한 ‘베리드’(12월 9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수 6만 여 명)와 비슷한 소재의 ‘127시간’의 국내 개봉이 해외에 비해 늦은 내년 2월로 예정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니 보일의 최근 영화들은 ‘원상 복귀’의 서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28일 후’는 좀비가 장악한 뒤틀린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 세계로의 복귀를 묘사했고, ‘선샤인’은 태양의 소멸을 막아 멸망의 위기에 놓인 지구를 원상 복귀시키려는 분투를 다뤘으며,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사랑하는 소녀를 되찾아 원상 복귀시키는데 여념이 없는 소년을 그린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금된 상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내가 주인공인 ‘127시간’은 한편으로는 대니 보일다운 선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127시간’은 대니 보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편집과 기민한 카메라 워킹, 역동적인 장면 전환을 즐기는 대니 보일이 주인공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는 1인칭 시점의 단순 무결한 실화를 영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대니 보일은 러닝 타임 내내 현란한 기교를 발휘하고픈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보입니다.

주인공 아론이 극단에 몰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해결책을 묘사하는 고어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 오락 영화의 고어 장면은 대부분 생략되거나 과장되는 것으로 정형화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를 테면 ‘인셉션’처럼 총상을 입고 죽는 적들의 출혈 장면을 생략하거나, 반대로 슬래셔 무비들은 고어 장면을 과장하여 비현실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곤 합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현실이 아닌 허구의 유혈 장면을 보고 있으며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 안도합니다.

하지만 ‘127시간’의 고어 장면은 영화적으로 생략되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며 실제 상황이기에 매우 자극적입니다. 게다가 은근히 잔혹한 장면 연출을 즐기는 대니 보일의 성향으로 인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 묘사합니다. 아론의 유일한 선택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인데, 결국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사실적인 고어 장면에 당혹스러울 관객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극단적인 1인칭 시점으로 인해 관객은 주인공의 고통을 함께 체감합니다. 고어 장면을 통해 위기에서 생존한 주인공의 인간 승리를 묘사하며 감동을 주려는 것이겠지만, 감금된 주인공의 탈출이라는 영화적 환상을 가장 멋들어지게 충족시켰던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사지 멀쩡하게 탈출했음을 감안하면 자신의 오른팔이 멀쩡한지 주무르며 극장을 나설 ‘127시간’의 관객의 입소문은 달갑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연히 조우한 두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인생 최악의 고난을 맞이하는, 오프닝 후 20여 분이 지난 순간 ‘127 Hours’라는 제목이 삽입되어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연출과 물통의 시점으로 포착한 카메라 워킹은 인상적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성욕을 느끼는 아론의 모습은 진솔하면서도 현실적입니다. 잘 생긴 제임스 프랑코의 외모를 의도적으로 못 생겼다고 폄하하는 초반 장면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아론에게 개미 이외에 독사나 전갈의 위협이 없었던 것은 다소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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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칼슈레이 2010/12/23 14:00 #

    하지만 그랜트 캐년의 멋진경관 씬은 충분히 매력적이죠 ㅎㅎ 뭐 고어장면은...;; 이전에 어느 글에서 이분의 스토리를 본기억이 있는데 아마 외팔로 손자와 놀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고 영감을 얻어 팔을 절단하고 살아났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 출혈과 자신의 팔을 자르는것과 그 출혈을 견디면 주변 마을로 가 살아난점등 그 극기정신은 굉장하다고 봅니다. 영화 자체만 보면 조금 꺼려지는것이 사실이나 그 현실성은 손상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물론 이 글이 전적으로 이 영화를 비난한것이 아니라는건 알지만...베리드와 비슷한 수준정도는 이해해줄수있지않을지... 솔직히 베리드의 기법을 제외하곤 127hours 가 베리드보다 못하단것 이해가 안됩니다)
  • 처리 2010/12/23 14:35 # 삭제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읽지는 않았으나
    127시간이란 영화는 아마도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했다지요
    실제는 자기집 창고에서 지하로 떨어져 팔이끼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무려 자기팔을 자기가 자르고 나왔다죠 ㄷㄷㄷ
  • 디제 2010/12/23 14:45 #

    본문에서 이미 실화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창고 지하가 아니라 영화에서 묘사한 바대로 산에 갇혀 벌어진 일이었고요.

    심지어 실화의 주인공 이름까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영화 본편에서는 엔딩에서 실화의 주인공이 직접 출연하며 그의 후일담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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