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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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정성일, 영화 원리주의자

영화 평론가 정성일에 대해서는 호오가 엇갈립니다. 극도로 만연된 문어체, 간간이 노출되는 호응 관계가 무시된 비문, 난해하기 짝이 없는 내용 등 그의 글이 현학적이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성 영화 등 고전부터 제3세계의 최근작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글에 대한 호오를 넘어 영화 원리주의자 정성일의 지극한 열정을 폄하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평론가로 1980년대부터 다양한 지면을 통해 활동하던 정성일이지만 막상 여기저기 산재된 그의 글을 묶은 단행본은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정성일 본인의 표현대로 ‘남의 이름 뒤에 숨는 방법을 택’해 임권택과 김기덕에 대한 단행본만을 내놓았을 뿐, 장철과 장 뤽 고다르, 그리고 왕가위까지 그가 그처럼 사랑하는 외국 감독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묶은 책은 이제껏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성일이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한지 20여 년이 지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의 정식 개봉을 앞두고 두 권의 평론집이 동시에 출간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정성일의 한국영화 비평활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필사의 탐독’이 한국 영화를 중심으로 17편의 글을 묶었다면, ‘정성일 정우열의 영화 편애’라는 부제가 붙은, 질 들뢰즈의 글에서 따온 제목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외화를 중심으로 38편의 글을 수록했습니다. ‘필사의 탐독’에 비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개별 글의 분량이 짧습니다.

차분함과 냉정을 잃지 않는 정성일이기에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영화에 처음 입문했던 먼 과거를 제외하면 개인적인 면모를 엿보기는 쉽지 않지만, 오락 영화에 대한 평론은 왜 하지 않고 무시하는지(비슷한 주제로 ‘엽기적인 그녀’를 연출한, 정성일의 ‘프랑스 문화원 친구’ 곽재용에 대한 글은 흥미롭습니다.), 이제는 네티즌조차 그들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평론가를 모방하는 평점 및 별점 매기기를 왜 하지 않는지, 평론가로서 TV 출연은 왜 하지 않는지, 고어 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현실 정치에 대해 영화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견해도 밝히고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 오즈 야스지로, 차이밍량 등 다양한 외국 감독들의 영화와 더불어 박찬욱과 홍상수 등 일부 한국 감독들에 대한 글까지 접할 수 있는데, 글 속에서 언급하는 영화들을 이미 관람했다 해도 정성일의 난해한 글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별처럼 많은 영화들이 있기에 도전욕을 불태우게 하지만 평생 찾아봐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을 동시에 안깁니다.

‘카페 느와르’의 촬영 도중 떠오른 의문을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키는, 단락 구분 없이 서술한 에필로그 격의 ‘自問自答 - 心情’은 가장 난해합니다. 반대로 그의 글보다 ‘이리’의 감독 장률과의 인터뷰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쉬워 인상적입니다. ‘최고의 평론은 인터뷰’라는 말처럼 인터뷰어의 역량에 따라 인터뷰는 평론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데, 정성일은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한 인터뷰어입니다.

부제 ‘정성일 정우열의 영화편애’가 암시하듯 공저자 정우열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만화와 일러스트는 빡빡한 건빵으로 가득한 종이 봉지에서 새콤한 별 사탕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정성일의 외모를 독특하게 해석하여 등장시킨 유머러스한 만화나 영화감독과 그의 대표작을 하나의 컷으로 완성한 일러스트는 정우열이 만만치 않은 영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정성일에 글에 정우열이 그림을 덧붙이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프롤로그 ‘지구라는 행성에서 영화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관한 작은 가이드’를 통해 정우열의 그림을 정성일이 분석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글을 썼으며, 글을 쓰는 것에 머물지 않고 감독에 도전한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가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과연 어떤 영화가 될지 흥미롭습니다.


덧글

  • 피치라임 2010/12/22 10:11 #

    한국 영화 평론계에서 정성일은 거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몇몇 사람은 정성일을 통해 글쓰기를 배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키노의 폐간에 가슴아파하던 시절과 인터넷에서 정성일의 글을 찾아보던 열정의 시간들도 있었는데...
    반가운 책이군요.. 읽어봐야겠습니다..^^
  • Sarah lee 2010/12/22 11:26 #

    트랙백으로 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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