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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 군필자만이 정치하는 나라

로버트 A. 하인라인의 1959년 작 ‘스타십 트루퍼스’는 동명의 영화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걸작 SF 소설입니다. (참고로 원제는 ‘Starship Troopers’로 동일하지만 국내에 소설은 ‘스타십 트루퍼스’로, 영화는 ‘스타쉽 트루퍼스’로 다르게 번역 표기되었습니다.) 조니 리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구연방군 기동 보병에 지원하여 혹독한 훈련을 거쳐 거미 외계인과의 전투에 투입된다는 전반적인 줄거리는 소설과 영화가 유사하지만, 세부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액션 장면으로 가득했던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은 의외로 전투 묘사가 적고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주변 인물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사변적입니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본문에서 제1장과 제13장을 제외하면 전투 묘사는 거의 없으며, 주인공 조니가 민간인 소년에서 훈련병을 거쳐 유능한 장교로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 이상적인 군대와 국가관에 대한 작자 하인라인의 신념이 마치 정치사상을 선전하는 이데올로기 서적처럼 직설적으로 서술됩니다.

등장인물들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영화와 달리 조니와 카르멘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 동창생이자 입대 동기일 뿐이며, 카르멘과 사랑에 빠지는 잰더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투 중 부상을 입고 후송 중 전사하는 디지는 조니의 동창생도 여성도 아닙니다. 원작 소설에서 기동 보병은 전원 남성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조니와 함께 입대한 동창생 칼은 전사하여 재회하지 못하며, 조니의 어머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행 중 사망하지만 아버지는 조니의 뒤를 따라 입대해 아들의 부하가 되는 유머러스한 전개가 이어집니다. 이는 ‘스타십 트루퍼스’의 지구연방군, 특히 기동 보병이 완벽한 군대이자 남자의 로망이라는 것을 하인라인이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라첵(소설 번역명은 ‘라스차크’)은 소설에서 전설 속의 인물이며, 영화에서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분했던 상이군인 출신의 교사 라첵의 원형은 원작 소설의 뒤보아입니다.

설정도 다릅니다. ‘기동전사 건담’의 MS에 지대한 영향을 준 강화복(파워드 슈트)은 소설의 상징과도 같지만 제작비의 상승으로 인해 영화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상세히 묘사되는 조니의 장교 임관 교육 및 실습 과정도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지구연방이 성립되기 전 러시아, 영국, 미국 연합과 중국의 세계 대전이 발발했음을 소설은 암시하는데, 영화에서는 이 같은 설정에 대한 제시가 전무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군대와 국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입니다. 냉소적인 폴 버호벤은 자신의 영화에서 지구연방군을 나치처럼 묘사하고 연방정부를 대중 조작이 판을 치는 군사 정권으로 비판합니다. 그러나 하인라인은 군대를 책임감이 강한 남자답고 완벽한 인격자들의 집합소로 묘사하며 군필자만이 정치에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합니다. 병역 미필자로 구성된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미숙한 대처를 감안하면 하인라인의 주장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군대에 대한 문민 통제 자체를 어리석은 것으로 규정하는 하인라인의 논리는 위험합니다. 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치 체제라 할 수 없으나 가장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자원 입대에 의한 군필자만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얻을 수 있는 하인라인의 연방정부는 그야말로 소수 엘리트에 의한 과두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 복무를 했으니 민간인에 비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는 논리 또한 입증이 불가능하며 오히려 현대 세계사, 아니 한국의 예만 봐도 군사 정권이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세계에서 군복무가 불가능한 선천적 장애인과 남성에 비해 복무 기회가 적은 여성은 정치 참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논리적 약점입니다.

자신의 진지한 논리를 비틀어 냉소적으로 묘사한 폴 버호벤의 영화를 하인라인이 생전에 접하지 않은 것은, 논리적 정합성을 떠나 하인라인 개인으로서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다소 위험한 사상으로 무장했지만, 작품 속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스타십 트루퍼스’는 술술 읽히는 매력적인 SF 소설입니다. 후대의 SF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타십 트루퍼스’의 원작 소설이 국내에 절판된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스타쉽 트루퍼스(영화판) - 월남전 빗댄 저주받은 SF 대작


덧글

  • 카군 2010/12/09 10:09 #

    글 잘보고 갑니다^^
  • 들꽃향기 2010/12/09 10:13 #

    잘읽었습니다. ^^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에는 그런 함의가 있었던 것이군요. ㄷㄷ 그리고 문민통제에 관한 관점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유나네꼬 2010/12/09 11:09 #

    스타쉽 트루퍼즈의 또 다른 변주인 영원한 전쟁도 비교해 가면서 읽으면 참 재미있지요.
    다른것 보다도, 하인리히는 월남전 참전을 주장한 작가군인 '매파'의 선봉에 위치했지만, 영원한 전쟁의 작가[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는 그 월남전을 참전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결국 군대와 군인.. 아니 국가무력을 어느 위치에서 바라봤는지에 따라 나오는 소설이 완전하게 다르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노인의 전쟁'은 이 둘을 버무린.. 그러니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군대관념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이 3개의 책을 비교해가면서 읽는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 스카이호크 2010/12/09 17:17 #

    '영원한 전쟁'의 작가는 조 홀드먼입니다.
  • 디제 2010/12/09 18:02 #

  • 黒猫 2010/12/09 12:09 #

    저책 이전에 우주의 전사 라는 제목의 해적판이 있었지요
  • 유나네꼬 2010/12/09 18:05 #

    우주의 전사는 해적판이 아닙니다...[일단 제가 알기로는;]
    영화로 나오기전에 나온 시공사 그리폰 북스에서 나온 것이 우주의 전사 입니다. 이후에 영화가 나온후에 스타쉽 트루퍼즈로 이름이 변경되더군요. 솔찍히 우주의 전사는 좀 촌스럽긔; 제가 가지고 있는 책도 우주의 전사로 되어 있습니다.
  • 잠본이 2010/12/10 00:17 #

    일본어판 제목이 '우주의 전사'인데 그걸 따왔던 거죠.
    선라이즈에서 제작한 OVA판도 있는데 챔프인가 대원인가에서 더빙판 나온거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 toonism 2010/12/09 13:05 #

    내용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지만 글 초반의 제목 관련해서는...


    시공사에서 나온 초판이 <우주의 전사>, 재판이 <스타쉽 트루퍼스>였습니다.

    나중에 행복한책읽기에서 재간하면서는 외래어표기법 규정에 맞춰 <스타십 트루퍼스>로 제목을 정했죠.
  • 천년용왕 2010/12/09 13:28 #

    이 책 보고 있으면 무슨 군사 국가를 인류 문명의 이상적인 최종 단계처럼 묘사해서 참 기분이 이상해지죠.
    재미없거나 하면 내던졌을 거 같은데 정말 미칠듯이 재미있는 책이라 그러지 못하다 다 읽고 맙니다.
  • ARX08 2010/12/09 14:57 #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만
    >병역 미필자로 구성된 이명박 정부
    혹시 관련 자료를 링크해 주실수 있나요?
    제 부족한 능력으로는 힘들어서 입니다.
  • 미스트 2010/12/09 16:48 #

    연평도 포격에 대한 MB이야기가 나와서.......
    미국의 경우 클린턴 대통령도 군복무 경험이 없고, 현 오바마도 군복무 경험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꼭 군복무 경험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징병제 국가로서 '부정을 통한 군복무 회피'를 문제삼는거지
    군복무 자체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정치가의 군복무 이야기가 늘 나오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 maxi 2010/12/09 18:01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이거 읽을때마다 참 거시기해요. -_-;; 폴 버호벤이 "비꼬"는 게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
  • 레이지 2010/12/09 18:04 #

    d이거잼나염?ㅋㅋㅋ
  • SKY樂 2010/12/09 18:11 #

    스타쉽 트루퍼스의 정치관은 그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녹아있는 작품이기에 지금의 관점에서만 평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인라인의 소설중에는 돌연변이들을 체제의 피해자로 언급하는 작품도 있으니 그를 군국주의의 지지자로 단정할 이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영화야 말씀대로 전혀 다른 주제의 작품이 되어버렸으니... 그보다 이명박정부가 미숙한 대응을 했다라... 핵실험 해도 쌀셔틀 해주는 병역자들의 정권이나 별반 차이는 느끼지 않지만,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국주의 정권보다는 낫지요.
  • 하얀앙마 2010/12/09 18:13 #

    SF사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죠.
    재미도 있고, 후대에 끼친 영향도 크고 말이죠.

    저는 작품 내에서 체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특히 싫더군요.
    특히 체벌이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도 긍정적이지 않은 중.고등하교의 현실을 생각하면 말이죠.

    군필자만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군대의 부정적 기능 중 하나가 '불의를 참게 만드는 것' (정확히 말 하자면 불의라는 개념의 기준이 올라가 버리는 것)이 있으니까요.
  • Kris 2010/12/09 18:14 #


    왠지 이 글에는 스타쉽트루퍼스의 상황을 한국의 상황에 대입하려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짧게나마 글을 남깁니다만..

    저들의 군대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모병제지만 한국의 군대는 '징병제'입니다. 미국 역시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군복무를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국방의 의무'를 갖고 그 중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수뇌부들이 비판받는 현실은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다한 국가의 의무조차 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위에 앉아 이러쿵저러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군인이었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인이나 공무원과 같이 '국가'의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한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같은 고전적 의무에서 불법적이거나 편법적인 탈세를 저지르지 않는 것(납세의 의무)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것은 사실 상식적으로 매우 기본적인 의무라는 말이지요.

    같은 애기로.. 여성의 경우 정치하는 데 있어서 군대 문제로 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 싱클레어 2010/12/09 20:04 #

    아, 영화만 보고 이건 군국주의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했는데 원작 소설은 정말로 그게 주입된 내용인가요??
  • ㅇㅇ 2010/12/09 20:08 # 삭제

    군대를 안감-> 나라의 앞날에 관심이 없음-> 선거권, 피선거권 필요없겠네? 이런 논리일건데요.
    그리고 역대 군사정권 관련자들은 소설 안 군대에 가져다 놓으면 다 사형입니다. 애시당초 현실의 군대가 아니고 1000%미화된 군대니 그런 군대 구성원들이라면 일반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안가져도 알아서 다해줄 수 있을겁니다. 현실에서 저정도 군대를 만기전역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권이면 저는 권리 포기해도 상관없습니다.(전 군필자고 나라를 지킬 마음도 있지만 저런 군대서는 만기전역할 자신없습니다.) 더구나 우수하고 청렴한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체제라니 아주 좋네요.
  • 미들마치 2010/12/09 20:44 # 삭제

    글쓴 분은 스타쉽 트루퍼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군요. 소설에서는 군필자들이 직접 정치하는 게 아니라 그저 투표권을 얻을 뿐입니다.

    예비역에 비해 현역이 좀더 권리가 많지도 않고, 장군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정치참여권리를 얻지 않습니다. 따로 '공안위원회' '군사위원회'따위를 만들어 정치에 끼어들지도 않습니다. 문민통치의 우위도 부정하지 않고요, 어차피 스타쉽트루퍼스의 세계에서도 대부분 시민들은 최소 기간만 복무하고 제대해서 참정권을 얻고 삽니다.

    스타쉽트루퍼스가 기동보병만 다루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데, 이는 남성만 복무하는 병과라 군대 전체를 대표하는 경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즉 군필=참정권의 우위성을 증명하는 것과 기동보병의 장점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정부가 지원자를 장애인이라고 해서 군입대를 거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불합격 판정을 받는 유일한 길은 정신과 의사들이 자네가 선서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진단하는 경우야"라고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해서라면, 소설 중에는 해군의 40%는 여성이라는 문구도 나옵니다. 이때 남성이 좀 더 복무기간이 길어서 60%나마 차지하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의 주장에는 어떤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단 한가지, 군국주의라는 비난은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 청천벽력 2010/12/10 11:28 #

    제가 하려던 말이 여기 있네요.

    원작 스타쉽 트루퍼스의 세계관에선 군인이 작접 정치하는게 아니라,

    참정권을 얻을 뿐이고, 이에 의해 민주주의 정부가 구성되어 통치합니다.
  • virustotal 2010/12/09 20:51 #

    누가이런말을 했죠 대통령제에서는 한글도 나올순 없었다

    5년이면 끝나니

    정일이도 군대갔나

    링컨도 여자까지 안적어도 알죠

    문제는 어떻게 하냐는건데

    5년이건 200년이건 잘하면 성군이요

    달라이 라마 처럼

    사우디왕족도 지들 처먹고는 하고도

    국민들 복지에 신경쓰느라 학교만들고 담수화설비만들고

    여성인권? 등등 물론 쇼라고 해도

    좋아보이더군요 몇년하다 나가는것이 아닌 죽으때까지 자기한걸 계속

    어떻게 할려고 하니

    Alwaleed bin Talal--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의 조카. 아랍세계에서 꾸준히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산 215억달러.
  • 유진 2010/12/10 15:31 #

    저는 '전설적'이라고 불리면서 작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관이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읽다가 피식하게 만들 정도로 끌어내리는 발언의 유창함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새로운 시각이네요.
    그런데 한국과 비교하시는 부분은 이해하기 좀 어렵네요. 한국에서는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상충되는 의무가 있으며, 그 중에는 '국방의 의무'가 있는데, 이것 역시 말씀하신 '하인리히가 주장하는 엘리트 정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 SDf-2 2010/12/10 19:32 #

    하인라인이 쓸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서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소설을 볼 땐 지나치게 군국주의 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혐오감이 많이 든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의 내용 자체는 이미 희미하지만 그 학교선생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 선생이 아마도 쓰신 뒤보아 같은데...


    한 여학생: '선생님 어머니께서 폭력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선생: '내가 들어 봤던 말 중 가장 웃긴 말이구나'(또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구나 대략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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