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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감독판 - 파멸적 사랑의 희비극적 은유 영화

이상하리만치 강한 잔상을 남기는 영화가 있습니다. 첫 관람에는 호감이 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난 후, 왠지 모르게 이끌려 다시 찾아보게 되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작년 봄 관람했을 때는 분명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기억 한 구석에 남은 강렬한 잔상을 떨칠 수 없었고, 한 번의 관람으로 속단한 것 아닌가 하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블루레이로 발매된 감독판을 구입해 최근 다시 관람하고는 역시, 싶었습니다.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이유는 외적인 장치에 짓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 뱀파이어, 고어, 불륜, 살인 등의 설정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 꼴입니다. 재관람하니, 나열한 설정들은 급속히 빠져드는 사랑의 파멸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현(송강호 분)과 태주(김옥빈 분)의 사랑을 보다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박쥐’에서 가장 크게 대비되는 두 소재는 피와 물입니다. 붉은색 피와 푸른색 물은 색상부터 대조적으로, 일반적인 영화에서 피는 죽음, 물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박쥐’에서는 정반대입니다. 피는 뱀파이어가 반드시 섭취해야하는 일용할 양식이자 병을 치유하는 생명의 원천이며, 영어 제목 ‘THIRST’처럼 상현과 태주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의미합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소품인 미사주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피, 즉 구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은 뒤 부활하여 뱀파이어라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상현을, 신자들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혹은 성자로 추앙합니다.

강우(신하균 분)의 살해 장소로 선택된 곳이 저수지라는 점과 끊임없이 출몰하는 강우의 유령이 항상 물을 동반하는 것처럼 물은 죽음과 익사, 악몽과 죄의식을 상징합니다. 상현이 태주와 함께 최후를 맞는 공간(태주는 상현에게 ‘그동안 즐거웠어요. 죽으면 끝’이라는 유언을 남깁니다.)으로 선택된 곳은 바다입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생명과 새출발의 이미지를 전복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피와 물이 ‘박쥐’에서 보편적인 이미지와 상반된 소재로 활용된 것은 뱀파이어가 인간과 생활 습관 및 식습관 등 모두 정반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상징을 떠나 단순한 부조리극의 관점에서 즐길 수 있다면, 풍부한 유머 감각을 지닌 기묘한 로맨틱 코미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첫눈에 반해 열애를 거쳐 티격태격하는 권태기를 지나 이별에 도달하는 보편적인 연애와 ‘박쥐’의 두 주인공의 사랑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B급 정서가 함유된 ‘언젠 귀엽다며 XXX아?’와 같은 명대사와 ‘인터넷’ ‘락 앤 락’, ‘인명 경시’ 등의 단어의 독특한 활용, 그리고 막장 드라마의 관습적 시어머니 상을 압도적인 눈빛과 표정만으로 소화하며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김해숙의 연기를 즐길 수 있다면 ‘박쥐’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많은 작품입니다. 모든 관객의 보편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오락 영화는 아니지만 짓눌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희비극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완벽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맛깔스러운 대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치밀한 카메라 워크와 미장센, ‘행복 한복’의 치밀하고도 기묘한 세트, 그리고 사랑에 빠지고 뱀파이어로 변해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김옥빈의 분장과 의상에 초점을 맞춰 관람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11분의 러닝 타임이 확장된 감독판에는 상현이 시각장애인인 노신부(박인환 분)를 살해한 후 그가 생전에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바다에 던지는 장면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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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 유일한 승자는 김옥빈



덧글

  • 른밸 2010/10/24 10:34 #

    저도 박쥐가 기억에 정말 오래 남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끼쳤던 장면은 시어머니가 식물인간 된 다음에 맨날 오던 신하균 친구들이 '아들을 죽인 사람이 이 자리에 있나요?' 라고 물으니까 필사적으로 눈 깜빡깜빡거리던 씬이었습니다. 생각만해도 오싹해지네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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