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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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맘보 - 허우 샤오시엔의 ‘아비정전’ 영화

무위도식하며 환락을 즐기는 비키(서기 분)는 동거하는 남자 친구 하오하오(투안 춘하오 분)의 병적인 의심과 집착에 염증을 느낍니다. 비키는 하오하오와 이별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중년 남성 잭(잭 카오 분)의 거처로 옮깁니다.

2001년 작 ‘밀레니엄 맘보’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적 특성을 답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요소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하나의 시퀀스를 하나의 신으로 처리하는 롱 테이크 위주의 촬영, 인위적인 조명과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 회피, 절제된 대사, 불분명한 기승전결과 불친절한 서사 구조 등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요소들입니다. 서사 전개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자칫 지루하게 수용될 수 있다는 허우 샤오시엔 영화의 일반적인 약점에서 ‘밀레니엄 맘보’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밀레니엄 맘보’는 허우 샤오시엔의 필모그래피에서 두드러지는 개성을 지녔습니다. 매우 건조했던 여타 작품들과 달리 주연 여배우인 서기의 섹시함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단순한 눈요깃거리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음주, 흡연, 약물 등의 환락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지향 없는 환락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몽환적으로 묘사하기에, 미장센은 원색 위주로 매우 현란합니다. 카메라 워킹이 정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허우 샤오시엔이 아닌 왕가위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위도식하는 향락적인 주인공의 내레이션에 의존하는 나른한 영화라는 공통점까지 감안하면, ‘밀레니엄 맘보’는 왕가위의 저주 받은 걸작 ‘아비정전’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의 탈선과 달리, ‘밀레니엄 맘보’의 비키의 탈선은 이유가 분명치 않지만, 포스트모던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밀레니엄 맘보’의 비키의 탈선이 끝 모를 허무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장국영이 ‘마리아 엘레나’에 맞춰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 ‘아비정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허우 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라는 작명은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허우 샤오시엔이 ‘밀레니엄 맘보’에서 자신의 조국인 대만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오프닝을 제외하면 대만을 배경으로 설정한 대부분의 장면이 실내에서 촬영되어 답답하며, 오프닝의 육교 터널의 슬로우 모션은 출구 없는 비키의 미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아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반면, 도쿄와 유바리 등 일본을 배경으로 설정한 장면은 실외 장면 위주여서 상대적으로 탁 트인 인상입니다. 도쿄는 인파가 넘치는 활기찬 공간으로, 유바리는 대만에서는 볼 수 없는 눈으로 가득한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묘사되어, 환락으로 점철된 대만과는 구분됩니다. 도쿄 시내의 전철이 등장하는 장면은 ‘카페 뤼미에르’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허우 샤오시엔이 ‘밀레니엄 맘보’의 결말을 장식하는 이상향으로 설정한 공간은 폐광 도시에 관광 도시로 변모하여, 판타스틱 영화제를 개최하는 홋카이도 유바리의 영화의 거리인데, 이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어렵고 설령 완성한다 해도 자국 영화가 홀대받아 개봉이 어려운 대만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답답한 대만의 현실에서 벗어나 유바리를 선택한 비키는, ‘밀레니엄 맘보’의 후속작 ‘카페 뤼미에르’의 촬영지로 일본을 선택한 허우 샤오시엔의 의지가 투영된 자아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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