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느와르의 걸작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는, 오우삼 감독과 오랜 파트너 테렌스 창이 제작에 참여했고, 판권을 보유한 포츈 스타의 각본 감수 하에 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네 주인공의 관계와 서사 구조, 그리고 액션 장면의 기본적 요소는 거의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관람하기에 앞서 ‘무적자’의 영화적 완성도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하는 호기심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적자’는 호기심을 넘어서는 영화적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198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했던 ‘영웅본색’의 서사 구조를, 2000년대 대한민국 부산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설정을 동원해 개연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지만, 95분의 원작의 러닝 타임을 124분으로 확장시키며, 불필요한 사설이 덧붙어 엿가락처럼 늘어져 매우 지루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머와 액션, 신파와 감동을 적절히 혼합해, 보는 이를 쥐락펴락했던 원작의 연출력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개연성을 확보한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태민 일파의 거래 정보를 철의 동료들이 입수해 출동하지만, 이를 뒤늦게 들은 혁이 현장에 먼저 나타나고, 동료 경찰들은 총격전이 마무리된 뒤에 도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영웅본색’의 표면적인 주제는 의리였지만, 진정한 주제는 주윤발이 분한 소마가 최후의 결투를 벌이기 전 홍콩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읊조리는 홍콩 반환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입니다. 하지만 ‘무적자’는 항구 도시라는 공간적 배경만 부산으로 계승했을 뿐, ‘영웅본색’의 진정한 주제 의식을 계승하지도, 재창조하지도 못합니다.
그나마 ‘영웅본색’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원작과의 비교를 통해 지루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만, ‘영웅본색’을 원체험하지 못한 2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별개의 영화로서 지루함을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사이코’를 구스 반 산트가 리메이크했던 것처럼, 개연성을 무시하고 모든 장면과 대사를 그대로 옮겨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탈북자를 소재로 했으나 한국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총격전 영화로 흘러갈 바에는, 애당초 뻔뻔스럽게 원작과 같은 판타지로 방향성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영웅본색’에서는 장국영의 여자친구로 등장했던 재키(주보의 분)가 남자들 사이에 낀 여성을 연기하며, 젊은 여성 관객의 감정 이입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할을 ‘무적자’에서는 이모로 분한 김지영이 맡았지만, 젊은 여성 관객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남자들만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공교롭게도 ‘영웅본색’의 일본 개봉 제목이 ‘남자들의 만가’입니다.) 즉, ‘무적자’는 한국 영화의 주된 소비층인 20대 여성의 감정 이입과 호응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무적자’의 네 명의 주인공을 ‘영웅본색’과 비교하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의외로 장국영이 분한 자걸에 해당하는 철 역의 김강우입니다.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은 곱상하고 여린 외모를 앞세워 보호본능을 자극했지만, ‘무적자’의 김강우는 한 맞힌 한국적 캐릭터로 거듭났습니다. 미묘한 표정 연기도 네 배우 중 가장 섬세한 호연을 선보입니다. 이자웅이 분한 악역 아성 역을 계승한 태민 역의 조한선은 스테레오 타입의 연기이지만 무난하게 소화합니다.
하지만 중후한 남성미를 풍겼던 자호 역의 적룡을 물려받은 혁 역의 주진모의 연기는 밋밋하며, 개봉 전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던 소마 역의 주윤발을 계승한 영춘 역의 송승헌은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뻣뻣한 연기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읽던 신문이 흩날리며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라는 대사로부터 시작되는 복수극과 비장미 넘쳤던 최후까지 ‘영웅본색’을 상징하는 명장면을 고스란히 떠안은 송승헌의 연기는 주윤발과 비교해 실소를 자아내는 수준에 그칩니다. 트렌치코트와 줄담배, 선글라스와 쌍권총을 계승하면서도 성냥개비를 입에 무는 습관만은 따라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긴 그 어떤 배우가 역을 맡았어도 대배우 주윤발의 아우라에 버거워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연기력이 부족한 송승헌의 대담한 선택은 민망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마치 영화 동아리에 소속된 대학생이 ‘영웅본색’을 모방한 유튜브 습작에 출연한 듯 어색합니다. 결국 ‘무적자’는 두 주연 배우의 아쉬운 연기력과 썰렁한 각본의 조합으로 인해 원작과 같은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과 감동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액션 장면의 연출 또한 원작과 같은 통렬함을 뿜어내지 못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무적자’에서 ‘영웅본색2’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웅본색2’의 주제가 ‘분향미래일자’가 피아노로 편곡되어 두 차례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분향미래일자’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배경 음악이 없어 차라리 ‘영웅본색’ 1편과 2편의 배경 음악을 재사용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적자’가 ‘영웅본색’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결말입니다. ‘영웅본색’은 영어 제목 ‘A Better Tomorrow’가 암시하듯, 희망과 갱생을 결말에서 제시한 반면, ‘무적자’는 ‘A Better Tomorrow’라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이를 무색케 하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파국으로 치달아 속편에의 가능성을 말살합니다. 아마도 해외 판매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영화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A Better Tomorrow’라는 영어 제목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회의를 피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적자’는 왜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 없습니다. 원작을 등에 업은 상업적 성공은 근본적으로 리메이크의 영화적 완성도와 시대를 반영하는 재해석의 설득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인데, 송해성 감독의 재기는 ‘파이란’을 끝으로 모두 소모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지루한 결과물을 낳아, 원작을 넘어서는 리메이크는 드물다는 속설을 입증한 ‘무적자’는, 역시 ‘영웅본색’이 시간을 넘어서는 걸작임을 입증하는 한계에 머뭅니다.
영웅본색 - 영웅, 22년 만에 필름으로 귀환하다
파이란 - 담담하게 밀려오는 슬픔
역도산 -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실패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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