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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 죽음의 그림자 드리워진 지브리 소품 애니메이션

심장병 수술을 앞둔 쇼우는 외할머니 집에 요양하기 위해 머물다 소인 가족의 외동딸 아리에티와 조우합니다.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그것이 도리어 화가 되어 아리에티 가족은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메리 노튼의 원작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재해석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기존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요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풋사랑과 질주, 꼼꼼함과 아기자기함, 인간 못지않은 비중의 동물 및 곤충 캐릭터(징그러운 공벌레조차 귀엽게 묘사됩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아날로그적 감수성(TV나 게임에 몰두하는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쇼우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인데 그가 마지막에 읽는 유일한 일본어 제목으로 된 책이 ‘비밀의 화원’이라는 점은 아리에티 가족의 비밀스런 삶과 그 거처를 연상시킵니다.),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 타 종족에 대한 기성세대의 적의와 대립 등의 요소는 기존의 작품들을 연상시킵니다. 붉은 머리에 터틀넥 원피스를 입은 호기심 많은 아리에티는 ‘빨간 머리 앤’의 타이틀 롤 앤을 빼닮았고, 중반 이후 등장하는 스피라는 ‘미래 소년 코난’의 포비(원 캐릭터명 ‘지무시’)와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를 반반 씩 닮았습니다.

하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나름의 차이점을 지닌 작품입니다. 우선 지브리 특유의 역동적인 액션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역동적인 액션과 엄청난 스펙타클로 관객을 압도하며 시각적 쾌감을 제공하는데, ‘마루 밑 아리에티’는 판타지이지만 공간적 배경이 현실적이어서 현란한 스펙타클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부 관객들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비주얼이 메시지를 잠식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비주얼과는 별도로, 여타 지브리의 작품들에 비해 서사 구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비판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루 밑 아리에티’가 ‘죽음’을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것입니다. 병약한 쇼우는 심장병 수술을 앞두고 죽음을 직감하고 있으며, 아리에티의 가족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멸종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쇼우가 아리에티에게 죽음과 멸종을 연결시켜 언급하는 장면은 서늘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12세 소년답지 않게 쇼우가 죽음을 언급한 것은, 자신이 심장병에 걸려 대수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아리에티를 비롯한 소인들이 멸종할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인간 역시 지금과 같은 환경 파괴를 일삼을 경우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경고입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를 비롯한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멸종과 환경 파괴를 일관되게 경고해왔지만, 주인공 개인의 죽음을 멸종과 연관짓는 것은 독특한 연출입니다.

결말에서 쇼우는 아리에티와 이별하며 여명을 바라보고 삶의 희망을 얻지만, 쇼우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리에티는 언젠가 부모가 죽더라도 생명력이 강한 스피라와 짝을 지어 자식을 낳고 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멸종에 이르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코맥 맥카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더 로드’를 연상시키는 비장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칠순에 달해 후계자 발굴이 시급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처음으로 연출을 맡겼는데, 캐릭터 수가 적고 스케일이 작은 아기자기한 소품 ‘마루 밑 아리에티’를 통해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미야자키 히야오를 만족시켰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덧글

  • 충격 2010/09/16 10:03 #

    - 오해가 좀 있으신 것 같은데... 지브리는 십 수년 전부터 (성우를 안쓰고)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유명 배우 캐스팅을 일부러 피하는 성향을 보인 적은 전혀 없어요. 아리에티만 해도 후지와라 타츠야 외에
    시이다 미라이, 카미키 류노스케, 오오타케 시노부, 미우라 토모카즈, 타케시타 케이코, 키키 키린, 전부 다 유명한 배우들입니다.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발탁한 것은 스즈키P인 것으로 생각되고, 결과적으로 미야자키옹은 완성시사회 관람후 대만족을 표시했습니다.
  • 뿌취문 2010/09/16 18:32 #

    그렇네요 하울도 기무라 타쿠야고
  • 디제 2010/09/17 08:39 #

    캐스팅 관련 부분 수정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부 시사회가 끝난 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만족감을 표시한 것을 저도 NHK 다큐멘터리에서 시청했습니다만,

    개봉 이후의 관객 동원 및 평, 즉 외부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부 시사회와는 다른, 별개의 평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든 것을 종합해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차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즉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1회성에 그치는가 아니면, 연속적으로 연출을 맡기는가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 로오나 2010/09/16 15:16 #

    미야자키 영감님의 경우 시사회 때 다 보고 나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게드전기 때의 반응을 생각하면 진짜로 만족한 듯^^;
  • 그냥 2010/09/16 18:06 # 삭제

    지 취향에 맞았는듯
  • 2010/09/16 16:13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나디 2010/09/16 18:59 # 삭제

    그 책이 '비밀의 화원'이었군요^0^. 그 책은 병약한 소년이, 갑자기 같이 살게 된 소녀에 의해서 돌아가신 엄마의 화원을 알게되고, 건강도 찾게 된다는 이야기 랍니다. 꽤 의미심장한 복선라는 생각이 드네요.

    센과 이치로...에 비해서는 정말 소품이라서 크게 점수를 주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전 임신중이라 태교로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네요.^_^
  • f 2010/09/16 19:24 # 삭제

    소품이란 말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지
  • lyh1999 2010/09/16 21:01 #

    소품은 소품이죠. 소품이라고 쓰면 작품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착각하는 게 문제일뿐.
  • 키르난 2010/09/16 19:54 #

    저는 쇼우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리에티 시작하면서 쇼우의 독백이 흘러나오지요. 그 여름은 다시 없을 여름이었다..던가. 그 독백으로 이야기 전체가 어른이 되어(혹은 몇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옛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추억담 같은 분위기가 들었거든요. 대사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니 나중에 DVD로 확인해봐야겠습니다.^ㅁ^;
  • 잠본이 2010/09/16 22:28 #

    그러나 여기서 '반딧불의 묘' 신공이 투입된다면? (←나레이터가 이미 죽은뒤에 회상으로 얘기 시작)

    ......장난이지만 왠지 진짜 그럴까봐 무섭고 말이죠 OTL
  • 나츠메 2010/09/16 23:37 #

    잠본이/
    설마 그럴리가.... 수술 잘 되서 과거를 회상했다고 해석하는 게 정신위생에 좋을 듯...
  • 솜사탕 2010/09/16 21:07 #

    즐겁게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지브리에서 또 작품을 만들었다길래 어떨까 궁금해서 영화를 보고 왔는데 잘 보고 왔다고 생각됩니다.집 틈새의 모습이 마치 동굴같이 느껴져서 꽤나 현장감이 있었습니다.소인들의 이야기라서 조용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일반 사람들의 기준으로 본 것 때문에 쿵쿵쿵!!소리가 나서 놀라기도 했지만 계속 보다보니 익숙해졌고 보기가 즐거웠습니다.

    아리에티의 어머니가 인간에게 잡혀가지만 결국 풀려나고 집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던데 과연 재대로 갔을지 궁금합니다.쇼우도 심장수술을 잘 받았을지 궁금합니다.결말을 이런식으로 줘서 조금은 섭섭하지만 오픈엔딩식으로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 그저께 보고 온 2010/09/16 23:25 # 삭제

    저도 재밌게 보고 왔지만 스케일이 작아서 일까요... 약간은 아쉬웠었습니다. 아니 스케일만 따지면 토토로같은 작품도 있는데 왜 극장을 나올땐 2% 아쉬운 기분이 들었을까요.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역량인가
    아리에티의 집 배경이 참 재미나더군요. 소인의 입장에서 이렇게저렇게 꾸며놓은... 펜촉의 새깃털 대신 잠자리 날개라던가 잉크통 대신 다쓴 치약이라던가 지브리다운 상상력이 듬뿍 배여있었습니다.
    반면 쇼우가 아리에티에게 종족의 멸종을 얘기할땐 약간 좀 어색했었어요. 그전까지와의 태도와 달리 냉소적이라서 어어? 했던... 억지로 환경문제를 끼워넣은 느낌도 났고.. 인간과 소인의 관계만이라면 충분히 그런 주제에 맞지만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상으론 조금;
    전 결말은 맘에 드는데 중간에 쇼우가 뛰다가 으윽 하면서 쓰러지지 않을까 불안불안했었어요ㅋㅋㅋㅋㅋ

  • 라세엄마 2010/09/17 13:29 #

    쇼우-아리에티 커플이 생기지 않은 시점에서 희망이 엇ㅂ어[야!]
  • 주코프 2010/09/17 17:01 #

    '귀를 기울이면'의 콘도 상이 급사한 것이 미야자키 감독님께 있어서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었을 겁니다..이번 작품을 통해 후계자 작업도 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월들, 잘 애독하고 있습니다..아울러 추천올립니다..^^
  • 나디르Khan★ 2010/09/25 20:33 #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놀라울 정도로 단백하고 직설적이어서 영화보는 도중에 심히 놀랐습니다. 하야오식의 휘황찬란한 판타지로 장식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그 은근한 대범함이 상당히 파문을 남기더라고요. 심심하다고 비난받을 소지도 충분한 영화지만 무거운 소재에 대하여 화장기없이 정면으로 맞서는 그 담담함이나 약간의 쌉쌀한 냉소기가 전 굉장히 맘에 들었습니다. 이 새 감독, 마치 지브리의 탈을 쓴 덜익은 스탠리 큐브릭 같달까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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