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앤더슨 감독의 1997년 작 ‘이벤트 호라이즌’은 미지의 적과 사투를 벌이는 우주선 승무원들을 묘사하는 SF 호러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솔라리스’, ‘에이리언’ 시리즈 등 SF 걸작 영화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96분의 짧은 러닝 타임 속에서 군더더기 없이 흥미를 유지하는 재미있는 작품임에 분명합니다. SF 영화라면 자칫 경도될 수 있는 철학적, 현학적 주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락 영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합니다. 폴 앤더슨 감독은 이후 ‘레지던트 이블’,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등의 영화도 연출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나은 작품이 ‘이벤트 호라이즌’입니다.
호러 영화라면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SF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물리적인 위협이 아닌 정신적인 위협이라는 점에서 ‘이벤트 호라이즌’은 매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난 뒤에야 첫 번째 희생자가 등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특이합니다.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반에 몽타주처럼 삽입되는 고어 장면의 수위가 상당히 높으며 공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CG가 활용되었지만 그보다는 아날로그 특수효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어설픈 면이 없지 않지만 과거 SF 영화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향수를 자극합니다.
서사구조는 ‘미친 과학자’와 책임감 강한 함장이라는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 간의 대결 구도로 압축됩니다. 부하들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헌신적인 밀러 함장 역의 로렌스 피시번이, 2년 뒤 ‘매트릭스’에서 역시 부하들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 모피어스로 출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에 맞서 지적이면서도 광기 넘치는 연기를 소화한 샘 닐 역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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