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인 디 에어’ (원제 : ‘Up in the Air’)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호텔과 기내에서의 삶을 즐기는 부평초 같은 중년 사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입니다. 고소득의 전문가로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라이언이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근무 환경이 바뀌면서,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최근 미국은 금융 위기로 인해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대량 해고 사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헐리우드에는 이를 직시하는 영화가 드물었습니다. ‘인 디 에어’는 대량 해고 사태를 직시하면서도 부담 없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수완을 과시합니다. 속도감 넘치는 경쾌한 편집과 함께 코미디의 요소를 가미해 인간관계에 대한 여유로운 시선이 돋보입니다.
라이언이 출장 중에도 짐짝처럼 거추장스럽게 지니고 다니는 여동생 커플의 큼지막한 사진판은 냉정한 사내조차도 가족과 완전히 절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진부한 해피 엔딩이나 ‘정(情)이란 좋은 것’이라는 식의 교과서적인 결론, 혹은 관객을 가르치려드는 오만함으로 귀결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합니다. 라이언의 바쁜 발걸음을 따라 미국 각 도시의 특유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로드 무비인 ‘인 디 에어’의, 군더더기 없는 109분의 러닝 타임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뜻밖의 반전과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아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조지 클루니의 매력은 냉혹한 해고 전문가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넉넉하게 마련합니다. 중반까지 새치가 간간이 엿보인 머리가 후반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 마지막 장면에서 새하얗게 변해버린 분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이언과 팀을 이루며 사수 · 부사수 관계가 되는 당찬 여성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를 상징하는 두 사람의 세대 간 갈등은 전반부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입니다. 디지털에 집착하는 나탈리가 인간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라이언보다 구세대에 가깝다는 점은 새로운 긴장을 유발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단점을 지적할 때에는 마치 부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 디 에어’에서는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노’에서는 로링 부부를 통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한 여피를 조명한 바 있는데, ‘인 디 에어’의 라이언과 알렉스를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노’에서는 타이틀 롤 주노를 통해 왜소한 키에 세상을 잘 모르지만 야무진 소녀를 주인공으로 제시하며 서사를 풀어나갔는데, ‘인 디 에어’에는 마치 주노가 나이를 먹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신입사원이 된 것과 같은 주체적인 캐릭터 나탈리가 등장합니다. 왜소하지만 당찬 여성에 대한 제이슨 라이트먼의 집착마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노’에서 여피 마크 로링으로 분했던 제이슨 베이트먼은 ‘인 디 에어’에서 라이언이 근무하는 회사의 CEO 크레이그로 등장하며, ‘스파이더맨’ 3부작의 허풍스런 편집장 J. 조나 제임슨으로 잘 알려졌으며 ‘주노’에서는 주노의 아버지 맥으로 분했던 J. K. 시몬즈가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주노’로 혜성처럼 등장한 제이슨 라이트먼의 후속작 ‘인 디 에어’를 보니, 미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이며 인간적인 정서를 지닌 제이슨 라이트먼의 나이가 고작 서른셋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그가 중년을 넘어 인생에 더욱 깊이가 실려 진정 노련한 감독이 되면 얼마나 훌륭한 영화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주노 - 16살 임신부의 꿋꿋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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