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에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촉망받는 미군 지휘관이었지만 무고한 인명을 살해한 후 광기에 빠진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 분)을 암살하기 위해 윌라드 대위(마틴 쉰 분)는 4명의 부하들과 함께 소형 선박에 탑승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9년 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49분을 추가하여 2000년에 완성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월남전의 혼란과 광기를 조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입니다. 정글, 네이팜탄, 양민 학살, 마약, 여론 조작, 위문 공연 등 월남전을 연상시키는 거의 모든 소재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오프닝부터 헬기의 굉음이 영화 전반을 잠식합니다.
헬기 부대가 베트남 마을을 완전히 쑥밭으로 만드는 전투 장면에서 활용되는 바그너의 ‘발퀘레의 기행’은 ‘지옥의 묵시록’을 상징하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경쾌하면서도 웅장한 ‘발퀴레의 기행’은, 전투에서 병사들이 낭자하게 흘린 뒤 정글에서 말라붙은 듯한 유혈을 상징하는 짙은 적갈색의 화면이 지배하는, 끈적거리는 광기가 지배하는 영화 전반과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발퀴레의 기행’보다는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도어즈와 롤링 스톤즈의 절규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록 음악이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립니다.
‘지옥의 묵시록’은 윌라드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 로드 무비인데, 여정에서 처음 만나는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분)과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커츠 대령은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살인을 의미하는 ‘Kill’과 선혈을 의미하는 ‘Gore’의 합성어로 된 이름을 가진 킬고어(Kilgore)에게 있어 전쟁은 유희에 불과합니다. 그는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도 서핑을 즐기고, 적에게는 공포로 아군에게는 용맹함으로 각인되기를 원하는 속물스런 인물입니다. 반면 커츠 대령은 전쟁에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후, 군을 이탈하여 정글 속에 들어앉아 그곳에서 왕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이 전쟁을 통해 신이 되기를 원했지만 살육을 자행하며 짐승으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커츠 대령을 이해하지 못했던 윌라드는 참혹한 여정 속에서 그의 심경을 이해하고 점차 커츠 대령에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극중에서 커츠 대령은 월남의 검은 소로 비유되는데, 킬고어의 부대가 소를 포획해 헬기로 수송하는 장면은 커츠 대령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며, 종반부 윌라드가 커츠 대령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검은 소의 도살 장면과 교차 편집되며 동일시됩니다. 헐리우드의 월남전 영화들 대부분이 베트콩과의 전투를 묘사하는데 주력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은 처음부터 아군이었던 미군 장교 암살이 일관된 목적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덕스’ 버전에는 윌라드 일행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베트남에 머물러 온 프랑스인들과 조우하는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머물며 베트남이 삶의 터전이 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베트남에서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는데, 침략자에 불과한 그들의 결의는 핵심을 어긋난 것이어서 비장하기보다 우스꽝스럽습니다. 더 이상 프랑스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그들의 삶에 배인 죽음의 냄새는 곧 미국인이 뒤따라야 할 전철을 의미합니다.
월남전의 집요한 광기를 묘사하기에 다소 난해하지만, 윌라드가 커츠 대령의 본거지에 도착한 이후 다소 늘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3시간 20분의 러닝 타임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이미 언급한 킬고어 부대의 헬기 전투 장면을 비롯해, 필리핀의 대형 세트에서 엄청난 물량 공세를 통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현된 전쟁 스펙타클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동시에 죄책감을 수반한 쾌감을 선사하며,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등장하는 에로틱한 장면이나 윌라드와 프랑스 여인 록산느(오로르 클레망 분)의 로맨틱한 베드신까지, 오락 영화가 구비해야 할 폭력과 섹스라는 양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캐스팅 또한 볼거리입니다. 마틴 쉰과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듀발 이외에도 초반부에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와 후반부의 데니스 호퍼까지 매우 화려하며, ‘매트릭스’ 3부작에서 중후한 리더 모피어스로 등장하는 로렌스 피시번이 촐싹대는 10대 소년병 클린으로 분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현재의 풍채 좋은 모습과 달리 매우 날씬한 모습인데, 엔드 크레딧에도 ‘로렌스 피시번’이 아닌 ‘래리 피시번’으로 등장합니다.
1970년대에 제작된 월남전 영화의 대표작이 마틴 쉰 주연의 ‘지옥의 묵시록’이라면, 1980년대의 월남전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찰리 쉰 주연의 ‘플래툰’을 꼽을 수 있는데, 월남전을 소재로 한 부자의 주연 대물림 영화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입니다. 1993년 작 ‘못말리는 람보’에서는 찰리 쉰이 동남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 대위로 분해 카메오 출연한 마틴 쉰과 부자 대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패러디된 바 있습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와 ‘대부 2’가 미국 내부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외부로 나간 미국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0대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해 거장의 반열에 오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1980년대 이후의 행보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1990년 ‘대부 3’로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고, 1970년대의 전성기를 재현하는 영화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의 조로(早老)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부 - 가부장, 그리고 폭력과 배신
대부 2 - 가족을 잃는 가장
대부 3 - 업으로 가득찬 한 사내의 일생

1979년 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49분을 추가하여 2000년에 완성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월남전의 혼란과 광기를 조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입니다. 정글, 네이팜탄, 양민 학살, 마약, 여론 조작, 위문 공연 등 월남전을 연상시키는 거의 모든 소재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오프닝부터 헬기의 굉음이 영화 전반을 잠식합니다.
헬기 부대가 베트남 마을을 완전히 쑥밭으로 만드는 전투 장면에서 활용되는 바그너의 ‘발퀘레의 기행’은 ‘지옥의 묵시록’을 상징하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경쾌하면서도 웅장한 ‘발퀴레의 기행’은, 전투에서 병사들이 낭자하게 흘린 뒤 정글에서 말라붙은 듯한 유혈을 상징하는 짙은 적갈색의 화면이 지배하는, 끈적거리는 광기가 지배하는 영화 전반과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발퀴레의 기행’보다는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도어즈와 롤링 스톤즈의 절규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록 음악이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립니다.
‘지옥의 묵시록’은 윌라드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 로드 무비인데, 여정에서 처음 만나는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분)과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커츠 대령은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살인을 의미하는 ‘Kill’과 선혈을 의미하는 ‘Gore’의 합성어로 된 이름을 가진 킬고어(Kilgore)에게 있어 전쟁은 유희에 불과합니다. 그는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도 서핑을 즐기고, 적에게는 공포로 아군에게는 용맹함으로 각인되기를 원하는 속물스런 인물입니다. 반면 커츠 대령은 전쟁에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후, 군을 이탈하여 정글 속에 들어앉아 그곳에서 왕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이 전쟁을 통해 신이 되기를 원했지만 살육을 자행하며 짐승으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커츠 대령을 이해하지 못했던 윌라드는 참혹한 여정 속에서 그의 심경을 이해하고 점차 커츠 대령에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극중에서 커츠 대령은 월남의 검은 소로 비유되는데, 킬고어의 부대가 소를 포획해 헬기로 수송하는 장면은 커츠 대령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며, 종반부 윌라드가 커츠 대령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검은 소의 도살 장면과 교차 편집되며 동일시됩니다. 헐리우드의 월남전 영화들 대부분이 베트콩과의 전투를 묘사하는데 주력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은 처음부터 아군이었던 미군 장교 암살이 일관된 목적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덕스’ 버전에는 윌라드 일행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베트남에 머물러 온 프랑스인들과 조우하는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머물며 베트남이 삶의 터전이 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베트남에서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는데, 침략자에 불과한 그들의 결의는 핵심을 어긋난 것이어서 비장하기보다 우스꽝스럽습니다. 더 이상 프랑스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그들의 삶에 배인 죽음의 냄새는 곧 미국인이 뒤따라야 할 전철을 의미합니다.
월남전의 집요한 광기를 묘사하기에 다소 난해하지만, 윌라드가 커츠 대령의 본거지에 도착한 이후 다소 늘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3시간 20분의 러닝 타임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이미 언급한 킬고어 부대의 헬기 전투 장면을 비롯해, 필리핀의 대형 세트에서 엄청난 물량 공세를 통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현된 전쟁 스펙타클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동시에 죄책감을 수반한 쾌감을 선사하며,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등장하는 에로틱한 장면이나 윌라드와 프랑스 여인 록산느(오로르 클레망 분)의 로맨틱한 베드신까지, 오락 영화가 구비해야 할 폭력과 섹스라는 양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캐스팅 또한 볼거리입니다. 마틴 쉰과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듀발 이외에도 초반부에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와 후반부의 데니스 호퍼까지 매우 화려하며, ‘매트릭스’ 3부작에서 중후한 리더 모피어스로 등장하는 로렌스 피시번이 촐싹대는 10대 소년병 클린으로 분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현재의 풍채 좋은 모습과 달리 매우 날씬한 모습인데, 엔드 크레딧에도 ‘로렌스 피시번’이 아닌 ‘래리 피시번’으로 등장합니다.
1970년대에 제작된 월남전 영화의 대표작이 마틴 쉰 주연의 ‘지옥의 묵시록’이라면, 1980년대의 월남전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찰리 쉰 주연의 ‘플래툰’을 꼽을 수 있는데, 월남전을 소재로 한 부자의 주연 대물림 영화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입니다. 1993년 작 ‘못말리는 람보’에서는 찰리 쉰이 동남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 대위로 분해 카메오 출연한 마틴 쉰과 부자 대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패러디된 바 있습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와 ‘대부 2’가 미국 내부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외부로 나간 미국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0대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해 거장의 반열에 오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1980년대 이후의 행보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1990년 ‘대부 3’로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고, 1970년대의 전성기를 재현하는 영화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의 조로(早老)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부 - 가부장, 그리고 폭력과 배신
대부 2 - 가족을 잃는 가장
대부 3 - 업으로 가득찬 한 사내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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