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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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 폐허 속 희망을 노래하다

※ 본 포스팅에는 소설 ‘로드’와 영화 ‘더 로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초 개봉된 영화 ‘더 로드’의 원작인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대재앙으로 지구가 종말을 맞아 식인이 판치는 인간성이 파멸된 시대에, 생존을 위해 길에 나선 부자(父子)를 묘사합니다.

서두에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원작 소설에 충실하지만, ‘더 로드’가 헐리우드 영화에 허용된 잔인함의 수위를 넘을 수 없으니 차이점이 분명합니다. 원작 소설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신생아를 그 부모 일행이 살해해 구워 먹으려 했던 부분은 영화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소설 ‘로드’에서 인간성의 파괴를 가장 극명하게 상징하는 장면으로, 소년이 살해된 신생아를 목격하지만, 영화에는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굶주림과 싸우며 아들을 지키면서도 식인만큼은 피하는 사내의 피눈물 어린 노력에 비해, 출산 직후 신생아를 살해해 먹으려한 부부의 행동은, 부모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물으며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영화는 부성애를 부각시킨 가족 영화를 추구했으며, 어지간한 유럽의 논쟁적인 영화감독이 아닌 이상 신생아의 살해 및 식인 준비 장면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영화에서 제외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번개에 맞은 사람이 길 위에 늘러 붙어 죽은 장면이나, 갱단이 식인을 위해 사람들을 가둔 지하실에 대한 소설의 구체적 묘사 역시 영화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반대로 영화에서는 모녀가 추격 끝에 갱단에 살해당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소설에는 이러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글을 통해 독자에게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인식시키는 방법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오히려 상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전개의 차이도 눈에 띕니다. 소설에서는 남자가 좌초된 선박 내부를 샅샅이 뒤지는 장면이 세심하게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소설에서는 베테랑 가족이 부자를 뒤따르는 듯한 암시가 제시되지만 영화에서는 없으며, 영화에서는 남자가 죽음을 맞는 곳이 해변이었지만 소설에서는 숲 속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엔드 크레딧의 음향을 통해 직접적으로 해피 엔딩을 제시하는 영화와 달리, 소설은 소년이 베테랑의 가족과 만난 후, 뜬금없이 송어의 강인한 생명력을 기술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송어가 소년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소년은 폐허 속에서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출하는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소년은 남자로부터 ‘불의 운반’을 계승하는데, 여기서 불을 프로메테우스의 불로 치환하고, 이미 남자와 노인이 소년을 신으로 규정했으니, 소년은 프로메테우스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년이 베테랑 부부의 보호 속에서 성장해 베테랑의 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여는 창시자가 될 것으로 후일담을 짐작하는 것을 결코 억측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설 ‘로드’는 장편이라기보다 중편 소설로 구분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분량이 많지 않으며 문체도 극히 간결합니다. 산문이라기보다 마치 시에 가깝습니다. 인물 간의 대화도 따옴표 없이 제시되며, 접속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는 쉽게 줄줄 읽히는 소설은 결코 아닙니다.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우울하기 짝이 없으며 묘사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당황스러울 정도로 잔혹합니다. 간결한 문체 속에서 행간의 복잡한 의미가 곳곳에 숨겨져 있으며, 단어의 활용이 정제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곱씹어 읽을 수밖에 없도록 유도합니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의식의 흐름을 기술하는 방식을 통해 제시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더 로드’가 개봉된 이후, 일부 평론가들은 원작 소설에 지나치게 빚을 지고 있기에 영화는 평작에 불과하다는 인색한 평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정당한 평가인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문학 작품을 각색한 형편없는 영화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더 로드’는 결코 그 정도의 수준으로 폄하될 작품은 아니며, 영상으로 옮기기에 적절하지 못한 부분을 생략하고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적절한 러닝 타임으로 압축하는 미덕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진부한 캐스팅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 남자로 분했던 비고 모르텐센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뻣뻣한 문체와 암울한 사건으로 점철된 소설 ‘로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 로드 - 진한 부성애, 소년의 성장


덧글

  • 로키 2010/02/16 15:03 #

    소설과 영화 두개다 봤는데요, 역시 영화가 약간 떨어지는거 같긴 합니다. 소설에서의 굶어죽을것 같은 긴박함이 전해져 오지 않는달까요.
  • 세라피타 2010/02/16 17:44 #

    아 소설이 더 무서웠군요. 영화 보면서 내내 두근두근 거렸는데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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