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만화의 아버지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일본 최초의 TV판 연속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아스트로 보이 아톰의 귀환’(이하 ‘아스트로 보이’)은 예상외로 원작에 대한 오마쥬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우선 원작의 배경이 된 메트로 시티와 캐릭터 텐마 박사, 햄에그 단장은 그대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아톰의 원형이 된 소년 토비오의 이름은 미국식인 토비로 바뀌기는 했지만, 원작의 어감이 남았습니다. (끝까지 아톰의 편에 서는 오차노미즈 박사의 이름은 엘리펀으로 바뀌었는데, 국내 방영 당시 그의 큰 코에서 착안해 ‘코주부 박사’로 명명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코끼리(elephant)를 연상시키는 엘리펀(Elefun)의 이름은 낯설지 않습니다.) 아톰의 삐죽한 머리 모양과 큰 눈, 붉은 색 부스터와 비행 포즈, 심지어 엉덩이의 머신 건까지 계승했습니다. 오차노미즈의 친구이자 아톰의 선생인 수염 아저씨뿐만 아니라 테즈카 오사무 월드 최고의 개그 캐릭터 효탄츠기도 두 차례나 등장합니다.
주연에서 조연까지 캐릭터 디자인도 원작에 충실한데, 재미있는 것은 원작의 캐릭터에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이미지를 적절히 혼합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텐마는 원작 캐릭터에 목소리 연기를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실제 모습을, 햄에그는 역시 원작 캐릭터에 목소리 연기를 맡은 네이던 레인의 이미지를 혼합한 캐릭터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서사구조도 원작에 충실합니다. 사망한 아들을 대신하기 위해 제작된 아톰이 아버지에 의해 버려지고, 햄에그의 서커스단에서 고생하다, 메트로 시티의 수호신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봇이 등장하는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이라면 거르지 않고 등장하는, 로봇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차별 문제나 현대 기술 문명의 환경 파괴에 관한 경고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 일본인의 좌절감을 반영한 비극적 요소를 부각시켜 신파의 성격이 강했던 원작과 달리, ‘아스트로 보이’는 헐리우드 작품답게 심각한 신파의 요소는 가볍게 각색했습니다. 후지산을 닮은 메트로 시티의 산이나 최후의 전투 뒤 흩날리는 벚꽃,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한자 간판을 통해, ‘아스트로 보이’가 원작 ‘철완 아톰’ 뿐만 아니라 원작의 고향인 일본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따라서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국내에서는 어린이들보다 ‘우주소년 아톰’을 보고 자란 30대 이상의 성인들의 호응이 나을 듯합니다. 플루토와 아틀라스 등 라이벌이 등장하는 후속편이 제작되어도 위화감이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TV판 애니메이션 3편을 한 자리에서 보는 듯한 93분의 러닝 타임 동안 비교적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시키는 로봇 검투 장면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액션 장면이 많지 않으며, 원작과 비교하며 소소한 디테일을 발견하는데 즐거움을 느낄 팬이 아니라면 전반적으로 밋밋한 것이 사실입니다. 히로인 캐릭터인 코라가 왜 서페이스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없으며, 부모와의 재회도 갑작스런 우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헐리우드에서 실사 영화도 아닌 CG 3D 애니메이션으로의 부활은 매우 이례적인 일임에 분명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에서 착안해 아톰을 창조했는데, 헐리우드에서 홍콩의 스태프를 동원해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과거 테즈카 오사무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황폐화시켰다는 비난에 시달렸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마저 듭니다. ‘아스트로 보이’의 흥행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지만, 차후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헐리우드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는 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본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스톤의 직위 ‘president’를 ‘대통령’이 아닌 ‘총리’로 번역한 자막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고작 수 만 명의 관객도 들지 않을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자막을 ‘윗선’에서 압력을 넣었을 리 없으니, 자막을 번역하는 번역가나 수입사 측에서 ‘알아서 긴’ 것으로 보이는데, 권력 유지에 급급한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겹쳐 보이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톤은 외모도 이명박 대통령과 닮아 보이는데, 세종시 무산(‘수정’이 아니라 ‘무산’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을 둘러싸고 새로 기용한 총리에게 대리전을 떠넘긴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를 비꼬기 위한 고도의 풍자로, ‘대통령’을 ‘총리’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긴 ‘큰일 날 뻔 했어’를 ‘클날 뻔 했어’로 맞춤법을 파괴한 자막을 보면, 고도의 풍자는커녕 번역가의 기본적 자질마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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