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에 이르는 ‘은하철도 999’의 기나긴 여정은 999호의 출발점인 지구의 거대도시 메갈로폴리스로부터 출발합니다. 서기 2221년, 인류는 기계몸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부자들과 유한한 생명에 속박된 가난한 이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메갈로폴리스 외곽의 빈민가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1년에 한 차례 안드로메다(인터넷 유행어로 ‘안드로(메다)로 가다’라는 말이 있는데, ‘매우 먼 곳으로 가다’라는 의미로부터 파생되어 ‘어처구니없는 언행을 하다’라는 의미로 정착되었습니다. 천문 용어인 ‘안드로메다’가 친숙해진 원인은 바로 ‘은하철도 999’가 아닌가 싶습니다.)를 향해 출발하는 999호의 종점에는 기계몸을 무료로 제공하는 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테츠로는 어머니 카나에와 함께 기계몸을 얻을 수 있는 999호를 선망하며 메갈로폴리스로 향합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냥해 박제로 만드는 것을 취미로 하는 기계 백작의 습격으로 테츠로는 어머니를 잃습니다. 어머니는 테츠로에게 목걸이를 유품으로 남기는데, 이는 엔드 크레딧의 이미지로 활용됩니다.
‘은하철도 999’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철저한 디스토피아입니다. 자본의 유무에 의해 인간을 규정하는 극단적인 계급 사회로, 부를 보유하지 못하면 기계몸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 999’의 원작 만화를 잡지 ‘소년 킹’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며, 애니메이션화된 것은 이듬해인 1978년입니다. 당시 일본은 고도 성장기의 막바지에 달하며, 외형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지만, 실상은 소위 ‘버블 경제’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빈부격차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이 같은 일본 사회의 문제를 ‘은하철도 999’에서 정면으로 파헤친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몸을 갈구한다는 것은 물신주의의 극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최근의 애니메이션에서도 인간과 기계의 육체적 융합을 다루는 것을 보면, 30여 년 전 마츠모토 레이지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시청률과 광고를 담보로 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인 ‘은하철도 999’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물신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유심론입니다. 테츠로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소년으로, 무수한 악인과 조우하고 숱한 고난에 봉착해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여정에서 만난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메텔의 선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선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 의식의 ‘은하철도 999’는 기본적으로 신파의 정서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은하철도 999’는 신파 못지않게 하드보일드의 색채도 강한 작품입니다. 메텔에 의해 허허벌판에서 동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테츠로는, 메텔의 총을 든 채 복수를 위해 기계 백작의 집으로 향합니다. 메텔은 자신의 총을 가져가는 테츠로를 막지 않으며, 기계 백작의 집의 위치도 가르쳐주는데, 10세 소년의 복수극을 방조 및 묵인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테츠로는 무법 상태의 우주를 여행하며, 수많은 악인들과 총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메텔은 첫 등장에서부터 검은 상복을 연상시키는 실내복 원피스 차림인데, 그녀의 상징이 된 상복은, 자신과 함께 여행했다 어머니 프로메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소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테츠로는 메텔의 독특한 복장의 의미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1980년대 초반 국내 방영 당시, 메텔의 정체가 테츠로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본판에서는 메텔의 성우가 이케다 마사코이고, 카나에의 성우는 츠보이 아키코이니, 처음부터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한 것입니다. 메텔과 카나에가 닮기는 했지만, 사실 ‘은하철도 999’를 비롯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미녀 캐릭터는 이후 등장하는 게스트 캐릭터들까지 모두 메텔과 닮았습니다. 하나같이 바람이 불면 부러질 듯 가느다란 몸매에, 길쭉한 얼굴과 긴 생머리, 그리고 찢어진 듯한 긴 눈을 빼다 박았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dvd 박스 제2권 북클릿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조상인 여성과 닮게 그린 것이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메텔과 카나에가 닮은 것은, 테츠로가 메텔에게 모성애를 느끼며 쉽게 가까워지기 위한 설정의 측면도 있지만, 마츠모토 레이지의 캐릭터 디자인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제작진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입니다. 카나에의 불쌍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엉덩이를 비롯한 뒷모습 누드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는 기계 백작의 야만성과 테츠로의 잔혹한 운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기계몸을 얻기 위해 과로사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잃은 테츠로는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었습니다.
기계 백작은 카나에의 아름다운 육체를 박제로 만든다며 들뜨지만, 테츠로의 습격으로 부하들과 함께 완전히 파괴됩니다. 기계 백작은 재생을 위해 뇌는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구걸하지만, 테츠로는 개머리판으로 뇌를 박살냅니다. TV판 제1화로부터 11개월 뒤에 개봉된 동명의 극장판에서 기계 백작은 지구에서 테츠로에게 복수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의 성주로 설정이 변경됩니다. (TV판에서 시간성의 성주는 가짜 하록입니다.) 한편 기계 백작의 부하B의 성우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기렌 자비로 분했던 다나카 다카시로, 현재는 긴가 반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나카 다카시는 메텔의 아버지 닥터 반 역을 맡아 이번 화부터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테츠로가 메텔의 총으로 기계 백작 일당을 살해하기 전까지 총을 잡아본 적이 없을 텐데,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백발백중의 솜씨를 과시한다는 것입니다. 제3화 ‘타이탄의 잠든 전사’에서 노파로부터 받는 전사의 총, 즉 코스모드라군에 어울리는 명사수의 자질을 타고 난 셈입니다.
기계 백작에 복수하고 집을 불태운 테츠로는 경찰에 쫓기며 기계몸으로 된 경찰견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다시 메텔의 도움을 얻습니다. 드디어 메텔은 자신의 상징인 검정색 모피 코트와 모자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금발의 러시아 미녀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옷차림입니다. 이 차림은 눈발이 휘날리는 배경과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메텔은 전기 쇼크를 유발하는 채찍을 유유히 휘두르며 경찰견을 격퇴하는데, 뭇 남성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무기입니다. 이후에도 메텔은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선보입니다.
테츠로와 메텔은 자정에 출발하는 999호의 탑승을 앞두고 메갈로폴리스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테츠로는 샤워 중인 메텔이 어떤 남자와 통화하는 것을 엿듣고 욕실의 문을 열지만 메텔 이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엔드 크레딧에도 명시되지 않는 이 의문의 사나이는 후에 메텔의 아버지 닥터 반임이 밝혀지게 됩니다. 차후 자주 등장하게 될 눈요깃거리인 메텔의 샤워 장면이 제1화부터 등장했습니다. 경찰의 검문으로 다시 위기에 빠지는 테츠로이지만, 강렬한 섬광을 발하는 메텔의 귀고리로 위기에서 벗어나 메갈로폴리스 중앙역으로 향합니다. 테츠로는 이번 화에서만 메텔에 의해 세 번 구출되었습니다. 메갈로폴리스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패트롤카와 택시는 역시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의 ‘우주전함 야마토’의 메카닉 디자인을 연상시킵니다.
메갈로폴리스 중앙역에 도착한 테츠로와 메텔은 높고 긴 계단을 올라 99번 플랫폼에서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호에 탑승합니다. 99번 플랫폼으로 향하는 높고 긴 계단은 우주로 떠나는 여행을 상징하는 상승의 의미입니다. 메텔은 999호가 최신의 열차임에도 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과거의 증기기관차를 본 딴 것이라 언급하는데, 다른 모든 것은 최신식일지 몰라도, 접히지도 않는 90도 각도의 완행열차 방식의 999호의 객차 의자만큼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테츠로는 하늘로 향한 철로가 끊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메텔은 선로가 정거장에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하철도 999’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철도에 대한 일본인의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철도 모형에서 실차에서 사용된 행선지 간판까지 철도 관련 물품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철도 마니아의 천국으로, 지금도 도쿄 시내의 전철역에서 열차의 형식 번호를 확인하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철도 마니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철도의 초창기를 장식했던 증기기관차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이 두드러지는데, 1948년부터 제조되어 실존했던 국철의 C62형 증기기관차를 서기 23세기의 최신형 기관차의 디자인으로 설정한 것을 보면(참고로 TV판 999호의 형식 번호 C6250은 실존하지 않는 차량으로, C62형은 49호까지만 제조되었습니다. 극장판의 999호인 C6248은 실존했던 차량입니다.), 일본인의 철도에 관한 애착은, 광적인 집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행기나 배가 아닌, 증기기관차가 우주여행을 가능케 하는 교통 기관이라는 발상은, 기차가 지닌 독특한 정서로 인해 강한 페이소스를 자극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인간이 기계몸을 얻고, 기차로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이며, 빈부격차가 심한 시대라는 것 이외에 굳이 알아야 하는 복잡한 설정은 없습니다. 메텔의 정체에 얽힌 비밀이 흥밋거리이기는 하지만, 결코 주제 의식을 잠식할 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며, 오타쿠들의 안주거리에 불과합니다. ‘은하철도 999’는 매 화 완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즐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1979년 작 ‘기동전사 건담’ 이래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은 극심한 설정 놀음에 함몰되어 왔습니다. 최근의 건담 시리즈를 비롯한 SF 애니메이션들은 정교한 세계관 설정의 정립에 광분한 나머지, 정작 인간 드라마는 알맹이가 없는 매너리즘에 빠진 작품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애니메이션 역시 ‘사람의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은하철도 999’는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지녀야만 하는 ‘이야기의 원점’이라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는 테츠로의 울음소리와 같은 기적 소리를 울리며 999호는 긴 여정을 출발합니다. 제3의 주인공 차장은 이번 화에서 아이캐치에서만 등장할 뿐 본편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 차장의 성우 기모츠키 카네타는 호텔을 검문한 기계 경찰과 다음 편 예고 내레이터로 목소리를 선보였습니다. 본편 내레이션을 다카기 히토시가 담당했음에도, 다음 편 예고 내레이션을 기모츠키 카네타가 맡은 것은 이례적인 배정인데, ‘은하철도 999’의 다음 정차역을 차장을 통해 알린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매우 적절한 캐스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은하철도 999’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철저한 디스토피아입니다. 자본의 유무에 의해 인간을 규정하는 극단적인 계급 사회로, 부를 보유하지 못하면 기계몸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 999’의 원작 만화를 잡지 ‘소년 킹’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며, 애니메이션화된 것은 이듬해인 1978년입니다. 당시 일본은 고도 성장기의 막바지에 달하며, 외형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지만, 실상은 소위 ‘버블 경제’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빈부격차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이 같은 일본 사회의 문제를 ‘은하철도 999’에서 정면으로 파헤친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몸을 갈구한다는 것은 물신주의의 극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최근의 애니메이션에서도 인간과 기계의 육체적 융합을 다루는 것을 보면, 30여 년 전 마츠모토 레이지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시청률과 광고를 담보로 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인 ‘은하철도 999’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물신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유심론입니다. 테츠로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소년으로, 무수한 악인과 조우하고 숱한 고난에 봉착해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여정에서 만난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메텔의 선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선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 의식의 ‘은하철도 999’는 기본적으로 신파의 정서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은하철도 999’는 신파 못지않게 하드보일드의 색채도 강한 작품입니다. 메텔에 의해 허허벌판에서 동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테츠로는, 메텔의 총을 든 채 복수를 위해 기계 백작의 집으로 향합니다. 메텔은 자신의 총을 가져가는 테츠로를 막지 않으며, 기계 백작의 집의 위치도 가르쳐주는데, 10세 소년의 복수극을 방조 및 묵인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테츠로는 무법 상태의 우주를 여행하며, 수많은 악인들과 총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메텔은 첫 등장에서부터 검은 상복을 연상시키는 실내복 원피스 차림인데, 그녀의 상징이 된 상복은, 자신과 함께 여행했다 어머니 프로메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소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테츠로는 메텔의 독특한 복장의 의미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1980년대 초반 국내 방영 당시, 메텔의 정체가 테츠로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본판에서는 메텔의 성우가 이케다 마사코이고, 카나에의 성우는 츠보이 아키코이니, 처음부터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한 것입니다. 메텔과 카나에가 닮기는 했지만, 사실 ‘은하철도 999’를 비롯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미녀 캐릭터는 이후 등장하는 게스트 캐릭터들까지 모두 메텔과 닮았습니다. 하나같이 바람이 불면 부러질 듯 가느다란 몸매에, 길쭉한 얼굴과 긴 생머리, 그리고 찢어진 듯한 긴 눈을 빼다 박았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dvd 박스 제2권 북클릿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조상인 여성과 닮게 그린 것이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메텔과 카나에가 닮은 것은, 테츠로가 메텔에게 모성애를 느끼며 쉽게 가까워지기 위한 설정의 측면도 있지만, 마츠모토 레이지의 캐릭터 디자인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제작진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입니다. 카나에의 불쌍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엉덩이를 비롯한 뒷모습 누드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는 기계 백작의 야만성과 테츠로의 잔혹한 운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기계몸을 얻기 위해 과로사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잃은 테츠로는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었습니다.
기계 백작은 카나에의 아름다운 육체를 박제로 만든다며 들뜨지만, 테츠로의 습격으로 부하들과 함께 완전히 파괴됩니다. 기계 백작은 재생을 위해 뇌는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구걸하지만, 테츠로는 개머리판으로 뇌를 박살냅니다. TV판 제1화로부터 11개월 뒤에 개봉된 동명의 극장판에서 기계 백작은 지구에서 테츠로에게 복수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의 성주로 설정이 변경됩니다. (TV판에서 시간성의 성주는 가짜 하록입니다.) 한편 기계 백작의 부하B의 성우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기렌 자비로 분했던 다나카 다카시로, 현재는 긴가 반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나카 다카시는 메텔의 아버지 닥터 반 역을 맡아 이번 화부터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테츠로가 메텔의 총으로 기계 백작 일당을 살해하기 전까지 총을 잡아본 적이 없을 텐데,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백발백중의 솜씨를 과시한다는 것입니다. 제3화 ‘타이탄의 잠든 전사’에서 노파로부터 받는 전사의 총, 즉 코스모드라군에 어울리는 명사수의 자질을 타고 난 셈입니다.
기계 백작에 복수하고 집을 불태운 테츠로는 경찰에 쫓기며 기계몸으로 된 경찰견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다시 메텔의 도움을 얻습니다. 드디어 메텔은 자신의 상징인 검정색 모피 코트와 모자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금발의 러시아 미녀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옷차림입니다. 이 차림은 눈발이 휘날리는 배경과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메텔은 전기 쇼크를 유발하는 채찍을 유유히 휘두르며 경찰견을 격퇴하는데, 뭇 남성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무기입니다. 이후에도 메텔은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선보입니다.
테츠로와 메텔은 자정에 출발하는 999호의 탑승을 앞두고 메갈로폴리스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테츠로는 샤워 중인 메텔이 어떤 남자와 통화하는 것을 엿듣고 욕실의 문을 열지만 메텔 이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엔드 크레딧에도 명시되지 않는 이 의문의 사나이는 후에 메텔의 아버지 닥터 반임이 밝혀지게 됩니다. 차후 자주 등장하게 될 눈요깃거리인 메텔의 샤워 장면이 제1화부터 등장했습니다. 경찰의 검문으로 다시 위기에 빠지는 테츠로이지만, 강렬한 섬광을 발하는 메텔의 귀고리로 위기에서 벗어나 메갈로폴리스 중앙역으로 향합니다. 테츠로는 이번 화에서만 메텔에 의해 세 번 구출되었습니다. 메갈로폴리스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패트롤카와 택시는 역시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의 ‘우주전함 야마토’의 메카닉 디자인을 연상시킵니다.
메갈로폴리스 중앙역에 도착한 테츠로와 메텔은 높고 긴 계단을 올라 99번 플랫폼에서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호에 탑승합니다. 99번 플랫폼으로 향하는 높고 긴 계단은 우주로 떠나는 여행을 상징하는 상승의 의미입니다. 메텔은 999호가 최신의 열차임에도 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과거의 증기기관차를 본 딴 것이라 언급하는데, 다른 모든 것은 최신식일지 몰라도, 접히지도 않는 90도 각도의 완행열차 방식의 999호의 객차 의자만큼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테츠로는 하늘로 향한 철로가 끊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메텔은 선로가 정거장에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하철도 999’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철도에 대한 일본인의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철도 모형에서 실차에서 사용된 행선지 간판까지 철도 관련 물품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철도 마니아의 천국으로, 지금도 도쿄 시내의 전철역에서 열차의 형식 번호를 확인하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철도 마니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철도의 초창기를 장식했던 증기기관차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이 두드러지는데, 1948년부터 제조되어 실존했던 국철의 C62형 증기기관차를 서기 23세기의 최신형 기관차의 디자인으로 설정한 것을 보면(참고로 TV판 999호의 형식 번호 C6250은 실존하지 않는 차량으로, C62형은 49호까지만 제조되었습니다. 극장판의 999호인 C6248은 실존했던 차량입니다.), 일본인의 철도에 관한 애착은, 광적인 집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행기나 배가 아닌, 증기기관차가 우주여행을 가능케 하는 교통 기관이라는 발상은, 기차가 지닌 독특한 정서로 인해 강한 페이소스를 자극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인간이 기계몸을 얻고, 기차로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이며, 빈부격차가 심한 시대라는 것 이외에 굳이 알아야 하는 복잡한 설정은 없습니다. 메텔의 정체에 얽힌 비밀이 흥밋거리이기는 하지만, 결코 주제 의식을 잠식할 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며, 오타쿠들의 안주거리에 불과합니다. ‘은하철도 999’는 매 화 완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즐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1979년 작 ‘기동전사 건담’ 이래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은 극심한 설정 놀음에 함몰되어 왔습니다. 최근의 건담 시리즈를 비롯한 SF 애니메이션들은 정교한 세계관 설정의 정립에 광분한 나머지, 정작 인간 드라마는 알맹이가 없는 매너리즘에 빠진 작품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애니메이션 역시 ‘사람의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은하철도 999’는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지녀야만 하는 ‘이야기의 원점’이라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는 테츠로의 울음소리와 같은 기적 소리를 울리며 999호는 긴 여정을 출발합니다. 제3의 주인공 차장은 이번 화에서 아이캐치에서만 등장할 뿐 본편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 차장의 성우 기모츠키 카네타는 호텔을 검문한 기계 경찰과 다음 편 예고 내레이터로 목소리를 선보였습니다. 본편 내레이션을 다카기 히토시가 담당했음에도, 다음 편 예고 내레이션을 기모츠키 카네타가 맡은 것은 이례적인 배정인데, ‘은하철도 999’의 다음 정차역을 차장을 통해 알린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매우 적절한 캐스팅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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