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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일곱 기둥 2 - 로렌스, 성공과 실패의 교차점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 T. E.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 제2권은 로렌스가 아랍군을 이끌고 아카바 원정에 성공하지만, 야르무크 철교 폭파에 실패하고, 데라에서 터키군에 체포되어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기까지의 변화무쌍한 역정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아카바 원정에서 사막을 횡단하는 여정 자체가 고난이었으며 터키군과의 교전은 없었던 것으로 묘사하지만, 자서전에서는 여정 자체가 크나큰 고난이었음은 물론, 수차례의 교전으로 그 고난이 가중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행군 도중 낙타에서 떨어져 낙오한 가심을 구하기 위해 로렌스가 왔던 길을 홀로 되돌아간 에피소드는 영화와 자서전이 동일합니다. 하지만 가심이 다른 부족민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로렌스에 의해 처형당하는 영화와 달리, 자서전에서는 로렌스에 의한 처형은 이미 제1권에서 다뤄졌으며 처형당한 사람도 가심이 아닙니다. 영화는 자서전에 언급된 사건의 대상 인물과 전후관계를 바꾸며 재구성해 극적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영화에서 로렌스의 하인이 되기를 자청했던 파라즈와 다우드도 제2권 초반부에 등장합니다. 이들이 장난기가 많은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영화와 자서전이 동일하나, 두 사람이 부랑아 소년으로 묘사되었던 영화와 달리, 자서전에서는 행동이 불량하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아랍의 군인이었으며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서술됩니다. 영화에서는 파라즈와 다우드가 각각 우연하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자서전 제2권에서는 아직 이들의 죽음은 다뤄지지 않습니다.

제2권에서 원정에 동참하지 않고 웨지에 머무는 파이잘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로렌스에 의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아우다와 알리입니다. 영화에서 안소니 퀸이 분했던 아우다는 아카바 원정에 동행해 전반부를 장식하며, 오마 샤리프가 분했던 알리는 아카바 원정 이후 게릴라 작전에 참여해 후반부를 장식합니다. 이미 제1권 후반부에 등장해 직선적이며 속물스런 개성을 뽐냈던 아우다와 달리, 알리는 외양과 품행 모두 완벽에 가까운, 기품 넘치며 용맹스런 전사로 묘사됩니다. 검정색 옷으로 상하의를 통일해 입었다는 자서전에서의 알리의 묘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등, 로렌스의 필체로 전해지는 아우다와 알리의 모습은 영화 속 이미지와 정확하게 부합되어, 캐스팅된 두 대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절감하게 합니다.

아카바 원정 이후 야르무크 철교 폭파 작전이 실패한 후, 아즈라크의 철도 폭파에 성공하지만 로렌스는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후 우울증에 시달린 로렌스는 민간인을 가장해 데라에 정찰을 나갔다 체포되어, 터키 총독의 하룻밤 상대가 되는 것을 거부해 고문을 당한 후 버려지는데, 자서전의 술회는 영화에 묘사된 것과 흡사하지만, 정찰의 동행자가 영화에서는 알리였던 반면, 자서전에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파리스입니다. 로렌스는 터키 총독의 섹스 강요를 거부하고, 지독한 구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신분을 숨기며, 석방된 이후에도 동료들에게 자신이 고문당했던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데, 자서전에 언급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로렌스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임에 분명합니다. 아마도 로렌스의 강인한 정신력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아랍 독립 운동을 일궈내겠다는 끝 모를 자부심과 집념의 발로로 보입니다. 철두철미한 로렌스의 성격은 터키군의 이동과 배치 상황까지 한눈에 꿰뚫어볼 정도입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무기 전문가인 두 명의 영국군 하사관이 로렌스의 게릴라 작전에 자원하여 참여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본명보다는 그들이 전문적으로 다룬 무기의 이름을 따 루이스와 스토크스로 불리는데, 사막에서의 작전과 행군에 처음 참여하고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생환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2권까지의 여정 중 가장 아름다운 와디 룸의 풍광과 더불어, 아랍의 음식 문화에 완전히 적응한 로렌스의 음식에 관한 기술 또한 인상적입니다. 계층별로 구분된 양고기 식사 자리에서 맨 손으로 뜨거운 고기를 뜯어 먹는다든가, 인원수보다 적은 한정된 잔으로 커피를 나눠 마신다든가, 행군 도중 사막에서 밀가루로 빵을 굽는 장면은,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입니다.

제2권에서도 로렌스는 자신과 주변 인물뿐만 아니라 아군과 터키군에 이르기까지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는데, 특히 자신이 아랍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나선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랍인의 생명을 담보로 영국의 국익을 신장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극심한 자아분열에 시달립니다. 이 같은 자아분열은 전장에서의 고통과 승리의 쾌감을 통해서만 잊을 수 있는 것이었으며, 로렌스는 자신이 전쟁을 취미처럼 즐기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르무크 철교 폭파 실패 이후 아즈라크의 성채에 머물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이, 나들이처럼 여겼던 데라에의 정찰로 이어졌고, 이것이 체포와 고문으로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혜의 일곱 기둥 1 - 로렌스, 아랍 여정의 시작

아라비아의 로렌스 - 사막의 신(神)이었던 사나이

덧글

  • 이준님 2009/12/28 09:24 #

    여담이지만 2차 대전 버마 전선을 다룬 모 서적에서 영국이 제 3세계 국가와 전쟁때 항상 등장하는 괴짜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 예로 든 사람이 바로 로렌스입니다. 정말로 "괴짜"라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흔히 "낙타들의 오페라"라고 껍질뿐인 대작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가 일부의 극적인 변형을 제외하고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는것이 놀랍습니다. 정말로 대감독의 대작답네요. ^^
  • oIHLo 2009/12/28 11:01 #

    전쟁터에 검을 들고 나가신 하이랜더(!) 장교도 있고... 정말 영국이라는 나라엔 뭔가 있나 봅니다 ㅠ
  • 이준님 2009/12/28 09:26 #

    추가: 영화에서 동성애자 터키 장교가 데이빗 린치의 "듄"에서 노황제로 나오더군요. ^^;;;
  • rainkeeper 2009/12/28 10:59 #

    잘 읽고 있습니다.

    이준님 / 듄 원작이 로렌스에게 받은 직접적인 영향들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캐스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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