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는, 추리 소설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이면서도 의외로 영화화가 드물었던 아서 코난 도일의 동명의 명탐정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셜록 홈즈가 약물에 의존했음을 감안하면, 영국인인 홈즈로 뉴욕 태생이지만 약물 중독에 시달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언맨’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약물 복용 전력을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이미지로 활용한 바 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쉽게도 홈즈의 상징인 헌팅 캡과 케이프 코트를 착용하지 않으나, 대신 입가에서 떼지 않는 파이프 담배만큼은 잊지 않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도 동성애 관계로 의심받았던 왓슨과의 끈끈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유머 감각을 살려 연출해, 역시 원작에서 빌어온 홈즈의 과거의 인연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 분)과 왓슨의 약혼녀 메리(켈리 레일리 분)와 함께 실질적인 사각 관계를 형성합니다. 언제나 한 발 늦게 나타나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에디 마산 분)과 베이커 가 221B의 안주인 허드슨 부인(제랄딘 제임스 분)도 건재합니다. 홈즈가 활약했던 19세기 후반 회색 도시 런던의 템즈 강 유역, 웨스트민스터와 빅벤, 그리고 건설 중인 타워 브리지의 모습은 원작의 팬들에게는 반가울 것입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정통 추리극이라고 하기에는 스릴러적 요소가 취약합니다. 삽입된 한 두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관객이 홈즈와 두뇌 싸움을 벌이기는 쉽지 않으며, 반전이 강렬한 것도 아닙니다. ‘홈즈’하면 떠오르는 지적인 추리극의 분위기는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나 어드벤처 영화로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런던 시내를 배경으로 밀교 집단을 추적하는 홈즈의 수사 과정이 큰 스케일의 액션을 수반하기는 어려우며, 어드벤처라고 하기에는 홈즈의 지적이며 육체적인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한 긴장과 위기를 자아내지 못합니다.
결국 ‘셜록 홈즈’는 일찌감치 제작이 결정된 후속편의 예고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그칩니다. 이름만 알 뿐 실제로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을 읽은 사람이 드문 시대에, 홈즈와 주변 인물에 대한 스키마를 환기시키고, 원작에서 홈즈를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아넣은 바 있는 최대 라이벌 ‘그’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그’와의 대결을 후속편으로 미룹니다. 결국 ‘셜록 홈즈’는 원작의 팬들을 위한 충실한 정통 추리극 보다는 팬 픽션(동인지)에 가까우며, 블록버스터도, 액션 영화도, 그렇다고 어드벤처 영화도 되지 못한 채 그 사이 어정쩡한 어느 지점에 불시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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