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 게리 그레이 감독의 ‘모범시민’은 매우 역설적인 제목의 영화입니다. 주인공 클라이드는 복수심에 불타 계획적이고 잔혹한 연쇄 살인을 자행하기에, 그가 ‘모범시민’이라 자칭한 것은 아이러니컬한 것입니다. 사법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가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않자, 클라이드는 사법 제도의 허점을 역이용하며 복수극을 계획하는데, 이 같은 발상은 영화적으로 기발한 것입니다. 두 범죄자를 지능적이면서도 참혹하게 살해하는 초반부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복수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클라이드 본인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복수 그 자체를 위해 관련된 모든 이를 살해하는 것이 목적인지, 그렇지 않으면 닉에게 교훈을 주려는 것인지 모호합니다. 닉의 캐릭터 또한 애매합니다. 출세욕에 불타는 속물 검사인지, 주관이 뚜렷한 정의의 실현자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닉의 성격이 입체적인 것도 아닙니다. 각본이 캐릭터를 정립하는데 실패하자 제이미 폭스의 연기조차 뻣뻣합니다. 따라서 관객이 닉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클라이드의 기상천외한 복수극이 계속되며, 폭력의 수위는 점차 강화되는데, 그와 더불어 서사구조는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서사구조의 유기성은 완전히 사라지며, 클라이드의 ‘공범’의 실체는 감독과 각본가의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 선택되었음이 판명됩니다.
결국 기발한 아이디어와 허술한 서사구조의 잘못된 만남은 갈 곳을 찾지 못하다 헐리우드식 해피 엔딩과 권선징악으로 수습되는데 그칩니다. 사적 복수와 자력 구제에서 비롯되는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사회적이나 윤리적으로 파고들려는 지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모범시민’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킬링 타임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군더더기도 거의 없고 러닝 타임도 109분으로 적절합니다. 하지만 예고편이 제공했던 기대를, 카리스마 넘치는 제라드 버틀러와 연기력이 보장된 제이미 폭스를 캐스팅하고도 각본의 허술함으로 인해 충족시키지 못한 점에서 아쉽습니다.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