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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 묻히기 아까운 수작 SF 스릴러 영화

※ 본 포스팅에는 ‘더 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너지를 지구에 공급하는 달 기지에서 3년간 홀로 임무를 수행한 샘(샘 록웰 분)은 유일한 말벗인 고성능 컴퓨터 거티(목소리 케빈 스페이시)에 의존하며, 아내와 어린 딸과의 재회를 고대합니다. 지구로의 귀환을 2주 앞둔 어느 날 환각에 이끌려 사고를 당한 이후, 샘에게 기묘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던컨 존스 감독의 ‘더 문’은 그냥 묻히기 아까운 수작 SF 스릴러입니다. 평소 개봉 영화들의 리스트를 뽑아놓고 관람 여부를 결정하는데, ‘더 문’을 일찌감치 리스트에서 제외시킨 ‘뉴 문’으로 착각하면서, 하마터면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뻔 했습니다. 애당초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겠지만, 유사한 제목의 오락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걸어놓고,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홍보를 게을리 한 영화사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습니다.

‘더 문’은 SF 영화의 클리셰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 난 근미래가 시간적 배경이며, 마지막 탐사 이후 무려 4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이전의 탐사조차 허위가 아닌지 음모론이 제기되는 달이 공간적 배경으로, 달 기지와 월면차의 등장은 필연적입니다. 주인공은 인권보다 이윤 창출에 매진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인간과의 대화와 자체적인 사고가 가능한 고성능 컴퓨터도 등장하는데, 컴퓨터가 주인공에 진실로 우호적인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주인공을 빼닮은 클론도 빼놓을 수 없으며, 클론의 등장으로 주인공이 위협받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기억과 자아 정체성이 그 인간의 고유한 개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새로운 설정은 아닙니다. ‘더 문’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솔라리스’,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등 고전으로 군림하는 SF 영화들의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문’을 수작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는 클리셰적 요소들을 버무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더 문’의 근간은 ‘시지프스의 신화’로, 거대한 기계의 일개 나사처럼 대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 끝없는 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강한 페이소스를 자아냅니다. 소외된 노동자의 탈출구는 계급적 연대 밖에 없습니다. ‘더 문’은 기존의 SF 영화의 클리셰들을 과감히 전복시키는 반란을 꾀합니다. 고성능 컴퓨터와 클론이,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을 배신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었던 기존의 SF 영화들과 달리, 샘은 클론과 거티와 연대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샘과 거티와의 관계를 ‘연대’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모니터에 등장하는 단순한 이모티콘이 매우 솔직하게 거티의 인격과 감정을 노출하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을 돕기 때문입니다. 인격을 지닌 기계 역시 노동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대자본에 이용당하는 처지인 샘의 두 클론과 거티의 연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노동 계급의 연대라 할 수 있습니다. 결말에서, 먼저 등장한 샘이 죽음을 맞고 그를 대신해 그의 클론이 그토록 원하던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불교적 의미의 환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CG 시각 효과의 남발과 얄팍한 공포 분위기, 그리고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뻔한 반전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한다는 점에서도 ‘더 문’은 훌륭합니다. 저예산의 극복을 위한 것이겠지만, 디테일이 중시되는 클로즈업보다 원경으로 제시되는 황량한 달의 풍경은 샘의 외로움을 더 하며, 관객 놀라게 하기나 유혈이 낭자한 참극은 배제됩니다. 주인공의 정체성을 두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게임을 지양하고 일찌감치 클론임을 밝히며 우직하게 내러티브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덕분에 97분의 러닝 타임 동안 군더더기는 거의 없습니다.

실속 있는 내러티브를 뒷받침하는 샘 록웰의 섬세한 1인 2역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먼저 등장한 샘이 소심하고 인간적인 반면, 나중에 등장한 샘은 활동적이며 냉소적인데, 관객이 헷갈리지 않도록 둘의 차이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단지 목소리로만 등장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감정과 표정을 불어넣은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극중에서 곳곳에 한글로 표기된 기지 이름 ‘사랑’은 매우 독특한 정서를 자아냅니다.


덧글

  • 까악이 2009/12/05 11:20 #

    그리고 극중 마지막에 3년 계약직인 이유가 나오더군요.
  • 잠본이 2009/12/05 12:32 #

    인간이란 과연 뭔가 다시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릴러라고 하기엔 좀 미묘한게 OTL
  • 평등7-2521 2009/12/05 13:36 #

    ...............저도 아무리 봐도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좀...
    휴먼(클론...)드라마쯤 될까요...
  • dcdc 2009/12/05 12:42 #

    샘 록웰은 정말 멋진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 SDPotter 2009/12/05 14:23 #

    저도 올해의 묻혀선 안될 영화로 이 영화를 꼽고싶네요
  • 네코군 2009/12/05 16:56 #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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