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에는 ‘201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2년 지각 대격변으로 인한 지구 종말을 묘사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는 성서에 기초한 재난영화로, 노아의 방주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인류 중 선발된 인원과 동물, 그리고 예술품이 소수의 거대함선, ‘방주’(Ark)에 몸을 싣고 생존을 모색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주인공 잭슨(존 쿠삭 분)의 아들 이름이 ‘노아’(리암 제임스 분)인 것은 매우 노골적인 상징입니다.
예고편을 통해 LA가 지진으로 괴멸하는 것을 모두 공개한 것은, 그것이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지진이 애피타이저였으니, 이후부터는 재난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나열됩니다. 화산 폭발, 쓰나미, 극한의 한파와 같은 자연재해에, 건물 붕괴, 화재, 항공 사고, 유람선 침몰과 같은 인재(人災)가 결합되더니, 마지막에는 대형 선박 침수 사고로 수렴됩니다. ‘볼케이노’, ‘단테스 피크’, ‘투모로우’, ‘타워링’, ‘에어포트’를 거쳐,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이타닉’까지 수많은 재난 영화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듯합니다. 엄청난 스케일의 CG의 퀄리티가 돋보이는 ‘2012’가 업그레이드된 재난을 과시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157분의 러닝 타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방주가 등장한 이후부터의 장면은 뻔한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군더더기와 같습니다. 마지막 30분을 편집해 120분 정도로 압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간 중간 삽입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파극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는 우정, 개인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구원, 끝까지 인류애를 포기하지 않는 과학자, 담담히 최후를 맞이하는 성직자 등을 묘사하는 군상극은, 재난 스펙타클 사이에서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최루성 멜로로 가득합니다. 초반 30분만 봐도 살아남을 사람과 죽을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하기 위한 방해물인 아내의 동거남이나 거부(巨富)를 주체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업가는 처음부터 죽음이 예고된 것이며, 반대로 죽음을 선택한 자의 자식들과 어린이들은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구 멸망의 순간 살아남아야할 사람과 죽어야할 사람을 이처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2012’의 윤리적 고뇌가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관객은 스펙타클을 즐기러 극장을 찾은 것이지 윤리학 강의를 수강하러 온 것은 아니기에 아쉬움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힘겨운 일상에 찌든 대부분의 관객은 지긋지긋한 세상이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며, 파멸에 대한 죄의식적 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고질라’도 재난 영화적 성격이 강했지만, 근본적으로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 영화는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그리고 ‘2012’의 삼부작으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선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자 그들의 우두머리인 미국 대통령을 위한 영화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전투기 F18 호넷에 탑승해 UFO와 공중전을 벌였고, ‘투모로우’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유고로 취임해 멕시코에 자비를 구한 바 있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국 대통령은, ‘2012’에서는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치지 않고 희생자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극중에 묘사되는 미국 정부의 음흉한 음모를 대통령의 목숨으로 갈음하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멋진 최후를 위한 도구가, 무의미한 지진이나 쓰나미, 한파가 아니라 항공모함 존 F 케네디라는 점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인 조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자존심을 세우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구원이 중국에 빚지고 있고, 주인공 잭슨 일가도 중국인의 도움을 받으며, 미국 대통령과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는 과학자가 흑인이고 인류의 신천지가 아프리카라는 설정은 오바마 시대를 영악하게 반영함과 동시에, 전세계 시장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정치적, 인종적 편향성에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극중에서 불분명한 영어 발음에 의존하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패러디입니다.
‘2012’의 캐스팅은 의외로 화려합니다. 존 쿠삭, 대니 글로버, 아만다 피트, 우디 해럴슨, 탠디 뉴튼과 같이 낯익은 배우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스펙타클에 가렸듯이, ‘2012’의 수많은 배우들도 거대한 CG 스펙타클에 함몰됩니다. ‘2012’와 같은 대형 재난 영화에 유명 배우들이 대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도 흥행에 별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재난 스펙타클을 제외하면 오히려 배우들보다 바이오 노트북, PSP, 에릭슨 휴대폰 등 제작사 소니 콜롬비아의 계열사 제품들의 PPL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CG 기술의 발달로 구현 불가능한 스펙타클이 사라지면서, 지구가 멸망하는 재난영화도 스크린에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비대화되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 영화의 소재는 우주의 종말만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디로 피난할까요.
투모로우 - 독립 기념일에 미국 대통령, 얼어죽다

예고편을 통해 LA가 지진으로 괴멸하는 것을 모두 공개한 것은, 그것이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지진이 애피타이저였으니, 이후부터는 재난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나열됩니다. 화산 폭발, 쓰나미, 극한의 한파와 같은 자연재해에, 건물 붕괴, 화재, 항공 사고, 유람선 침몰과 같은 인재(人災)가 결합되더니, 마지막에는 대형 선박 침수 사고로 수렴됩니다. ‘볼케이노’, ‘단테스 피크’, ‘투모로우’, ‘타워링’, ‘에어포트’를 거쳐,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이타닉’까지 수많은 재난 영화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듯합니다. 엄청난 스케일의 CG의 퀄리티가 돋보이는 ‘2012’가 업그레이드된 재난을 과시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157분의 러닝 타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방주가 등장한 이후부터의 장면은 뻔한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군더더기와 같습니다. 마지막 30분을 편집해 120분 정도로 압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간 중간 삽입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파극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는 우정, 개인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구원, 끝까지 인류애를 포기하지 않는 과학자, 담담히 최후를 맞이하는 성직자 등을 묘사하는 군상극은, 재난 스펙타클 사이에서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최루성 멜로로 가득합니다. 초반 30분만 봐도 살아남을 사람과 죽을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하기 위한 방해물인 아내의 동거남이나 거부(巨富)를 주체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업가는 처음부터 죽음이 예고된 것이며, 반대로 죽음을 선택한 자의 자식들과 어린이들은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구 멸망의 순간 살아남아야할 사람과 죽어야할 사람을 이처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2012’의 윤리적 고뇌가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관객은 스펙타클을 즐기러 극장을 찾은 것이지 윤리학 강의를 수강하러 온 것은 아니기에 아쉬움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힘겨운 일상에 찌든 대부분의 관객은 지긋지긋한 세상이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며, 파멸에 대한 죄의식적 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고질라’도 재난 영화적 성격이 강했지만, 근본적으로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 영화는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그리고 ‘2012’의 삼부작으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선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자 그들의 우두머리인 미국 대통령을 위한 영화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전투기 F18 호넷에 탑승해 UFO와 공중전을 벌였고, ‘투모로우’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유고로 취임해 멕시코에 자비를 구한 바 있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국 대통령은, ‘2012’에서는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치지 않고 희생자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극중에 묘사되는 미국 정부의 음흉한 음모를 대통령의 목숨으로 갈음하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멋진 최후를 위한 도구가, 무의미한 지진이나 쓰나미, 한파가 아니라 항공모함 존 F 케네디라는 점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인 조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자존심을 세우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구원이 중국에 빚지고 있고, 주인공 잭슨 일가도 중국인의 도움을 받으며, 미국 대통령과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는 과학자가 흑인이고 인류의 신천지가 아프리카라는 설정은 오바마 시대를 영악하게 반영함과 동시에, 전세계 시장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정치적, 인종적 편향성에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극중에서 불분명한 영어 발음에 의존하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패러디입니다.
‘2012’의 캐스팅은 의외로 화려합니다. 존 쿠삭, 대니 글로버, 아만다 피트, 우디 해럴슨, 탠디 뉴튼과 같이 낯익은 배우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스펙타클에 가렸듯이, ‘2012’의 수많은 배우들도 거대한 CG 스펙타클에 함몰됩니다. ‘2012’와 같은 대형 재난 영화에 유명 배우들이 대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도 흥행에 별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재난 스펙타클을 제외하면 오히려 배우들보다 바이오 노트북, PSP, 에릭슨 휴대폰 등 제작사 소니 콜롬비아의 계열사 제품들의 PPL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CG 기술의 발달로 구현 불가능한 스펙타클이 사라지면서, 지구가 멸망하는 재난영화도 스크린에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비대화되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 영화의 소재는 우주의 종말만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디로 피난할까요.
투모로우 - 독립 기념일에 미국 대통령, 얼어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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