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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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 구질구질한 인연의 덫 영화

사랑했던 선배 자영(김보경 분)을 떠나 파주로 도망치듯 온 중식(이선균 분)은 은수(심이영 분)와 결혼하게 됩니다. 은수의 동생 은모(서우 분)는 언니를 빼앗아 간 형부 중식을 애증으로 대합니다.

박찬옥 감독의 ‘파주’를 관람하고 난 뒤, 홍보용 문구인 ‘러브 스토리’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세 명의 여자를 상대로 갈지자 행보를 보인 중식이 과연 어떤 여자를 진정 사랑했는지, 여주인공 은모가 중식을 사랑한 것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종반에서 중식은 자신의 본심을 고백하지만, 그에 앞서 100분여의 러닝 타임 속에서 중식의 행동은 마지막 고백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은모의 끝 모를 방황도 그 이유를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랑이라기보다 인연, 그것도 구질구질한 덫과 같은 인연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따지고 보면 은수나 중식뿐만 아니라 조폭 두목(이경영 분)과 택시 기사까지 은모와 기묘한 인연으로 만남을 반복하니 말입니다. 왠지 영화가 종료된 이후에도 은모는 파주에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할 것 같고, 중식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주인공의 전체적인 감정선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지만, 장면마다의 섬세한 연출은 여성 감독답게 돋보입니다. 본시 감정이라는 것은 늘 애매하기 마련인데, 그처럼 애매한 감정을 영상으로 포착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정돈되지 못한 복잡한 마음을 상징하는 파주의 안개는 영화 전반을 뒤덮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반부 인공적인 조명의 사용을 억제해 배우들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의도였는지 알 수 없으나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거친 질감의 화면이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은수의 죽음의 진실에 접근해 나가기 위해 시간을 역순으로 편집하는 스릴러적 요소는 예상외의 재미를 제공합니다. 은수의 죽음의 원인이 관객에게 제시된 뒤에도, 과연 은모에게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연출은 매력적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공간적 배경인 ‘파주’가 된 것은 한적한 농촌에서 신도시 개발을 앞두고 철거를 둘러싼 대치와 같은 뒤숭숭한 사건이 파주에서 일어나며, 중식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운동권 출신인 중식의 첫사랑을 비롯한 인간관계는 대부분 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선균이 출연한 모 보험 CF를 보면, 1990년대까지 대학가를 풍미했던 노동 해방을 위한 운동권 가요가 대중가요를 거쳐, 자본의 상징 대기업의 CM송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한데, 이선균이 아예 운동권으로 영화에 등장하니 더욱 기묘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바라보는 ‘좌파 먹물’ 중식은,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지만, 우유부단하며 경제능력이 없는 사나이입니다. 세 여자를 상대로 어떤 여자에게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대사에서 자신을 ‘교만했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중식을 비롯한 ‘좌파 먹물’에 대한 감독의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자본을 등에 업은, 이경영이 분한 조폭 보스가 대사 한 마디 없지만 듬직하고 매력적으로 묘사되어 중식과 선명히 대비됩니다.

따라서 중식과 은모의 만남은, 80년대 운동권 남성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21세기 소녀의 만남이기에 삐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의 충동에 충실했지만, 일관성이 없으며 속내도 알 수 없는 은모 역에 서우를 캐스팅한 것은 적절했습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큰 눈, 두툼한 입술의 도발적 이미지와 10대와 같은 동안을 동시에 보유한 서우는 팜므 파탈처럼 중식과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 나이 스물다섯임에 불구하고 동안을 십분 활용해 ‘미쓰 홍당무’에서 그랬듯이 교복 차림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포스터를 비롯해 홍보가 암시하는 서우의 노출 장면이나 베드신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