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무위도식하는 나가이(마츠다 유사쿠 분)는, 3년 전 결혼한 옛사랑 미치요(후지타니 미와코 분)와 그녀의 남편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히라오카(고바야시 카오루 분)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나가이는 아버지와 형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만 결혼하라는 종용에 시달릴 뿐,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1909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바 있는 나츠메 소세키의 원작 소설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이 1985년 영화화한 ‘소레카라’는, 서울아트시네마의 80년대 일본 뉴웨이브 특별전의 일환으로 상영되었습니다. 팸플릿에서는 ‘삼각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히라오카는 몸이 아픈 아내 미치요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여 유곽을 들락거리며 나가이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고, 미치요 역시 나가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유복함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병약하며, 오빠와 아들을 모두 잃은 불행한 미치요는 마치 느와르의 팜므 파탈처럼 나가이의 마음을 졸입니다. 따라서 영화는 철저히 나가이 개인의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추며, 사이코드라마와 같은 기묘하고도 비현실적인 전차 내부 장면이 여러 차례 삽입됩니다. (‘소레카라’의 전차 내부 장면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의 마음을 설명하는 장면과 놀랄 만치 닮아 있는데, ‘소레카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가이를 이용하려는 것은 히라오카 부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업가인 아버지와 형은 나가이를 정략 결혼시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할 뿐, 정작 나가이가 원하는 것은 충족시켜주지 않습니다. 파편적인 인간관계로 둘러싸인 나가이의 주변 인물들 중에서 진정 그를 걱정하고 돕는 것은 나가이의 형수밖에 없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으며 돈 걱정을 해본 적도 없는 무능한 지식인 나가이가 미치요를 돕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하고, 우유부단한 나가이가 추한 꼴을 무릅쓰고 일생의 결심을 하는 것은 파멸로 귀결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의 막내아들이라는 설정은 원작자 나츠메 소세키가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공 나가이는 1989년 마흔의 나이로 요절한 배우 마츠다 유사쿠에 의해 형상화되었는데, 국내에 널리 알려진 ‘블랙 레인’의 이미지와 달리, 섬세하고 우유부단한 나가이의 성격과 키 크고 잘 생긴 마츠다 유사쿠는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1980년대 중반에 제작된 ‘소레카라’이지만 실내 장면과 롱테이크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야외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실내 장면처럼 연출되어 있으며, 비와 백합으로 상징되는 나가이와 미치요의 사랑을 은유하는 야외 장면조차 마치 실내 장면처럼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느낌을 줍니다. 실내 장면이 빛나기 위해서는 세트와 의상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인데, 풍족한 나가이의 집과 의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난한 미치요의 의상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단지 미치요로 분한 배우 후지타니 미와코의 두드러지는 미모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1980년대의 일본 영화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영화를 비롯한 일본 대중문화가 ‘왜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터무니없니 뒤늦게 개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영화가 정식으로 국내에 처음 개봉된 것은 1998년 연말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를 통해서인데, 문화 개방 이후의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국내의 극장가에 걸리고 있고, 고전 걸작들은 영화제 등 여러 경로로 소개되고 있지만, 1980년대 전후의 작품들은 어떤 경로로든 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아트시네마의 80년대 일본 뉴웨이브 특별전의 의미는 상당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단 1회 개봉된 ‘소레카라’의 필름 상태와 자막 번역은 엉망이었습니다. 필름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툭툭 끊겨 마치 흑백 무성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미치요가 결정적인 대사를 말하는 장면도 잘려 나갔습니다. 자막도 필름 보존 상태에 장단을 맞추려는 듯, ‘야구’를 ‘소프트볼’로, ‘2백 엔’을 ‘2천 엔’으로 번역하는 등 기초적인 대사조차 번역이 틀렸습니다. 일본의 고전을 원작으로 한 만큼, 일본어 특유의 간접적인 화법에서 비롯되는 뉘앙스를 살리는 자막이 필요했는데, 영어 자막을 한글로 중역한 듯 형편없었습니다. 1회 개봉에 그친 것이 필름의 열악한 보존 상태와 수준 이하의 자막 때문이 아니었나 막연하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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