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탐정 우오츠카(사노 시로 분)는 납치된 양갓집 규수 키쿄(카무라 모에 분)를 구출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의문의 집단 ‘M 파테 상회’의 수수께끼를 해결해나가며, 우오츠카는 키쿄 납치의 실체에 접근합니다.서울 아트 시네마의 80년대 일본 뉴웨이브 특별전의 일환으로 상영중인 하야시 카이조 감독의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매우 독특한 영화입니다. 이미 무성영화의 맥이 끊긴지 오래인 1986년에 제작되었지만,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흑백 무성 영화로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효과음과 음악, 그리고 인질범의 녹음된 목소리는 어느 정도 제시되지만, 대사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며, 영화의 장면이 끊기며 대사를 대신한 자막이 삽입되는 무성 영화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채플린으로 대변되는 무성 영화 특유의 슬랩스틱 개그도 빠지지 않습니다. 무성 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임에 분명하지만,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무성 영화의 형식에 대한 오마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가난한 우오츠카는 삶은 계란을 탐닉하여 다른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삶은 계란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하드보일드’(hard-boiled)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일종의 유머 감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오츠카는 수사 대상인 키쿄의 미모에 빠져들며 점점 곤란한 상황에 빠져드는데, 이는 탐정이 팜프 파탈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는 느와르의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합니다.
우오츠카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종이 그림극과 사무라이 영화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정의의 흑두건이 악당들로부터 아가씨를 구하는 내용의 종이 그림극 ‘영원한 수수께끼’는 오프닝의 동명의 사무라이 흑백 영화로도 변주됩니다. 흑두건이 바로 우오츠카이며, 아가씨가 키쿄라는 점에서 영화 속 현실과 영화 속 영화, 그리고 종이 그림극의 3단 액자 구성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허물어져 버립니다.
물과 기름과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적인 사무라이 이야기와 미국적인 느와르는, ‘영원한 수수께끼’에서 흑두건이 결정적인 순간에 뽑아드는 권총처럼 멋지게 조화를 이룹니다. 하야시 카이조는 흑백 영화라는 형식과 서사 구조의 측면에서만 단순히 과거의 것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극중의 배경을 1920년대로 설정해놓고도, 그것도 모자라 우오츠카의 환상 속에서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우오츠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헤매며, 관객 역시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 속에 빠져들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옛사랑에 대한 애잔하고 아련한 향수에 아스라이 젖게 됩니다. 노년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도 영화에 대한 평생의 사랑과 환상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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