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를 잃고 세상과 담 쌓고 지내는 독거노인과, 아버지가 떠나 편모와 함께 지내는 동양계 비만 소년(러셀 역의 목소리는 일본계 미국인 소년 조던 나가이가 맡았습니다.)이 주인공인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은 캐릭터의 기본 구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겸 주연작 ‘그랜 토리노’를 연상시킵니다. 혼자 사는 까칠한 노인이 동양계 소년과 어울려 지내며 마음을 열고, 부성이 결여된 소년을 위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가 어두우며 안타까운 비극으로 종결된 ‘그랜 토리노’와 달리, ‘업’은 가족 애니메이션이기에 시종일관 밝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예정된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갑니다.
‘업’의 오프닝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두 남녀가 어린 시절 동일한 취미를 바탕으로 우연히 만나 사귀고 결혼하지만 나이를 먹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과정을 마치 순식간에 흘러가는 주마등처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많지 않은 장면들을 조합해 평생을 단 몇 분으로 압축한다는 점에서 ‘업’은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101분의 러닝 타임에 비하면 캐릭터의 숫자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서사구조에 있어 매우 풍성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디즈니의 가족 애니메이션이라는 반드시 구현해야 하는 요소들 또한 매우 풍부합니다. 정글로의 모험, 희귀 동물과의 조우, 악당과의 대결과 같은 어드벤처의 요소뿐만 아니라 풍선을 달고 하늘을 나는 집, 말하는 개 등 치기어린 것만 같은 상상력을 영상화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업’에서 집은 소품이나 배경이라기보다 칼의 아내 엘리를 상징하고 있으며, 움직인다는 점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세대와 인종을 뛰어 넘는 화해와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지만, 제목이 상징하듯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꿈을 이루려 노력하면 비상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것이 ‘업’의 진정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도 늦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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