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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권, 2권 총력 리뷰 - 도그마의 안티테제는 사랑

※ 본 포스팅에는 ‘1Q84’ 1권과 2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둠의 저편’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소설 ‘1Q84’는 일본어 원서를 기준으로 1권과 2권이 도합 1,0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400자 원고지 기준 1984페이지) 대작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교묘하게 비튼 제목으로 인해, ‘1Q84’의 주제는 전체주의 비판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수준을 넘어, 종교적 맹신을 비롯한 도그마에 대한 비판으로 봐야 적절할 것입니다. 도그마에 대한 하루키의 대항마는 사랑입니다. 두 주인공 텡고와 아오마메는 2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합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도그마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 주제입니다. 이는 1995년 도쿄에서 벌어진 옴 진리교 사건을 조명한 ‘언더그라운드’의 집필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밖에 없는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인 요소들은 ‘1Q84’에서도 어김없이 변주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와 금전을 비롯한 사회적, 물질적 욕구가 결여되어, 심지어 가족 관계조차 배제된 고독한 도시인들이 주인공이지만, 반면 섹스에 대한 욕망에만큼은 가감 없이 솔직하다는 점에서 전작의 주인공들과 동일합니다. 바흐, 야나체크, 체호프, 재즈, 락 등과 함께, 간간이 엿보이는 야구에 관련된 표현들에서 드러나는 하루키의 개인적 취향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평소 일본적인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따라서 하루키 월드의 인물들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음식보다는 샌드위치나 크래커, 샐러드, 이탈리아 요리 등에 친숙하며 일본 문화를 멀리합니다.) 하루키가 극히 일본적인 고전 ‘헤이케 이야기’를 상당 부분 인용한 것은 매우 이채롭습니다.

단조로운 인간관계를 지닌 인물들로도 섬세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매우 풍성한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점에서, 도시인의 일상과 심리에 대한 하루키의 현미경적인 관찰 능력과 더불어, 이야기꾼으로서의 타고난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액자 구성의 소설 ‘공기 번데기’와 고양이 거리 이야기,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의 다채로운 과거 역시 하루키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경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합니다. 텡고는 하루키의 장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긍정적인 의미(부정적인 의미의 소설가는 이미 ‘댄스 댄스 댄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너그램 마키무라 히라쿠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의 소설가(혹은 소설가 지망생)인데, 텡고가 추구하는 소설이 바로 하루키가 추구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1Q84’는 하루키의 소설관을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기 번데기’를 중심으로 한 출판사와 문단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역시 처음입니다.

외형적으로는 3인칭 시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주인공의 시선을 충실히 따라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하루키 소설들과 같은 1인칭 시점과 다름없습니다. 1권 중반부에서 아오마메가 이야기에서 퇴장하며 그녀의 시점이 사라진 이후, 작품이 갑자기 판타지의 영역으로 돌입한다는 점에서 시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판타지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기 번데기와 리틀 피플이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의 빅 브라더의 반대말에서 비롯된 조어로 보이는 리틀 피플이 도그마에 동조해 권력을 뒷받침하는 대중을 의미하는 것인지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후카에리의 관념적인 딸을 탄생시켰으며 텡고에게 아오마메의 존재를 상기시킨 공기 번데기가 긍정적 존재인지, 부정적인 존재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1Q84’에 나타난 전작과의 유사점들은 매우 쉽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양을 쫓는 모험’의 주인공이었던 ‘나’가 키키의 귀에 반했던 것처럼, ‘1Q84’에서는 텡고가 후카에리의 귀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습니다. 초반 아오마메의 등장에서도 귀는 세심하게 묘사됩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키키가 봉인했던 귀를 풀자 ‘나’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1Q84’의 텡고는 후카에리가 머리를 묶어 귀를 드러냈을 때, 그녀와 섹스하게 됩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여성을 묘사할 때 귀에 상당히 집착하는데, 아마도 하루키는 여성의 귀에 페티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Q84’의 에비스노 선생은 ‘양을 쫓는 모험’의 양 박사와 이미지가 비슷하며, ‘1Q84’와 ‘양을 쫓는 모험’ 모두 양을 통해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두 인물의 행적을 챕터 별로 교차시키는 ‘1Q84’의 구조는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의 경우 두 인물이 다른 차원에 속한 동일 인물이며, ‘1Q84’의 경우 텡고와 아오마메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언뜻 다른 듯 보입니다. 그러나 텡고와 아오마메는 결코 만나지 않는 두 개의 달과 같이 엇갈리지만 (텡고는 이름으로, 아오마메는 성으로 불리는 것부터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암시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후카에리의 예언처럼 세상을 구할 사명을 띠고 언젠가 해후하여 하나가 될 것이기에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의 두 사람의 ‘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Q84’의 리더는 텡고와 아오마메가 엇갈리는 두 개의 세계가 패럴럴 월드임을 딱 잘라 부정하고 있지만, 패럴럴 월드라는 단어 이외에는 딱히 규정할 만한 단어도 마땅치 않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 ‘나’가 택하는 죽음 역시 ‘양을 쫓는 모험’의 ‘쥐’와 ‘1Q84’의 리더처럼 스스로 선택한 숭고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아오마메와 아유미가 콤비를 이뤄 섹스 파트너를 찾아나서는 것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와 나가사와가 주말마다 걸 헌팅을 나선 것과 비슷하며, 모든 조건이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노르웨이의 숲’의 하츠미와 ‘1Q84’의 타마키가 실은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렀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상대와의 첫 섹스에서 그녀의 나신을 순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1Q84’의 후카에리와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의 알몸을 묘사하는 방식은 닮았습니다. 그리고 텡고가 자신의 아버지를 치쿠라의 요양원으로 찾아가 만나는 장면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가사와가 나오코를 요양원으로 찾아가는 장면과 미도리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합친 듯합니다.

영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녀라는 점에서 후카에리는 ‘댄스 댄스 댄스’의 유키와 닮았습니다. 하루키는 애니메이션에 무관심하고 밝힌 바 있지만, 과묵한 후카에리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나가토 유키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후카에리는 난독증에 시달리면서도 타인이 읽어준 책을 통째로 암기하는데, 책읽기가 유일한 취미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나가토 유키와 어긋난 듯하면서도 많이 닮았습니다. 간접적인 경로로 묘사되지만 ‘1Q84’의 아유미의 갑작스러우면서도 참혹한 죽음은 ‘댄스 댄스 댄스’에서 키키가 고탄다에 의해 살해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태엽 감는 새’의 후반부에 등장했던 것과 동일한 인물로 보이는 우시카와가 텡고를 위협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세상을 위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거악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미약한 힘을 모아 그를 밀실에서 쓰러뜨린다는 점에서 ‘1Q84’와 ‘태엽 감는 새’는 닮았습니다. ‘태엽 감는 새’에서 토오루는 가사하라 메이의 대머리 남성을 파악하는 아르바이트를 돕는데, ‘1Q84’의 아오마메가 대머리 남자에 대해 강한 성욕을 지녔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태엽 감는 새’는 하루키 소설에서 최초로 일본의 어두운 근대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는데, ‘1Q84’에서는 텡고의 아버지와 타마루를 통해 일본의 근대사를 조명합니다. 하루키가 한국의 독자들을 의식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타마루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의 아들로 박 씨 성을 지닌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침략적인 근대사를 직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10대와 성인의 섹스를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룬 이후, ‘1Q84’에서도 재차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행위로 15세 소년인 주인공 카프카와 사에키 상의 섹스가 이루어지는데, ‘1Q84’에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텡고와 17세 소녀 후카에리와의 섹스가 이루어집니다. 두 섹스는 구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카프카와 사에키 상의 섹스는 개인적인 차원의 구원이며, ‘1Q84’의 텡고와 후카에리의 섹스는 세계의 구원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아버지의 저주를 풀기 위해 가출을 감행했을 정도로 아버지는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되는데, 아버지를 단지 구두 한 켤레로 묘사했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래 하루키 월드에서 부성의 결여는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Q84’의 텡고는 주말마다 NHK 시청료 수금에 동행했던 아버지를 용서하며, 아버지 역시 자신의 과오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데, 아버지와의 화해라는 점에서 하루키도 나이를 먹으며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오마메가 텡고와의 만남을 갈구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거리에서의 우연한 재회를 꿈꾸는 것은 하루키의 단편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를 인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태엽 감는 새’가 그랬듯이, ‘1Q84’도 2권으로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오마메는 세상과 텡고를 구하기 위해 리더를 말살하고 자살했지만, 후카에리의 예언처럼 부활해 텡고와 재회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텡고의 주변 인물들도 아직 명확한 결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텡고의 섹스 파트너와 코마츠의 행방은 묘연한 채이고, 우시카와도 ‘태엽 감는 새’에서 그랬듯이 다시 한 번 나타나 자신의 입으로 사건 종결을 알려야 합니다. 텡고 아버지의 죽음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후카에리와 에비스노 선생의 관계도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텡고 어머니의 과거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윤리적인 인간인 텡고가 후카에리의 소설을 대필한 것에 대해 어떻게든 책임을 질 일도 남아 있습니다. ‘1Q84’는 분명 엄청난 몰입도를 지닌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이처럼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산적해 있으며,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에서 볼 수 있듯이 난해한 개념들도 상당합니다. 하루키는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중의 10월 이후를 다룰 3권 이후는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했으니, 타는 속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 실망스런 하루키의 동어 반복
어둠의 저편 - 어울리지 않는 하루키의 변화


덧글

  • Sengoku 2009/09/21 15:55 #

    나중에, 읽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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