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존 딜린저(조니 뎁 분)는 은행을 터는 범죄자이지만, 일반 시민들의 돈을 거들떠보지 않아 의적처럼 추앙받으며, 동료를 결코 배신하지 없으며, 자신의 여자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는 완벽한 사내입니다. 이에 맞서는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 분) 역시 약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명사수이며, 범죄자의 소탕에 철두철미하게 임하는 수사관이고, 동료를 아끼며, 여성에게 친절합니다.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에 비해 출연 비중이 적은 크리스찬 베일이지만, ‘퍼블릭 에너미’ 쪽이 훨씬 강렬합니다. 두 주인공의 대결은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자존심을 건 프로페셔널한 사나이들의 대결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작품들의 요소들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기에, 영화의 장단점 또한 거의 동일합니다. 우선 마이클 만 감독 본인이 상당 수준의 총기 애호가이기에 위에 나열한 전작들의 총격전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퍼블릭 에너미’도 예외가 아닙니다. 산장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중후반의 총격전 장면은 카 체이싱 총격전으로 마무리되는데,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시카고 타이프라이터를 비롯한 총기류의 둔탁한 효과음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장면은, 존 딜린저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한 수사반 사무실을 대담하게 둘러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화인지 알 수 없으나, 역설적인 장면을 제시하며 결말로 치닫기 전 관객의 정서를 고양하며,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동시대를 다루는 일반적인 영화들과 달리 핸드 헬드가 많이 쓰였다는 점이나 주인공의 최후를 당시의 갱 영화 ‘맨하탄 멜러드라마’로 암시했다는 점은 이채롭습니다. 존 딜린저가 최후의 순간까지 사랑했던 여인을 잊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은 마이클 만이 ‘퍼블릭 에너미’를 통해 제시하고 했던 갱스터 로맨티시즘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조명을 최소화해 중절모를 눌러쓴 사나이들의 턱선과 광대뼈를 강조한 것 또한 이 시대를 향한 동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텔링에 약점이 있는 마이클 만의 약점 또한 여전합니다. 좋게 말하면 유장하고, 나쁘게 말하면 늘어집니다. 러닝 타임이 140분에 달하지만, 산장 총격전 이전의 장면들은 적당히 덜어내며 보다 압축적인 전개를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제시되는 자막은 인생사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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