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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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워즈 - 소재는 사이버 펑크, 주제는 가족주의 애니메이션

우에다 지방의 진노우치 집안의 90세 할머니의 생일 파티에, 아르바이트를 명목으로 선망하는 여선배 나츠키와 아동행한 소년 겐지는, 거대 사이버 통신망 OZ의 해킹 사건에 휘말리면서 진노우치 집안사람들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썸머워즈’는, 재작년 여름 국내에 개봉되어 예상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덕분인지, 일본과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상당히 이른 시간에 개봉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상품성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기왕 수입할 바에는 불법 다운로드 동영상이 돌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극장에 거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고무적인 추세입니다.

‘썸머워즈’는 소재의 측면에서는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사이버 세계를 다루면서도, 주제의 측면에서는 대가족에 대한 진한 향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적절히 혼합하여, 사이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현실(그리고 현실과 사이버 세계의 중간쯤 되는 TV속 고시엔 야구 대회 지역 예선까지)을 적절히 중첩시키는 연출과 편집은, 할머니가 인맥을 활용한 전화 몇 통으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듯 비현실적으로 연출된 장면을 제외하고는, 매끄럽습니다. 결국 전 세계를 가족간의 단결과 화합이 구한다는 내용이 비약임에 틀림없지만,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습니다. 여름 방학과 첫사랑이라는 식상한 듯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소재를 절묘하게 결합한 것도 훌륭합니다. 가족 관객과 커플 관객을 동시에 타깃으로 설정한 셈입니다. 최종 보스와의 대결 수단을 첨단 온라인 게임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화투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명절이면 대가족이 모여 고스톱에 몰두하는 한국인들도 공감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초반에 뿌려 놓은 몇 가지 설정들을 길게 끌고 가지 않고 곧바로 뒤집으면서 빠른 템포의 전개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머물 것 같은 예상을 과감히 깨뜨리며, ‘죽음’을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극영화도 아닌, 어린이들까지 관람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서 이처럼 담담히 죽음을 다루며, 장례식을 축제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임권택 감독의 ‘축제’를 연상시킵니다.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대가족들 캐릭터들을 일일이 디자인하느라 고생했을 법한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카지와 닮은 와비스케였습니다. 서양물을 먹은 수재에, 시니컬하고 쿨한 성격으로 외톨이이고, 소녀의 동경을 받으며, 얼굴의 턱수염까지 카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와비스케에 대해 일부에서 주장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면책론’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극중에서도 와비스케를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와비스케도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만일 윤리적인 차원에서 와비스케 개인의 잘못을 논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와비스케를 일본의 전쟁 책임 면책론에 대입하는 것은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국 흥행을 의식한 탓인지, 엔드 크레딧을 보니 번역가까지 고용해 삽입한, OZ 곳곳의 한글 대사가 눈에 띄는데, 가장 두드러진 ‘결투장’이라는 대사는 ‘도전장’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즐거웠던 전반부를 잠식한 뻔한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