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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도쿄돔이 답답해 보일까 야구

1991년 늦가을, 어느 토요일의 일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발면을 나눠 먹던 호기심 많은 소년들은 말로만 듣던 일본 프로야구의 실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의 다섯 배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수준 높은 일본 프로야구를 TV 생중계로 조우하게 된 것입니다. 선수들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투구 폼과 타격 폼이 유난하고, 유니폼도 독특하며, 심지어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도 특이한 일본 프로야구는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인조잔디가 깔리고 하얀 지붕으로 뒤덮인 도쿄돔이었습니다.

1988년 개장한 일본 최초의 돔구장으로 4만 5천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상징이자 자존심으로, 지금도 일본 언론에서는 뉴스에서조차 특정 건물이나 지역의 면적을 설명할 때, ‘도쿄돔 몇 개의 크기’라는 식으로 비교하며 이해를 도울 정도입니다.

박동희를 비롯한 한국 프로야구의 에이스들이 난타당하며, 대표팀은 역사적인 제1회 한일 슈퍼게임 1차전에서 8:3으로 패했는데, 한국 대표팀의 패배를 비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8회초 1사 후 이라부를 상대로 터뜨린 김성한의 솔로 홈런은 승부와는 무관한 것이었지만,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도쿄돔에서 터뜨린 첫 번째 홈런’이라는 레테르와 함께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니, 도쿄돔이 갖는 상징성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려도, 한겨울이 와도 야구를 할 수 있는 도쿄돔의 존재는 열혈 야구 소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도쿄돔이야말로 일본 야구의 높은 수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도 멀었다는 자괴감도 일었습니다.

이후 두 번의 슈퍼 게임과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를 통해 도쿄돔은 서서히 눈에 익어 갔습니다. 선동렬, 이상훈, 이종범의 주니치 3총사가 도쿄돔 그라운드에 서는 모습이 스포츠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2006년 제1회 WBC를 앞두고 도쿄돔으로 원정을 떠난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제 도쿄돔이 낯설지 않다’는 발언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전까지 한번도 한국의 야구팀이 일본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한 도쿄돔에서 이승엽의 역전 2점 홈런으로 3: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마무리 투수 박찬호가 이치로를 상대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3루 덕아웃에서 환호하며 뛰쳐나왔습니다. 그것은 일본 야구의 심장부에서 선배들이 거두지 못한 승리를 드디어 쟁취했다는 기쁨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후 도쿄돔은 요미우리의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의 홈구장이 되어 국내 방송사들의 생중계를 통해 완전히 익숙한 것이 되었습니다. 2006년은 이승엽의 해였습니다. 한 시즌 동안 무려 41개의 홈런을 뿜어낸 것입니다.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도쿄돔의 벽면을 메우고 있는 대형 광고판마저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승엽이 시원한 홈런포를 작렬시켜도, 도쿄돔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망의 대상일 때에는 몰랐던 도쿄돔의 단점도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실내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홈런이 양산되고, 익숙하지 않은 야수들은 뜬공의 타구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들판에서 즐기는 구기 종목이라는 의미로 ‘야구(野球)’라는 명칭을 일본인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도, 정작 야외가 아니라 실내에 가둬버린 것이 답답함의 근본 원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구를 실내에 가둔 도쿄돔은, 틀에 박힌 것을 좋아하고 소위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합니다. 1사에 출루해도 희생 번트를 시도하는 일본 야구의 소위 ‘정석’은, 높은 리그 수준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야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도록 하며, 1회초부터 9회말까지 호루라기와 트럼펫에 의존해 천편일률적인 응원을 반복하는 일본 관중들의 응원을 듣고 있으면, 짜릿해야 할 야구 경기를 관전하면서도 밀려드는 졸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구단 마다 팀 컬러가 차별되고,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팬들의 응원이 특징인 한국과는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제1회 슈퍼게임이 열렸던 18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쓴 의도는 일본 프로야구와 돔구장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돔구장 무용론을 주장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야구장이 논두렁으로 변하는 한국의 기후적 특성상 돔구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천연 잔디가 깔린 탁 트인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강렬한 햇빛을, 때로는 바람을, 가끔은 가랑비를 맞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붉은 석양을 즐기고, 그러다 휘영청 떠오른 달을 유유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실외 야구장만의 특권일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 프로야구도 돔구장에서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인조 잔디와 천정으로 뒤덮인 돔구장에 앉아 천연 잔디와 푸른 하늘을 회상하며 ‘옛날이 좋았지’하고 그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덧글

  • rumic71 2009/06/10 11:08 #

    그런 날이 와 주기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그리워하지요.(잉?)
  • kagome 2009/06/10 11:12 #

    쫌 그리워하고 싶어요.
    그리고 일본 야구 응원이 진짜 잠오는 응원이라는 데 공감 120%..
  • 2009/06/10 15: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ink 2009/06/11 18:03 #

    미국에서 몇 군데 구장을 가봤지만 돔구장은 로저스 센터만 들어가봤고, 그나마 경기를 본 적이 없네요. 그래서 돔구장과 실외 야구장을 직접 비교할 수가 없는게 아쉽네요 갑자기..

    더위에 지친 여름 밤, 시원한 야구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을 지켜보며 한 잔, 두 잔... 그러다 보면 얼큰하게 취하기도 하고,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죠. 기본적으로 야구는 바깥에서 하는 경기입니다. 돔구장은 편의의 산물이지, 결코 원본을 대체할 순 없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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